마르 관광을 하고 나니 벌써 오후 두시가 넘었어요.


"점심 어떻게 할까?"

"먹어야죠. 좋은 식당 아세요?"

"여기서 더 가면 테젠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에 좋은 데가 있어. 거기서 먹어도 되지?."


우리는 좋다고 하고 빨리 길을 서둘렀어요.

어제 저녁 출발하기 전 타슈켄트 지하철 역에서 라그몬을 먹은 게 마지막 끼니였거든요.



가게에도 국기를 달아거는 투르크멘인들의 투철한 나라사랑 정신?



마르, 안녕! 이제 다시 볼 일은 아마 없겠...지?

떠나는 길이 왠지 아쉬웠어요.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지는 사막.. 사막.. 사막...

풍경의 변화도 없이 계속 사막만 나오니 여행을 출발한지 몇 시간만에 사막에 질려버렸어요.

자동차 뒷자리에 드러누워 그냥 푹 잤어요.



"어, 저거 봐!"


길거리에서 멜론을 한 무더기 놓고 팔고 있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은 일조량이 많아서 멜론이 달고 맛이 좋대요.

같이 여행하는 친구는 유난히 멜론을 좋아하는데, 여행 중이라 사지 못하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어요.


많지는 않지만 종종 낙타들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중앙아시아에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말이나 당나귀, 소를 본 적은 많지만, 낙타를 본 일은 처음이었어요.

역시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냥 사막 위에 세워진 나라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어요, 





테젠은 마르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어요.

도착하니 벌써 오후 5시에 가까운 시간.


"다 왔어. 내려."



여기가 식당 같아보이시나요?

중앙아시아에서 시장 밥집부터 고급레스토랑까지 많은 식당을 가봤지만, 여긴 아무리 봐도 짓다만 건물 정도로 밖에 안 보였어요.



택시기사 아저씨를 따라서 안에 들어가니 그냥 평범한 주택 마당에 냉장고 몇 개, 테이블 몇 개 있는 수준이었어요.

하지만 옆쪽 문을 지나가자 이렇게 유목민들이 사는 유르트 같은 건물들이 열 채 가량 늘어서 있었어요.

이런 집을 투르크멘어로는 '코라 우이' 즉, '검은 집'이라고 부른대요.

택시 기사 아저씨는 문을 열어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빈 집에 들어갔어요.


우와~~~~~!!!!!!!!!!!



안은 진짜 유르트 같이 꾸며져 있었어요.

바닥에는 카펫도 깔려있고, 기댈 수 있게 쿠션도 있었어요.

덤으로 위성방송이 나오는 텔레비젼과 빵빵한 에어컨까지!!!!!!!

종업원을 부를 일이 있으면 우리나라에서처럼 벨을 누르면 와요.

이런 신식 시스템이 무려 투르크메니스탄에 있다니.

투르크메니스탄이 다시 보였어요.


"여기는 만트(만두)가 맛있어. 만트 괜찮아?"


메뉴가 뭐 있는지도 모르고, 뭘 시켜야하는지도 모르는데 택시기사가 맛있다고 하니 셋 다 만트를 시키기로 했어요.

현지인들이 맛있다고 추천하는 음식점 혹은 메뉴는 거의 후회없는 선택일 경우가 많거든요.

택시기사 아저씨는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부르더니 만트 3인분과 차이, 샐러드를 시켰어요. 



빵과 샐러드가 먼저 나왔어요.

토마토와 오이가 들어간 샐러드는 터키부터 중앙아시아까지 매우 흔하고 기본적인 샐러드지만, 익히지 않는 파를 얹어준 것은 처음 보았어요.



잠시 뒤, 만두와 함께 버터가 나왔어요.

만두는 진짜 맛있었어요.

현지인들이 괜히 맛있다고 하는 게 아니었어요.

안에 육즙이 가득차 있고, 고기 냄새도 안 났어요.

 

30분 가량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편하게 드러누워서 TV 보고, 푹 쉬고, 밥도 맛있게 먹었어요.

그리고 나온 돈은 고작 15마나트 (약 5달러).

진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산다면 힘들게 요리 안 하고, 매일 외식해도 될 거예요.


택시기사 아저씨는 자기 몫은 자기가 내겠다고 했지만, 큰 돈도 아닐 뿐더러 이렇게 차를 빌려서 가는 경우에는 보통 승객이 내는 문화라 그냥 우리가 다 부담했어요.

그리고 이제 진짜 아슈하바트로 출발!





아저씨는 테젠부터는 길이 매우 안 좋다고 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들어온 이후 희한하게 도로 이정표는 거의 없었지만 길 자체는 포장도 잘 되어있고 꽤 좋았어요.

중앙아시아에서 그만큼 좋은 도로는 거의 보지를 못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테젠 도시에서 조금 벗어나자마자 길이 정말 급속도로 나빠졌어요.

가만히 앉아있어도 몸이 붕붕 공중부양했어요.



테젠을 넘어가면서부터 달라진 풍경은 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

코펫 산이예요.



여기도 버글거리는 소떼들.

저렇게 들판에서 풀어놓으면 알아서 풀 뜯어먹으니 사료값 오를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차는 덜그럭덜그럭 열심히 가다가 갑자기 멈췄어요.

차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도로가 꽉 막혀 있었어요.


"무슨 일이예요?"

"앞에 교통 사고가 났어."


우즈베키스탄도 마찬가지지만 투르크메니스탄에서도 앞 차가 조금 꾸물거린다 싶으면 바로 추월을 해버리는데, 차 한대가 추월을 시도하다가 맞은편 차선에서 오는 차와 부딪쳐서 사고가 났다고 했어요. 



정말 차를 제대로 박았어요.

저 정도면 사람이 크게 다친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어요.



사고 장소 근처에서 당나귀를 타고 여유롭게 왔다갔다 하시던 분.

햏자?


날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었어요.
아직 갈 길은 꽤 남았어요.
차는 계속 에어컨이 빵빵 틀어져 있어서 춥고 건조한데, 마실 거리는 다 떨어지고.
전날 기차에서 계속 자다깨다 한데다가 아침 6시부터 한 끼 먹고 계속 이동을 했으니 전신에 피로가 몰려왔어요.




저녁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사랑의 도시, 아슈하바트 도착.
창 밖으로 얼핏 보는 아슈하바트는 그냥 '조금 꾸며놓은 도시' 정도였어요.

"아슈하바트에서 어디에서 머물거야? 호텔?"
"가서 찾아야해요. 혹시 아슈하바트에서 한 사람에 20-30달러에 머물 수 있는 호텔 있어요?"
"있어, 있어. 내가 데려다 줄게."

아저씨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호텔 포이타흐트'.

"여기가 좋아. 그럼 나 가도 되지?"
"호텔비가 하루밤에 얼마나 하는데요?"
"정확히 몰라. 30-40마나트? 여튼 안 비싸. 그럼 나 간다."

아저씨는 돈을 받고, 바로 가버렸어요.
호텔에서 방 잡는 것까지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어찌나 빨리 가고 싶어하는지 얘기해도 들어줄 거 같지도 않았어요.
하긴, 그런 서비스 정신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요.
어쨌거나 호텔에 데려다줬으니 안에 들어갔는데...

"방 없어요!"

저렴하고 시설 괜찮기로 현지인들에게도 유명한지, 리셉션에는 현지인들이 바글바글했어요.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혹은 귀찮아서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리셉션 뒤에 걸려있는 빈 방 열쇠가 몇 개 없었어요.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할 수 없이 터덜터덜 나왔는데, 눈앞이 막막했어요.
방도 없는 호텔에 우리를 내려놓고 간 택시기사가 원망스러웠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 투르크메니스탄 호텔 정보를 정말 열심히 찾았어요.
하지만 관광객도 거의 없고, 관광산업도 발달하지 않은 나라라서 호텔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나와있는 호텔은 다들 네댓 개씩 되는 고급호텔이라서 하루밤에 100달러는 기본.

마침 관광객처럼 보이는 커플이 보였어요.
늦은 밤에 갑자기 말을 걸기 조금 미안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어요.
다짜고짜 다가가서 말을 걸었어요.

"저기요. 죄송한데, 혹시 근처에 호텔 있나요?"

그들은 관광객은 아니고 아슈하바트에 사는 외국인이었는데, 영어를 매우 잘했어요.

"저기 호텔이 있어요. 숙박비가 매우 저렴해요."

그들은 우리가 나온 호텔을 가리켰어요.

"저기 이미 갔는데, 방이 없다고 해서요. 혹시 근처에 저렴한 다른 호텔 없나요?"
"여기서 이렇게 저렇게 가면 루스끼 바자르가 있는데, 그 근처에 그랜드 투르크멘 호텔이 있어요."

일단 그들이 알려준 대로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배는 끊어질 것처럼 아프고 부글거렸어요.
점심 겸 저녁으로 먹은 만트가 맛은 좋았지만 기름기가 매우 많았어요.
빈속에 많은 기름기를 섭취한 데다가 차가 계속 흔들리는 바람에 멀미 기운이 좀 있던 상태였어요.
이제 호텔에 들어가서 좀 쉬면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방이 없는 바람에 졸지에 야밤에 호텔 찾아 삼만리를 하게 된 것.
최소한 그랜드 투르크멘 호텔까지는 가야하는데, 몇 걸음 걷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어요.
할 수만 있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으슥한 곳에 가서 속의 내용물을 내보내고 싶었지만, 아슈하바트에는 건물 하나 건너 하나를 경찰과 군인이 지키고 있었어요. 
특히 관공서 앞에는 잠깐 서 있는 것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빨리 지나가라고 했어요.

간신히 그랜드 투르크멘 호텔에 도착해보니 그 곳은 오성급 호텔.
몸이 너무 힘들어서 한 사람에 50달러까지라면 여기서 그냥 지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숙박비는 한 사람에 80달러.
물가 비싼 아제르바이잔까지 여행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돈이었어요.
숙박할 수는 없지만, 혹시나 해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호텔 직원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하라고 했고, 화장실을 못 찾고 헤메자 입구까지 안내해주기까지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외부인에게 화장실을 빌려주는 일이 거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우체국 같은 관공서, 지하철역에서조차 화장실은 직원용만 있을 뿐, 일반 이용객들은 사용할 수가 없어요.
시장이나 식당 같이 개방된 화장실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밖에 나와있을 때 급한 용무가 생기면 크게 곤란해질 수 있어요.

다행히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렇게 화장실 인심이 야박한 것 같지 않았어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게워냈어요.
온 몸의 기운이 쫙 빠지며, 이제야 좀 살 것 같았어요.
도와준 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어요.




다시 시작된 호텔 찾아 삼만리.
론니플래닛 아슈하바트 지도를 보자 근처에 '다이한 호텔'이라는  호텔이 하나 있었어요.
물가가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가격도 그닥 비싸지 않게 나와있었어요.
지도를 보면서 그 호텔을 찾아갔어요.


지도에 따르면 공원이 나오고, 그 옆에 호텔이 있어야 맞는데 호텔은 보이지 않았어요.

한참을 공원 근처에서 헤메다가 결국 공원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혹시 근처에 호텔 있나요?"

"호텔이요? 바로 저기요!"


호텔은 공원 바로 옆에 있긴 있었어요.

다만 큰 길 가에서는 전혀 호텔인지 모르게 되어있었어요.

호텔이 위치한 거리 이름도 왠만해서는 보이지 않는 이상한 곳에 붙어있었어요.


숙박비는 두 사람에 하룻밤 50달러.

방도 직접 보니 에어컨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그럭저럭 지낼만 했어요.

이틀밤을 자기로 하고 숙박비를 낸 뒤 짐을 풀었어요.


너무 목이 말라 물을 사러 근처 가게에 갔지만, 이미 시간이 밤 11시 반이 넘어서 문을 닫았어요.

하루종일 운이 없어도 어떻게 이렇게 더럽게 없을 수가 있는지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어요.

할 수 없이 돌아와서 수돗물도 입만 좀 적신 뒤,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어요. 




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