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부산 [完]2017.06.08 07:30
 



매일 아침마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며칠째 원치 않게 커피를 못 마셨더니 잠이 안 깬다.

다행히 오늘은 주머니에 100원짜리 동전이 있어서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은 뽑아마셨다.

오늘도 여전히 사람이 없다.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서 불을 켜고, 아무도 없는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내가 여기 직원이 된 기분이다.



오늘은 오전에 예매해둔 영화가 없다.

그래서 작년에 못 다녀와서 아쉬웠던 재한유엔기념공원을 다녀오기로 했다.

재한 유엔 기념공원은 2호선 대연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이다.



교차로에 6.25전쟁 참전국가의 국가와 군인들의 모습을 조각한 조형물이 세워져있다.



특별한 표지판도 없고, 터널 같은 게 나와서 '이 길이 맞는건가' 싶었지만 일단 그냥 직진하기로 했다.

터널을 통과하니 바로 재한 유엔 기념공원 입구가 나왔다.



UN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 4만 평의 대지에 UN 군부대 파견 중에 전사한 한국군 36 명 포함, 총 11 개국의 2,300 구의 유해가 잠들어 있습니다.

이 묘지는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UN군 사령부가 조성한 곳으로, 같은 해 4월에 완공된 이후 전국 각지에 가맹장 되어있는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UN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UN에 영구 기증하기로 했고, UN 측에서도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결의하여 지금의 유엔기념묘지로 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거 이곳에는 21개국 UN군 전사자 약 11,000 여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룩셈부르크, 필리핀, 태국 등 7 개국 용사의 유해 전부와 그 외 국가의 일부 유해가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4만 평의 대지에 UN 군부대 파견 중에 전사한 한국군 36 명 포함, 총 11 개국의 2,300 구의 유해가 있다고 한다.




터키는 우리나라에 형제국으로 잘 알려져있다.

1개 여단을 전투지원으로 파병해서 총 724명이 전사했는데, 그 중 462구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요즘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의 후손들에게 한국 유학 기회를 제공하는 장학사업도 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터키 유학생들 중에는 이 경로로 한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여럿 보았다.

명패에 이름과 직위, 나이 등이 적혀있는데, 대부분 20-22살 사이의 20대 초반이었다.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터키군만큼 많지는 않지만, 다른 참전국들의 묘지도 조금씩 마련되어 있고, 각국에서 만든 위령비나 기념비도 위치하고 있다.

태국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태국이 한국전쟁 참전국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저 비석 하나씩이 다 한 사람이라니... 참 많다.




우리나라 군인들의 비석도 20여구 정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나마 죽어서라도 이름을 찾은 사람은 다행이다.

죽어서조차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무명용사의 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한국전쟁 참전국들의 깃발이 나부낀다.



재한유엔기념공원 아래쪽으로 쭉 내려가다보면 맑은 물이 흐르고, 비단잉어가 노는 작은 수로가 하나 나온다.

'도운트 수로' 라고 하는데, 여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중 최연소자인 호주 병사, 도운트 J.P. Daunt 상병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는 17세의 나이로 1951년 11월 6일, 경기도 연천 전투에서 숨졌다.

서양 기준이니 만 17세일테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린 나이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봤는데, 딱 봐도 앳된 티가 물씬 난다.

혼자서 외국 놀러나가는 것도 두려운 그 나이에 잔혹한 전쟁을 마주해야했던 그 심정은 어땠을까.



분수와 함께 뒤쪽에는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비가 위치하고 있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비는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고귀한 생명을 바친 유엔균 전문자를 영구기 추모하고자 2006년 10월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람키를 훨씬 넘어 어림잡아 2-3m 는 되는 검정색 명비에 각국마다 실종자를 포함한 전사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명비는 총 140개로, 여기에 이름이 적힌 전사자들만 40,896명에 달한다고 한다.




유엔군 위령탑 1978년 박정희 정부 시절에 한국 정부가 건립했으묘, '유엔군 위령탑' 이라는 글자도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라고 한다.

뒤쪽에는 각국별로 전투 지원 내역과 전사자 숫자를 기록한 등판들이 나란히 붙어있다.

외관에서 볼 때에는 그냥 위령비 하나인 줄 알았는데, 안에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

원룸 하나 정도의 작은 전시실이었는데, 이곳에 안장된 사람들에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걸었다.

유치원에서 소풍을 왔는지, 어린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재잘대면서 다닌다.

작년에 가보지 못한게 아쉬워서 올해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왔는데, 막상 오니까 참 기분이 복잡미묘하다.

슬프기도 하면서 뭔가 착 가라앉는 기분이다.



입구 쪽에는 아까 못 본 추모관이 있었지만, 시간 여유가 없어서 들어가보진 않았다.



아까 올 때 지나왔던 터널을 다시 통과해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센텀시티역에서 내려서 롯데시네마로 가는데, 롯데리아가 보였다,

아침에 마신 자판기 커피 한 잔 빼고 아직 공복.

일단 롯데리아로 들어가긴 했지만, 밥을 먹기에 시간을 부족했다.

뭐 새로운 거 없나 메뉴판을 뚫어지게 보는데 NEW 가 붙어있는 '망고피치' 음료수가 보여서 주문했다.



참고 : 롯데리아 신메뉴 '망고피치' 후기



음료를 받아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서 마셨는데, 맛이 없다.

복숭아 맛도 아니고, 망고맛도 아니고, 진짜 어중간한 맛.

탄산이라도 있으면 톡 쏘는 맛으로라도 먹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편의점이나 백화점 식품코너에 가서 음료수라도 하나 사마실걸.



부리나케 티켓팅을 하고 나니 간당간당하게 시간을 맞췄다.

일반 영화관은 광고시간이 10분 정도 있으니 조금 여유를 부려도 될테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1-2분 정도 부산국제영화제 홍보영상 이후 바로 영화가 시작한다.

몇 년전만 해도 1분이라도 늦으면 입장을 안 시켜줬다고 한다.

요즘은 융통성이 생겨서 15분까지는 입장시켜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늦으면 영화를 즐기러 오신 다른 분들께 민폐다.


오늘의 첫 영화는 '헤마 헤마 Hema Hema'라는 부탄영화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부탄영화다.

영화 시작하기 전에 왠 중년의 스님이 나와서 어설픈 영어로 뭔가 이야기하는 영상이 나왔는데, 그 분이 바로 감독님이시라고 한다.

헤마헤마의 감독님은 키옌체 노르부 Khyentse Norbu 라는 분으로, 스님이자 감독이라는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도 그냥 승려가 아니라 무슨 고승의 환생이라고 인정받은 린포체(종교지도자) 라고 한다. 

내용인 즉, 자신의 영화를 한국에 상영하게 되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관객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자신의 사정상 한국을 방문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헤마헤마는 부탄의 깊은 산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매 12년마다 한 노스님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이 산 속에서 가면을 쓰고 생활을 하는데, 그 안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절대 노출해서는 안 된다.

공동 생활에 방해가 되는 죄를 저지르거나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면 그 무리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가면을 쓰고 익명성 아래에 숨은 남녀들 사이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부탄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은자의 나라' 라는 이미지가 있다보니, 굉장히 신비롭고 기묘하게까지 느껴지는 영화였다.

더불어 영화의 초반과 끝부분에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세련된 바가 나오는데, 실제 부탄에 존재하고 있는 곳이라는데 더 놀랐다.

하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영화가 끝나고 난 후, GV (게스트 비지트) 시간이 있었다.

주연 배우인 쳬링 도르지 Tshering Dorji 와 프로듀서, 촬영감독님이 오셨는데, 다들 너무 외모가 좋아서 분위기가 훈훈했다.

솔직히 나는 영화 내내 가면 쓴 건만 봤더니, 주연배우도 나온건지 아닌건지 조금 헷갈렸다.

세 분 다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했고, 영화와 관련해서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해주셨다.

촬영 자체는 그렇게 힘든 건 아니었지만, 며칠씩 숲에서 지내야하고 특히나 불을 피우는 장면은 실수 없이 한번에 빨리 찍어야한 게 힘들었다고 했다.

주연배우분은 이국적인 부탄 전통 노래도 불러주고, 요청하는 사람들과 사진도 다 한장한장 찍어주고 사인도 해주셨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부탄에 꼭 가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어느덧 오후 세시 반, 다음 영화까지 4시간이 남았다.

일단 밥부터 먹기로 하고, 근처 밥먹을만한데를 검색해보니 멀지 않은 곳에 라오스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 곳이 있었다.

라오스 여행 당시에 샌드위치를 정말 맛있게 먹기도 한데다가 서울에는 라오스 음식점 자체가 없어서 거기로 가기로 했다.

음식점 이름은 헬로 라오 Hello Lao 로, 라오스 샌드위치와 브런치를 파는 가게이다.



라오스 샌드위치&연유커피


라오스 샌드위치는 기본 재료에 베이컨, 햄, 비프, 참치, 치킨 중 추가 재료를 고를 수 있었다.

나는 치킨과 베이컨을 골랐고, 음료로는 동남아의 맛인 연유커피를 골랐다.

라오스 샌드위치는 꽤 푸짐하고, 야채도 신선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라오스에서 먹었던 그 맛은 아니었다,

그냥 맛있는 샌드위치 정도랄까.

달달한 연유라떼는 언제 마셔도 맛있고.



참고 : [라오스] 부산 센텀시티 맛집 - 라오스 샌드위치, 헬로라오 Hello Lao



아까부터 날이 흐리고 좀 쌀쌀하다 싶더니 창밖에는 바람이 거세게 분다.

여차하면 비도 한바탕 내릴 기세다.

원래 계획은 수박겉핥기로나마 동백섬을 들렀다가 해운대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날씨도 안 좋고 귀찮았다.

가게에 비치되어있는 부산여행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노닥거렸다.



바람이 좀 잠잠해지자 근처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부산센텀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책인지 구경도 하고, 관심가는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날 윗옷을 검은색을 입었더니, 아르바이트하시는 분들과 복장이 비슷해보였는지 어떤 아저씨가 자꾸 '이 책 어딨냐' 면서 물어봐서 당황스러웠다.



오늘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영화를 보기 위해 해운대 메가박스에 왔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동안 하루 3편은 꼬박꼬박 봤는데, 두편 밖에 안 보니 왠지 농땡이를 피운 기분이다.



이번에 본 영화는 '냇물과 들판, 사랑스런 얼굴들' 이라는 이집트 영화였다.

어느 도시의 오래된 음식점이나 출장 요리를 다니는 요리사들과 그 주변 사람들 간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로, 유쾌한 가족 영화라기에 보고 싶던 다른 영화도 미루고 골랐던 영화이다.

결과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스토리도 개판이고, 내용 전개에 연관성도 하나도 없을 뿐더러, 마지막에는 정말 허술하기 짝이 없는 CG까지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떻게 영화제에 선정되었는지조차 신기할 정도.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전혀 안면도 없는 옆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이집트 영화는 원래 이런가요."

"저도 몰라요."


우리는 둘 다 어이가 가출을 해서 헛웃음을 지었다.

이집트 영화, 다시는 안 볼거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늘도 여전히 직원은 안 보인다.

진짜 여기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어디서 뭘하는지 모르겠다.

4인 도미토리에도 나 밖에 없어서 혼자 콘센트도 다 쓰고, 개인 객실처럼 편하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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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