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있는 포린 푸드 마트를 가면, 가끔 예상치 못한 걸 발견할 때가 많아요.

보통은 먼지가 좀 묻어있거나 상자나 봉지 등이 약간 찌그러진 경우가 많고, 어디 구석에 처박혀있는데 숫자도 몇 개 없어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정식 수입 절차를 거쳐 들어온 게 아니라 고국에 다녀온 외국분들이 짐 속에 조금씩 넣어가지고 온 게 아닐까 해요.

캐리어 속에 다른 짐들과 함께 넣어서 가지고 오는 과정에서 귀퉁이나 상자가 일부 훼손되기도 하는 거고요.

잘만 뒤져보면 전혀 접해보지 못한 낯선 나라의 제품을 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보물찾기 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해요.



본죠르노 카페

 

아랍어로 뭔가 쓰여있어서 꼼지락거리면서 읽어보니, 본죠르노 카페 بونچورنو کافيا (Bonjorno Cafe) 라고 쓰여있었어요.

원산지는 A.R.E. 라고 쓰여있는데, 찾아보니 Arab Republic of Egypt, 무려 이집트 물건이었어요.

이집트 식료품은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어요.

이것저것 많이 뒤져본 저도 가공 식품류 중에서 한 두번 본 게 고작이었고, 그나마 커피는 처음이었어요.

아랍어로 كوفي ميكس 커피 믹스 라고 쓰여있는 걸 보니, 아랍식 커피(터키식 커피)를 만들기 위한 커피 가루는 아닌 거 같았어요.

딱 하나 남아있길래 바로 구입해서 가지고 왔는데, 이래저래 이사하고 뭐하고 하다 보니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서야 발견했어요.



유튜브를 뒤져보니 광고 영상이 꽤 많았어요.

TV 광고도 있는 걸 보면 이집트에서 꽤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인 거 같아요.



종이 상자를 개봉하니 총 12봉의 커피믹스가 들어있어요.

다행히 낱개 포장에는 이름이 영어로 쓰여있었어요.

한 포의 용량은 12g 으로, 우리나라 믹스커피와 양이 같아요.



아래에는 아랍 숫자로 유통기한이 적혀있었어요.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지만, 정확히는 인도 숫자라고 해요.

실제 아랍과 이란 지역에서는 고유의 숫자 표기가 따로 있어요.

이 제품의 유통기한은 2016년 10월 27일부터 2018년 5월 26일까지라고 적혀있어요.

워낙 오래 전에 사놓았던 제품이라서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기한 내예요.

어차피 지났어도 마실 생각이긴 했지만요.



칼로리는 한 포 기준 56kcal 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커피믹스인 맥심 모카골드가 한 봉에 50kcal 정도인데, 용량 뿐만 아니라 칼로리도 비슷하네요



음용 방법은 빈 머그잔에 커피 믹스를 넣은 뒤 끓는 물을 붓고, 잘 저은 뒤 취향껏 설탕을 넣으라고 적혀있어요.

물 양이나 온도는 따로 언급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 때는 몰랐습니다, 저 음용 방법에 큰 함정이 숨어있다는 점을요.



커피 파우더의 입자는 고운 편이고, 색은 진한 갈색빛이 나요.

향은 뭔가 많이 태운 듯한 약간은 매캐한 향이 나요.

가끔 음식점이나 기사 식당 같은 데에 비치되어 있는 처음 보는 브랜드의 싸구려 커피믹스 같은 느낌이에요.



물 양에 대한 언급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자판기 커피 종이컵 기준과 비슷하게 100ml 조금 안 되게 넣었어요.
처음 마셔보는 이집트 믹스 커피라 기대감을 가지고 마셨지만...


앳퉷퉷!


향은 괜찮은데, 별 맛이 없어요.
커피 맛도 없고, 크림 맛도 없고, 심지어 설탕 맛도 안 나요.
한 번 우려낸 커피를 재탕해서 만든 뜨물 같은 느낌이에요.
혹시나 해서 물을 조금 더 넣어봤지만, 그냥 뜨물이 더 뜨물이 되었어요.


이게 팔리긴 팔려?


이집트 스타일 커피 마시는 방법은 모르지만, 차를 마실 때 설탕을 밥숟가락으로 퍽퍽 넣어서 마시는 걸 감안하면 커피도 아마 그렇게 마실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생각해요.
좀 달달한 터키식 커피 스타일로요.
설탕이라도 많이 들어가있으면 달달한 맛으로라도 먹을텐데, 이건 설탕도 없어서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건지, 판매가 되긴 할 건지 진지하게 의문이 들었어요.
그러다 얻은 결론은 포기.
이집트 사람들이 워낙 달게 마시니까, 도저히 대중이 원하는 설탕량을 맞출 수가 없는 회사 측이 다 포기하고 '알아서 제조해드세요' 라고 선택권을 넘긴 거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도 설탕을 푹푹 넣기 시작했어요.
티스푼으로 몇 번 넣어도 간이 기별도 안 가길래 저도 현지인 스타일로 밥숟가락으로 푹 퍼서 넣었더니 그나마 마실만해요. 
그래봤자 커피향 설탕물에 가깝지만요.


다시는 마시지 말자


아랍의 블랙커피는 정말 위험하네요.
다시 구할 수는 없지만 구하고 싶지도 않고, 벌칙용으로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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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