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 가족여행 가기로 했다."



이번 대만여행은 어머니의 통보로 결정되었다.

우리 집은 같이 휴가를 즐기거나 여행을 떠나는 문화가 없다. 

평생을 통틀어 가족 여행을 가본 경험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고, 마지막으로 언제 갔던 건지 기억도 안 말 정도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냥 각자 알아서 다녀왔을 뿐이었다

올 여름부터 어머니는 '더 늦기 전에 가족여행을 다녀오자' 면서 벼르고 계셨다.

처음에는 제주도 여행 정도를 생각하신 거 같지만, 조금만 비용을 더 보태면 대만으로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고 대만 가족여행이 급 결정되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나는 전화로 그 내용을 통보받았을 뿐이었다.


대만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워낙 인기 있는 여행국가라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다녀오기도 했고, 대만 친구들도 몇 명 있다보니 늘 궁금했다.

하지만 '돈 좀 모으면 내년이나 내후년 즈음에 한 번 다녀와야지' 라고 생각했을 뿐, 가족 여행으로 가게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니들이 다 알아서 해라."



나와 동생은 해외 여행을 꽤 많이 다닌 편이지만, 부모님은 패키지 혹은 출장이 전부다.

그 핑계로 아예 여행비용 전액을 동생에게 주고, 모든 일을 알아서 하라고 맡겨버리셨다.

통보를 받은지 며칠 안 되어서 동생으로부터 여권사본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하도 재촉을 해서 핸드폰으로 급하게 보내니, 동생은 그날 즉시 비행기표를 샀고 호텔 예약도 마쳤다고 했다.

꼼짝없이 여행이 확정되었다.

12월 5일 출국해서 12월 9일에 돌아오는 4박 5일 일정이었다.



나도 초행인데, 말도 안 통하는 나라를 부모님 모시고 어떻게 여행하나...



부모님께서 비용을 다 대신다고 하지만, 부모님과 떠나는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효도관광이라는 건 안 봐도 뻔한 일.

동생은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을 한데다가 사정상 여행 준비를 할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나에게는 여행 스케줄을 짜라는 과업이 주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여행을 떠나게 된 설렘보다도 그냥 막막했다.



예전에 알라딘에 갔다가 사둔 '프렌즈 타이완' 을 꺼냈다.

그 당시에는 신간이 저렴하게 나왔길래 '나중에 여행가게 되면 써야지' 라고 샀는데, 예상보다 빨리 쓰게 되었다.

평소 여행스타일은 대략적인 이동 일정 정도만 짠 다음에, 현지에서 자잘한 일정을 짜서 다니는 편이다.

하지만 가족 3명을 인솔해서 가야하는 입장에서 가이드북 한 권으로는 부족하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교보문고에 갔더니 윈앤원스타일 출판사에서 출간된 '처음 타이완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 이라는 책이 비교적 자세하게 잘 나온 거 같아서 한 권 더 샀다.



을지로입구역 근처에 있는 타이완 관광청 서울사무소를 찾았다.

올해 초 말레이시아 여행을 준비할 때 '말레이시아 관광청'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받아온 자료들이 여행 다니는 내내 꽤 유용했다.

이번에도 도움이 될 걸 기대하면서 관광청 사무소에 들려서 안내 책자 몇 개를 받아왔다.

생각보다 많지가 않았다.


참고 : [대만] 여행준비 (2) - 타이완 관광청 서울사무소 방문




명동에 있는 화전소에 들러 대만 달러도 환전했다.

부모님께 받은 여행 경비는 동생이 이미 환전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쓸 소소한 용돈이나 기념품 살 비용 정도 따로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개인돈으로 15만원을 환전했다.


참고 : [대만] 여행준비 (1) - 명동에서 대만 달러 (TWD) 환전




중국어 여행회화책도 구입했다.

한국인이 워낙 많이 가는 곳이고, 타이페이는 영어도 어느 정도 잘 통한다고는 하지만, 기초적인 현지어 몇 마디 정도는 외워가야 편하다.

그래도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서 태국이나 라오스 같이 글자 자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나라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중국어 여행회화책은 워낙 종류가 많아서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언어의 특성상 한국어 발음과 한어 병음이 둘 다 표기되어있고, CD가 있는 책으로 골라서 음성을 틈틈히 들었다. 

한때 중국어 독학해보겠답시고 깝죽거렸는데, 그 때 야매로나마 병음 읽는 법을 익혀두니 나름 써먹는다.

이래서 도둑질도 배워야한다는 말이 있나보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



대만은 중국과는 달리 간체가 아닌 우리나라와 비슷한 번체를 사용한다.

그리고 중국어 교재에는 '병음' 이라고 라틴 알파벳으로 소리를 표기하는데, 대만에서는 '주음 注音' 이라는 일종의 표음문자를 사용한다.




주음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표기법으로, 중국에서는 한어병음이 나온 이후로 사용하지 않지만 대만에는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대만에서는 초등학교에서도 이것부터 가르치는 데다가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입력을 할 때도 이 주음부호를 사용한다.

2008년 이후 한어병음을 도입했다고는 하는데, 아직까지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 내 주변 대만 친구들도 잘 모른다.

한자를 외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 발음이라도 써달라고 하면 나중에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거 물어볼 때 구글 번역이라도 돌리려면 주음을 조금이라도 익혀두는 게 도움이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주음부호를 외우기 시작했다. 

좀 많이 헷갈리기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받고 하니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암호 같기만 하던 기호들이 하루이틀 정도 지나니까 문자로 보이기 시작하며 더듬더듬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핸드폰에 주음부호 자판을 설치해서 이것저것 입력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의 계획일 뿐!



일정을 짜고 이거저거 준비했다고 하지만 그냥 내 취향에 맞춘 거 뿐이고, 다른 가족들의 취향이나 생각은 어떤지 잘 몰랐다. 

어찌하다보니 출국 이틀전 밤에야 본가를 내려가게 되었고, 출국 전날이 되어서야 온 가족이 모여서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나 부모님도, 동생도 '그냥 가서 상황 봐서 하면 되겠지' 하면서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관광청에서 받아온 자료를 나눠주고, 내가 짜온 일정을 브리핑했다.

'뭘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냐' 식의 분위기였지만, 어차피 잘 모르므로 OK! 사인이 떨어졌다.


하지만 여행 전에 결정해야 할 게 두 가지 남았다.

개인적으로 타이베이 101타워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어서 일정에 넣었고, 다른 하나는 예스진지 택시투어를 할지 여부였다.

타이베이 101타워 전망대는 티켓팅에 줄서있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미리 예매를 하고 가는게 좋을 거 같았다.

하지만 4명이 올라가면 입장료만 10만원에 가까운 큰 금액이라 쉽사리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비용을 내시는 어머니께서 가보고 싶다 하셔서 예매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정 중에 신베이터우 온천 - 단수이를 자유 관람하는 일정과 택시를 빌려서 예스진지 투어를 하는 것 중에 뭘 하고 싶은 지 부모님께 여쭤봤다.

전자라면 온천탕을 알아봐야하고, 후자라면 택시를 예약해야 했으니까.

역시 어머니께서는 택시 투어를 더 마음에 들어하셨다.

투어라고는 하지만 택시 한 대를 빌려서 우리 가족만 돌아다니는 데다가 가격도 그닥 비싸지 않다는 점이 좋으신 거 같았다.


카톡으로는 택시 투어 예약 상담을 하면서 PC로는 타이베이 101타워 전망대 예약을 하는 멀티태스킹을 해야했다.

당장 떠나기 전날이라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택시 투어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한국어가 가능한 기사를 알아봤는데, 워낙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어서 진작에 예약이 다 찼다고 한다.

영어가 가능한 기사가 있는 곳 중에서 몇 군데를 골라서 컨택을 시도했다.

그 중에서 내가 고른 곳은 프랭클린 택시투어 Franklin Taxi tour.

한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 중 하나인데, 평가도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다.

게다가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보셨을 테니, 한국인들의 여행스타일을 잘 알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코스는 가장 무난한 예류 - 스펀 - 진과스 - 지우펀으로 결정했고, 가격은 3600TWD 인데 투어 후 후불로 내면 된다고 했다.

당일 아침에 호텔로 픽업하신다고 해서 호텔 주소와 이름을 알려드렸다.



참고 : [대만] 여행 준비 (4) - 예스진지 택시투어 예약



이제 타이베이 101타워 전망대 예약, 하나 남았다.

개인적으로 전망대에서 일몰과 야경을 보고 싶었던 터라 구글에서 타이베이 일몰시간을 검색해봤다.

12월 초에는 일몰 시간이 보통 오후 5시 무렵이어서 그 때 올라가면 딱 맞을 거 같았다.



여행사를 통해서 티켓 예약을 할 수도 있지만, 바쁘고 번거로워서 바로 타이베이 101타워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했다.


참고 : [대만] 여행준비 (3) 타이베이 101타워 전망대 예약&취소





예약을 마치면, 메일로 예약 내역이 발송된다.



이런 젠장!!!!



택시 투어 예약날짜는 12월 7일이고, 타이베이 101타워 관람 날짜는 12월 6일인데, 카톡으로 택시투어 연락하면서 동시에 진행했더니 날짜를 잘못 입력했다.

이미 결제도 끝난 상태.

일요일이라서 전화도 안 받는다.




할 수 없이 취소하고, 다시 예약했다.

티켓당 50TWD씩, 총 200TWD 를 취소 수수료로 내야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얗게 불태웠어



여행을 여러 번 가봤지만, 이렇게까지 여행 준비를 열심히 해봤던 건 처음인 거 같다.

내일 여행을 떠나는게 맞긴 한 건지, 캐리어에 짐을 챙기면서도 실감이 잘 안 났다.




가족 여행이라는 자체가 설었고, 내가 인솔하다시피 해야하는 상황이다보니 부담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떠나게 될 여행, 좋게 다녀오기로 했다.

어쨌거나 여행은 즐거운 거니까.

다만, 가족들에게 블로그를 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상황에서 글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약간의 고민만 살짝 남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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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