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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2011 카프카즈&터키[完]

[터키] 16. 7/12 터키 으으드르, 카르스, 포소프 국경

by 히티틀러 2013.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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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모기에 뜯기면서 자다깨다 새우잠을 자다가 일어났어요.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아제르바이잔 커플과 우리는 카르스를 가는데, 으으드르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첫차는 6시 반에 있었어요.

화장실에서 대강 고양이 세수를 하고, 조그만 승합차에 올라탔어요.

표를 살 때 2-3시간쯤 나중에 있는 버스는 큰 대형버스인데, 첫차는 작은 미니버스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침이라서 사람이 적으니 그런가보고 하고 있었는데, 미니 버스는 회사의 세르비스 였어요.

세르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으으드르 시내에 있는 조그만 버스 회사 사무실이었는데, 그나마도 문이 닫혀있었어요. 1시간은 기다려야한다고 해서,  잠시 M씨와 함께 으으드르 시내를 잠시 돌아다녔어요.





으으드르는 평범한 소도시에 불과했어요.

좀 특이한 건 아제르바이잔의 전 대통령이자 국부인 '헤이데르 알리예프'의 공원이 있다는 것 정도였어요.


주변을 돌아보고 왔는데도 아직 사무실은 열려있지 않았어요.

언제 출발할지도 정확히 모르니 멀리 갈 수도 없고 해서, 같이 온 아제르바이잔 커플과 함께 사무실 바로 앞에 있는 찻집에서 차를 시켜 마셨어요.

사무실이 열리자 카르스 가는 버스 표를 받아서 다시 세르비스를 탔고, 5분쯤 가다가 드디어 카르스 가는 정식 버스로 갈아탈 수 있었어요.

우리 자리는 운전사 바로 뒷자리여서 다리를 펼 수가 없었어요.

자세는 불편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버스에 타자마자 골아떨어졌어요.








중간에 버스가 잠시 정차하고 사람들이 버스에서 우루루 내리기 시작하자, 우리도 잠에서 깼어요.




보통 버스가 정차할 때는 휴게소에 서는데, 우리가 탄 버스는 그냥 조그만 마을에 멈췄어요.

배도 고프고 날도 더워서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었어요.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외국인인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어요.

M씨는 마치 판타지에 나오는 마을 같다며, 마을이 너무 예쁘다고 했어요.

오래지 않아 버스는 다시 출발했어요.



창 밖으로는 초지가 계속 펼쳐졌어요.

윈도우 바탕 화면 같기도 했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들판 같기도 했어요.

그곳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유목민 가족도 볼 수가 있었고, 양이나 소 떼가 길을 막아서 빵빵 경적을 울리면 느릿느릿 비켜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으으드르에서 새벽에 출발했는데, 점심 나절이 되어서야 카르스에 도착했어요.

우리는 제일 먼저 우체국을 찾는 일.

저와 M씨 모두 너무 짐이 많고, 바쿠에서 산 게 많아서 캐리어가 무거워서 끌고 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었어요.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우체국을 물어물어 찾아갔어요.


"해외 소포 안 받아요"



터키에서는 모든 우체국에서 ems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ptt kargo 라고 쓰여있는 우체국에서만 받아요.

몇 곳을 찾아가봤지만 전부 해외 하지 않는다면서 중앙 지점으로 가라고 했어요.

카르스는 한창 공사 중이라서 먼지가 엄청 날릴 뿐만 아니라 길도 울퉁불퉁해서 팔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어요.


중앙 우체국에 찾아갔더니 이번에는 짐을 부칠만한 큰 박스가 없었어요.

작은 박스 두 개로 나눠부칠 수는 있었지만, 큰 박스 하나를 부칠 때보다 더 비싸다고 했어요.


"제가 근처에서 박스 한 번 구해볼게요. 여기 있어요."


그나마 저는 터키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M군에게는 짐을 지키라고 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근처 대형마트에도 물어보고 근처 문구점이나 가게들을 여러 곳 들려봤지만, 구할 수 있는 건 A4용기 열 뭉치를 담아둔 조그만 박스 하나가 전부였어요.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가니 우체국 직원이 우리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차 한 잔씩을 시켜주었어요.

그나마도 친구는 실수로 찻잔을 깨버리고, 저는 의자 위에 쏟아버렸어요.

직원은 괜찮다고 하면서 작은 박스 두 개를 뜯어서 이어붙여서 큰 박스 하나를 만들어 주었어요.

우리는 그 박스에 필요 없는 짐을 모두 쓸어담아 한국으로 부쳤어요.

열심히 우리 일에 발벗고 나서고 차까지 대접해준 직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어요.









한결 가벼워진 짐을 들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어요.

지방이라서 그런지 가격은 앙카라나 이스탄불보다 저렴한 수준이었어요.


"좀 매운 거 없어요?


M씨는 매운 음식을 먹고 싶다고했어요.

종업원에서 물어보니 가장 매운 게 '아다나 케밥'이라고 하길래 아다나 케밥을 주문해서 정말정말 맵게 해달라고 했어요.

종업원은 웃으면서 알았다고 했고, 저는 평범하게 쉬시 케밥과 초반 샐러드 하나를 시켰어요.

잠시 후, 음식이 나왔어요.



케밥 사진은 못 찍고, 초반 샐러드 하나만 찍었네요.


"여기 정말 매운 아다나 케밥이요. 주방장이 신경써서 맵게 만들었어요."


종업원들은 M씨가 어떻게 반응할 건가 궁금한지 슬금슬금 보고 있었어요.

M씨는 매콤한 게 꽤 맛있다고 했고, 제가 시킨 쉬시 케밥도 잘 구웠어요.




식당 위치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볼까 해서 명함만 챙겨왔어요.

카르스에서 며칠 더 머물렀다면 아마 이 식당에 몇 번 더 갔을 거예요.










식사까지 하고 나니 이제 카르스의 마지막 목표가 남았어요.

바로 병원가기.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밤을 지샐 때 벌레에 물렸는지 허벅지가 가려웠는데, 그 자리에 염증이 생긴 듯 계속 아팠어요.

스치기만 해도 아파서 그쪽으로는 눕지도 못하고, 옷을 입을 때조차도 조심조심 입어야했거든요.

바쿠에 있을 때 약을 사긴 했는데, 잘못 산 것인지 낫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어요.

아직 여행은 한참 남았고, 그나마 의사소통이 되는 터키에서 병원에 들려보는 게 남은 여행을 우해서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카르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둘러봐도 피부과는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면서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종업원에게 물어보았어요.


"혹시 카르스에 피부과 어디있어요?"

"종합병원에 있어요."


처음에는 식당 앞에 병원까지 가는 돌무쉬가 있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그냥 택시를 탔어요.

그 종업원이 우리를 위해 택시를 잡아주었어요.



카르스 국립병원.


터키에서 반 년간 지냈지만 병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접수해야하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헤맸어요.

결국에 직원인 듯한 어떤 아저씨가 도와주어서 간신히 접수대를 찾을 수가 있었어요.

힘들게 접수대를 찾아가니 접수대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이제 난리가 났어요.

접수 등록을 하려면 주소나 전화번호, 부모님 이름, 세금 번호 등등 기록이 있어야하는데 뜨내기 외국인이 그런 게 있을리가 없었어요.

직원 셋이 붙어서 컴퓨터를 붙잡고 한참을 씨름한 끝에 간신히 접수를 할 수 있었어요.

원래는 어느 의사한테 진찰을 받을 지 같은 것도 다 정해야하는데, 제가 여자라서 그런지 그냥 여자의사에게 보내줬어요.


오래 기다리지 않고 금방 진료실에 들어갔어요.

의사는 제 환부를 보더니 언제까지 카르스에 머무냐고 했어요.

몇 번 더 찾아와서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눈치였어요.

바로 떠난다고 하자 처방전을 써주면서 가렵더라도 긁지 말고, 나을 때까지 약을 꼭 챙겨먹으라고 했어요.

독특하게도 처방전을 우리나라처럼 접수대에서 받는 게 아니라 의사가 직접 종이에 처방을 적은 후에 자신의 이름과 직책이 적힌 도장을 찍어주는 시스템이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불쌍했는지 제약회사에서 판촉용으로 주는 비타민도 한 통 챙겨주었어요.

병원을 나와 근처 약국에서 처방받은 먹는 약과 연고를 받았어요.

진료비가 15리라, 약값이 15리라 정도였으니 생각보다 그닥 비싸지도 않았어요.

나중에 한국 돌아와서 안 제 피부병은 대상 포진 비슷한 거였어요.

그리고 국립병원이니까 그나마 병원비가 저렴했지만, 개인병원은 진료비가 정말 비싸다는 사실이었어요.

어떤 분은 터키에서 모르고 개인병원에서 진료 받았더니 300유로 가까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남은 것은 그루지아(조지아) 바투미로 넘어가는 일.

다시 시내로 나와서 그루지아 간다고 적혀있는 버스회사마다 돌아다니면서 바투미행 버스가 있는지 여부를 물었지만 전부 끊겼다고 했어요.

단순히 그루지아행 버스만 없는게 아니라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가 전부 없었어요.

오후 4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그리고 카르스에서 바투미로 넘어가는 버스가 있다는 것도 잘못된 정보였어요.

터키에서 그루지아 바투미로 넘어가는 버스는 전부 트라브존 근처에 호파 Hopa 라는 곳에 있어요.

아제르바이잔 나흐치반에서 터키 으으드르 넘어오는 버스를 탔을 때 기사 아저씨가 이야기를 해줬는데, 인터넷에서 '카르스에서 바투미 가는 버스가 있다'는 정보를 믿고 그냥 무시했더니 기사아저씨 말이 맞았어요.

그리고 동부 지역은 오전이면 거의 모든 지역으로 가는 버스가 끊겨요.

카르스에서 다른 도시로 가는 가장 늦은 버스가 오후 5시쯤에 앙카라로 가는 버스였어요.


"포소프 Posof 국경으로 가요."


M씨가 말했어요.

카르스에서 바투미를 갈 수는 없지만, 국경도시인 만큼 그루지아로 들어갈 수는 있었어요.

포소프 국경은 여행자들은 거의 가지 않고 대부분 트럭 같이 운송업 쪽에서 많이 이용하는 국경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냥 국경이 있구나'하는 정도만 알고 거기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도 바투미는 그루지아에서 나름 큰 도시이니 일단 그루지아에만 들어가면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거 같았어요. 


포소프 국경으로 가려면 카르스에서 '아르다한 Ardahan '이라는 곳을 간 후, 그곳에서 다시 포소프까지 가는 승합차를 타야한다고 했어요.

다행히 아르다한은 멀지 않은 지역이라서 아직 차가 남아있었어요.



아르다한 시내.

정말 국경 근처에 있는 도시여서 그런지 유난히 호텔이 많았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포소프행 버스를 물어보았어요.


"이쪽으로 가면 '외즐렘 아르다한'이라는 버스 사무소가 있어요. 그쪽으로 빨리 가봐요.

차가 아직 있는지 모르겠네."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서둘러 가니 조그만 버스 사무소가 있었어요.



다행히 아직 차가 남아있었어요.

우리는 빨리 두 좌석을 샀어요.

친구에게 잠깐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에 근처 가게에 가서 간단한 간식거리와 샴푸를 하나 샀어요.

시간이 여유롭지가 않아 빨리 가려는데 가게 할아버지는 자신이 젊었을 때 독일에서 일을 했다면서 외국인들이 오면 도와주곤 한다고 저를 붙잡고 자랑을 하셨어요.

평소 같으면 이야기를 들어주겠지만 마음이 급한 저는 "Auf wiedersehn(다시 만나요)!" 만 하고 서둘러 도망나왔어요.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지만 다 까먹어서 기억 나는게 그거 밖에 없었어요.


돌아오자마자 곧 버스 출발!



바깥 풍경은 좋았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어요.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차는 산을 넘나들면서 마을마다 들러 사람들을 내려주느라 시간이 엄청 늦어졌어요.

국경에 도착하니 6시 50분이었어요.


"너희 둘만 태우고 국경까지 돌아왔으니 한 사람당 15리라씩, 30리라 더 줘."


처음 버스를 탈 때에는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였어요.

지갑을 확인해보니 남아있는 돈은 딱 30리라.

20리라 한 장과 5리라 2장이었어요.


"돈을 다 써서 25리라 밖에 없어요."


공돈을 내야하는 것도 억울한데 혹시 모르니 돈을 좀 남겨두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거짓말을 했어요.

기사아저씨는 알았다나 25리라만 받고 돌아갔어요.

그 때 근처에 있던 아저씨 한 분께서 7시면 국경이 닫히니 서두르라고 알려주셨어요.










국경은 정말 허름하고, 임시로 지은 듯한 건물들이었어요.

세관 통과하는 곳도 있지만 건물만 지어놓고 실제로는 사용도 안 하는 듯 했어요.

터키 출국 심사는 별 거 없었고, 막 퇴근을 하려고 사복을 갈아입은 경찰 혹은 군인에게 출국 도장을 받은 여권을 보여주니 그루지아로 넘어가는 문을 열어주었어요.


허름하기는 그루지아 국경도 마찬가지. 

처음 그루지아에 비행기 타고 입국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카메라 보고 사진 한 장 찍고, "웰컴 투 조지아" 라고 하면서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어요.


국경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요.

왠만하면 관광객 상대로 하는 환전상이나 택시 기사 한둘 쯤은 있을 법도 한데 사람이라고는 개미 그림자 하나도 안 보이고 허허벌판이었어요.

일단은 캐리어를 질질 끌고 언덕 길을 오르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들개 두마리만 우리를 졸졸 따라오고 있을 뿐이었어요.


"진짜 우리 어쩌냐."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는 찜통 같은 버스 안에서 눈이라도 붙을 수 있었지만, 여기는 진짜 잘못하면 들판에서 맨몸으로 노숙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겁이 덜컥 났어요.

가로등 하나 없는 주위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언덕을 걸어올라갔는데, 불빛이 하나 보이고 주유소인지 카페인지가 하나 있었어요.

일단 도움을 청하려고 안에 들어가니 정말 알전구 하나 있는 건물에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계셨어요.

다행히 할머니께서 터키어를 하실 줄 아셔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있었어요.


"저희 바투미 가려는데 갈 방법 없나요?"

"근처 도시에 택시 운전하는 사람 있어. 불러줄게."


할머니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30여 분쯤 지나자 승용차가 한 대 왔어요.

젊은 청년이었는데, 터키어를 아주 잘 했어요.


"어디로 갈거예요?"

"바투미요."

"바투미? 거기는 120달러는 받아야해요."


그 청년에 말에 의하면 바투미로 바로 가는 길은 너무 오래되고 위험해서 이제는 갈 수가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트빌리시 가는 쪽으로 가다가 중간에 돌아가야하는데, 그러려면 자기가 밤새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받아야한다고 했어요.


"이 근처 도시에서 하루밤 자는 건 어때요? 

여기 지도 보면 아칼츠케 Akhaltsikhe 라는 도시가 있는데, 하루밤에 20달러에 잘 수 있는 호텔이 있어요.

그리고 내일 아침에 바투미 가는 버스 타면 되잖아요."


그 청년은 그 호텔이 위치도 좋고, 버스터미널도 가깝고, 근처에 경찰서도 있어서 치안도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를 했어요.

아마 본인도 밤새 운전을 하기는 싫은 모양이었어요.

아칼츠케까지 운전하는 비용으로는 40달러를 달라고 했어요.

생각보다 비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택시를 이용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 아칼츠케의 숙소까지 데려다주기로 했어요.


그 청년은 자신의 집은 '발레 Vale'라는 도시에 있는데, 일을 하면서 종종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이 오면 택시 영업을 해서 부수입을 올린다고 했어요.

국경 근처에 살아서 터키어를 배웠는데 종종 통역일을 해주기도 한다고 했어요.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는 아는 터키어 몇 마디로 그나마 의사소통이 되었지만, 그루지아부터는 현지어도 모르고 러시아어도 모르기 때문에 그 청년에게 여행 정보를 이것저것 물어보았어요.


청년은 아칼츠케에 있는 호텔 앞에 차를 세우고 우리를 호텔 주인 아주머니에게 안내했어요.

방은 호텔보다는 모텔 쪽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그닥 나쁜 편은 아니었어요.

단, 세면도구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점과 한 면 전체가 통유리인데 커튼이 없다는 점 정도였어요.

하지만 어차피 하루밤 잠만 자고 떠날 생각이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어요.

호텔 주인 아주머니와 그 청년에게 돈을 주고, 청년은 돌아갔어요.


호텔 바로 옆에는 경찰서가 있었고, 바로 앞에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불을 밝게 밝혀놓아서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 나와서 놀고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우리는 일단 나와서 조금 돌아다니다가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현지인들처럼 수다를 떨다가 금방 호텔로 돌아갔어요.

그 청년이 아침 8시에 바투미 가는 첫 버스가 있다고 해서 일찍 일어나야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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