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부산 [完]2017.07.07 07:30
 


알람을 맞춰놓고 일찍 일어났다.

씻고 아래층에 내려가니 역시나 직원은 없다. 

이제 그것도 익숙하다.

전날처럼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으나, 100원짜리 동전이 없어 그냥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자갈치역에서 내렸다.

부산의 대표적인 볼거리 중 상당수는 남포동이나 광복동 등에 몰려있는데, 해운대 쪽에서 가려면 편도로만 1시간이 넘게 걸려 아침부터 서둘러야했다.

작년에도 느꼈던 거지만, 자갈치역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플랫폼에서부터 비린 바다냄새가 났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가 많은 부평 깡통시장과 국제시장을 지났다.

국제시장 쪽은 골목골목이 하도 복잡하고, 나 또한 워낙 심한 길치이다보니 2년 연속 와도 길이 헷갈린다.




자갈치역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보수동 책방골목 입구에 도착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함경북도에서 피난온 부부가 최초로 헌 잡지 등을 팔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부산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이 많았고, 그들이 가지고 온 책이나 잡지 등을 팔면서 규모가 커졌는데, 1970년대에는 70여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아직 이른 시간이다보니 이제 막 문을 열고 책정리를 하는 가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쉽지만, 영화가 우선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보수동 서점골목을 볼 수 있다는 게 어디냐.

각종 책들이 무질서한 듯 질서있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 동대문 청계천변 헌책방 골목을 연상시켰다.



문을 연 서점 중에서 좀 규모도 있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한 서점에 들어가보았다.

서점 이름은 '우리글방' 이었는데, 가이드북에서 얼핏 본 것도 같다.





잘 쳐줘봐야 1990년대, 어쩌면 그 이전에 세상에 나왔을 법한 책과 잡지들이 천장까지 가득 차있다.

어릴 때 도서관이나 친척집 같은데 가면 이런 책들이 책장에 있곤 했는데, 왠지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굳이 책을 살 생각은 없더라도 오래된 책에서 나는 곰팡내를 맡으면서 무슨 책이 있는지 구경하는 건 꽤 재미있는 일이다.




이 책은 대체 어디서 온 거지?



무려 미얀마어다.

영어나 일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책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대체 미얀마어 원서는 누가 가지고 온걸까.

우리나라에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궁금하지만, 이 책을 사주신 사장님도 신기했다.

이런 것도 헌책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일 것이다.



가파른 계단 앙쪽에도 서점이 들어서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을 적당히 둘러보고, BIFF 광장에 도착했다. 



BIFF 광장의 명물 중 하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영화인들의 핸드프린팅이다.



나는 영화에 대해서 문외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감독이나 배우, 누구나 들으면 알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물급 스타가 아니고서는 잘 모른다.

며칠 전에 봤던 이란 영화의 감독인 모흐센 마흐말바프 Mohsen Makhmalbaf 감독이 부산 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작년에도 여기를 왔는데.

이 영화 저 영화 다양하게 접하다보면 영화에 대한 지식도 조금씩이나마 쌓여가지 않을까 싶다.



BIFF 광장과 롯데백화점 광복점을 지나서 영도 다리에 도착했다.

이번 부산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3가지 중 하나가 영도다리 도개를 보는 거였다.

옛날 노래인 '굳세어라 금순아' 에 나오는 나름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거니와 다리가 들어올려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신기했다.

원래 영도대교는 배가 다니기 위해서 다리를 들어올리는 도개교였으나 나중에 필요가 없어지면서 일반 다리가 되었다가 몇 년 전 다시 공사를 해서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일종의 쇼처럼 도개를 선보인다고 한다.





현재 영도다리는 오후 2시, 딱 한 차례만 도개를 한다고 한다.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하던 영도다리 도개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냥 가기는 아까워서 한 번 쭉 걸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자갈치 건어물 도매시장을 지나서 지하철 남포역으로 향했다.

이 시장은 일제시대 때 건물인 적산가옥을 그대로 활용해서 상가건물로 사용하고 있는데,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에도 등장했던 장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에선가 검은 옷을 입고 일본도를 두른 사람들이 '긴또깡' 하면서 슬그머니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 분위기다.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1호선 두실역.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부산 남산동 쪽을 찾아온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산 이슬람사원을 보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그 근처에 있는 모로코 음식점에서 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식당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모스크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서울 이태원에 있는 서울 이슬람 중앙성원 이후 두번째다.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은 부지가 좁긴 하지만 위치는 괜찮은 편인데, 부산 이슬람 사원은 정말 애매하다.

무슨 아파트 내에 있는 경로당처럼 아파트 동 사이에 끼어있는데다가 바로 옆에는 유치원까지 있었다.

처음에는 '이슬람사원 부설 유치원인가?' 싶었으나 그것도 아닌 거 같았다.



사원 내부는 잠겨있어서 유리창을 통해서만 얼핏 들여다보았다.

시간도 별로 없거니와 어차피 저기는 남자들의 기도공간이라서 관리자에게 얘기한다고 해도 딱히 문을 열어줄 거 같지도 않고.

이제까지 여행한 국가들의 대부분이 이슬람 국가지만, 모스크 구경은 별로 안 좋아한다.

남녀간 공간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보니 볼만한 건 다 남자들의 공간만 있고, 내가 들어갈 수 있는데에서는 정말 벽 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참고 : 부산 다문화 여행지 - 부산 이슬람 모스크 (금정구 남산동)




모스크 구경을 대강 마치고, 친구와 만나 모로코 음식점인 '카사블랑카'로 향했다.

서울에서부터 정말 가고 싶었던 음식점이다.

서울에도 모로코 음식점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가격도 비싼 편이거니와 정통 스타일이라기보다 많이 한국회되어 있을 거 같아서 그닥 믿음이 가지 않았다.

여기는 모로코 가족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기에 정말 현지 음식을 먹어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음식점을 가보니 딱 봐도 일반 가정집은 개조한 곳인데다가 실제 여기에서 거주하면서 음식점을 같이 운영하는 듯 했다.



쿱즈 라고 불리는 모로코 전통 빵은 무료로 제공되었다.

약간 질깃하면서도 폭신한 게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양고기 카레 타진


타진 Tajine 은 고기나 생선 등을 주재료로 각종 향신료와 채소를 넣어만든 스튜의 일종으로, 모로코의 대표 음식 중 하나다.

이 음식을 만들 때 쓰는 고깔 모양의 그릇 이름이 타진인데, 거기에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고추가 들어가서 맛은 매콤한 인도커리와 비슷했다.

양고기가 상당히 큼직한데도 압력솥에서 잘 익혀줘서인지 포크만 대도 죽죽 찢어질 정도로 부드러웠다.

내 입맛에는 살짝 매웠지만, 계속 땡기는 매력이 있었다.



치킨 쿠스쿠스


쿠스쿠스 Couscous 는 타진과 마찬가지로 모로코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아래에 잔뜩 깔려있는 고물고물한 알갱이 이름도 쿠스쿠스인데, 그 위에 닭고기와 당근, 감자, 애호박, 병아리콩, 건포도 등이 듬뿍 올려져있다.

원래 쿠스쿠스 알갱이 자체는 찰기 없이 버석거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기는 소스가 촉촉해서 정말 맛있었다.

각종 재료로 압력솥에다 푹 익혔는지 정말 부드러웠다.

둘이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서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온 게 아쉬울 정도였다.



참고 : [모로코] 부산 남산동 맛집 - 모로코 음식점, 카사블랑카 Casablanca








식사를 마치고 나서, 친구와 지하철을 타고 센텀시티로 향했다.

오늘 볼 영화는 두 편인데, 오후 8시에 예매한 영화는 친구과 같이 보기로 했던 영화였다.

각자 영화를 보고 이따가 다시 만나기로 했다.



오늘의 첫 영화는 '불타는 새 Burning Bird' 라는 스리랑카 영화이다.

'스리랑카'라는 나라 자체가 영화 산업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보기 드문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불타는 새'의 배경은 1980년대 말, 동부 스리랑카의 작은 마을이다.

여덟 자녀와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부부가 있었는데, 생선 장사를 하던 남편이 정치범 모함을 받아 불법무장단체에 끌려간다.

결국 남편은 고문으로 인해 죽고, 부인 혼자서 나머지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가야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채석장이나 소 도축장 등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지만, 오히려 윤간까지 당하게 된다.

결국 몸을 파는 일을 하게 되지만, 경찰에 검거되어 부인은 옥살이를 하게 된다.

남은 가족들은 마을의 비난을 못 이겨서 결국 수도인 콜롬보로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영화 상영을 마치고, 산지와 푸시파쿠마라 Sanjeeawa Pushpakumara 감독님과 GV 시간을 가졌다.

산지와 감독님은 중앙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셨는데, 한국어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그럭저럭 알아들으시는 것 같았다.

이 영화는 실화는 아니지만,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스리랑카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했으며, 이러한 이야기가 매운 빈번했다고 말씀했다.

감독님 자신의 어머니 또한 혼자 몸으로 어렵제 자녀들을 키웠고, 자신의 친척 중 한 명도 정치범이라는 오해를 사서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하셨다.

영화를 보면서 스토리 자체가 비극적이지만, 후진국 어디에선가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감독 자신의 이야기라고 하니까 더 실감나게 느껴졌다.



두번째로 본 영화는 '어느 댄서 이야기 Cronicles of Hari' 라는 인도영화이다.

인도영화와 이란영화는 아시아 영화 중에서는 세계적으로 작품성이나 흥행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분야이다.

매년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이나 대형 히트작을 한두편씩은 상영하는데, 올해는 영화 '다이빙벨' 상영 문제로 잡음이 많았다보니 대작이라고 할만한 인도영화가 없었다.

이 영화는 인도영화에 대해서 잘 아는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된 영화였다.

신화를 소재로 한 전통 연극에서 여성의 역할을 하는 남자배우 하리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심지어 여성의 의복을 입고다니다보니 가족을 비롯한 주변과 갈등을 겪게 된다.

결국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그를 눈여겨본 한 노인과 같이 지내게 되는데, 그 마을 사람들 역시 동성애를 의심하며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사실은 조금 의아했다.

인도영화를 보면 '히즈라'라고 해서 여장을 한 남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돈을 주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하리와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궁금했다.



영화 상영 후 이 영화의 감독인 '아난야 까사라발리 Ananya Kasarvalli 감독님과 GV 시간이 있었다.
그녀는 인도 칸나다 영화계의 거장 감독인 기리쉬 까사라발라 Girish Kasaravalli  감독의 딸로, 이 영화는 그녀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고 한다.
아까 내가 궁금해했던 점을 물어봤는데,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된건지 '인도에서는 동성애가 금지되어 있다' 라는 이야기만 해주어서 여전히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GV 시간이 티켓에 사인도 받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친구와 헤어져서 숙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직원은 없었고, 4인 도미토리도 혼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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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