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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2012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07. 9/25 부하라 라비하우즈 앙상블

by 히티틀러 2016.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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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이 너무 얇은지 밤새 바들바들 떨면서 선잠을 자고 일어나니 6시 즈음.

부하라가 종점인터라 차장은 돌아다니면서 승객들을 깨우고, 사용한 시트를 전부 걷어갔어요.

화장실에 갔지만 어떤 사람이 너무나 진한 흔적을 남겨놓아서 도저히 볼일은 못 보고, 고양이 세수만 대강 마쳤어요.


6시 45분 부하라역 도착.

부하라역은 이미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을 갈 때 한 번 왔던 터라 낯설지는 않았어요.

꽤 이른 시간인데도 새벽 같이 나와서 호객 행위를 하는 택시기사들도 여전했어요.

기차 같은 칸에서 만난 아저씨가 앞장 서서 택시기사 무리를 물리치고, 우리는 그 위를 졸졸 따라 기차역에서 나와 직진을 하니 마슈르트카 타는 곳이 나왔어요.


"부하라 중심가 가려면 어디로 가야해요?"

"아마 아르크로 가면 될거야."


아저씨는 마슈르트카 차장에게 가서 우리가 타고 갈 마슈르트카를 물어보기 위해 차장들과 이야기를 했어요.



"관광객은 다 라비하우스로 가요. 이거 타면 되요."



아저씨께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68번 마슈르트카에 올라탔어요.

'어디서 내려야하나', 창밖을 연신 두리번두리번 거리는데, 차는 어느 공터에 멈췄고 사람들이 우루루 내렸어요.


"내려, 종점이야."




이제까지 여행했던 지역이나 타슈켄트의 올드타운을 돌아다닐 때는 '그냥 오래된 도시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흙빛 도는 건물들과 모스크들이 가득한, 잘 정돈된 거리를 걷고 있으니 마치 타임슬립을 해서 과거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론니플래닛에서 보고 찾아간 사라폰 Sarrafon B&B.


"방 있나요?"

"있는데, 개인 화장실 딸린 방은 다 나갔어요. 입구에 있는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써야해요."

"하루 밤에 얼마예요?"

"10달러나 27,000숨이요."


다른 몇 군데 호텔이나 B&B도 둘러보았지만, 대부분 20-30달러 수준이었고 숙박비가 저렴한 곳은 시설이 훨씬 안 좋았어요.

다시 사라폰 B&B로 돌아가서 체크인을 했어요.




제가 머문 곳은 2층에 있는 도미토리룸이예요.

원래는 4인실이지만,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다른 사람은 받지 않을테니 편하게 쓰라고 하시면서 시트도 새로 깔아주시고 수건도 챙겨주셨어요.

화장실이나 샤워실을 이용하려면 1층까지 내려가야하는 점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1층에 내려가 아주머니께 숙박비와 여권을 건네드리니, 테이블과 의자를 가리키며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어요.


"여기 앉아서 아침 먹어요."




뭘 이렇게 잘 줘



빵과 홍차, 계란 후라이, 카샤 (곡물에 우유를 넣고 끓인 죽), 제철과일까지...

얼리체크인이니 간단하게 차와 간식 정도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제대로 한 상을 차려주셨어요.

따로 돈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아침 시간에 도착해서 챙겨준 거 같아요.

다음날 아침도 또 먹었거든요.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려고 1층 샤워실에 내려갔는데, 문에 걸쇠가 없었어요.

안에 각종 세면용품이며 세탁기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숙박객 뿐만 아니라 주인가족도 전부 사용하는 곳 같은데, 밖은 도로 공사 중이라서 인부들도 계속 들락날락하고 있었고요.


샤워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문을 벌컥 열고 누가 들어오기라고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주인아주머니께 살짝 말씀드리니까 별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시더라고요.


"걱정마, 내가 사람 있다고 얘기할게."


일단 반신반의하면서 누가 들어올세라 후다닥 샤워를 마쳤어요.

그런데 욕실 문이 안 열리네?

뭔가 문을 막고 있는 듯 덜컥거리기만 하고 문이 열리지 않았어요.

몇 차례 힘줘서 미니 그제야 사람 하나 정도 통과할 정도로 공간이 열렸어요.

간신히 몸을 비집고 나가보니까 문 앞에 의자가 놓여져 있었어요.

주인 아주머니가 낯선 사람이 못 들어가게 제가 샤워하는 사이에 의자로 막아둔 것이더라고요.


샤워도 하고 조금 쉬고 난 다음에 점심 무렵 즈음에 슬슬 관광을 하러 나갔어요.



라비 하우즈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라비하우즈 Lyabi Hauz 가 있어요.

타직어로 'lab' 은 주변, 'havz' 는 연못, 저수지라는 뜻으로, 라비 하우즈는 연못 근처라는 뜻이예요.

소련 초기만 하더라도 부하라에는 100여 개에 가까운 많은 연못이 있었고 많은 주민들의 중요한 물 공급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서 1920-30년대에 대부분이 메워졌는데, 라비 하우즈는 역사적 가치 때문에 아직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해요.


부하라의 올드타운의 중심지에 위치한 이 연못은 1620년에 부하라의 통치자 이맘 쿨리칸의 삼촌이자 재상이었던 나디르 디반 벡 Nadir Divan Begi 이 만들었어요.

일설에 의하면 나디르 디반 벡은 이 자리에 연못은 만들고 싶어, 그곳에 살고 있던 유대교인 미망인에게 땅을 사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해요.

이에 나디르 디반 벡은 그녀의 집 근처에 작은 연못을 여러 개 만든 다음 그녀의 집 방향으로 수로를 팠다고 해요.

연못을 만드는 것보다 그 비용이 훨씬 더 비싼데도 불구하고요.

물로 인해 집의 지반이 점차 약화되어 도저히 살 수 없게 되자, 미망인은 결국 집을 팔 수 밖에 없었다고 해요.

나디르 디반 벡은 집값을 제대로 치르겠다고 했으나, 미망인은 돈을 거절하고 대신 자신의 다른 땅에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를 지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고 해요.



나스레딘 호자의 동상


나스레딘 호자는 터키부터 페르시아, 중앙아시아까지 널리 알려진 인물로, 터키에서는 나스렛딘 호자 Nasreddin Hoca,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물라 나스렛딘 Mulla Nasreddin,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판디 Afandi 라고 불러요.

우리나라로 치자면 봉이김선달이나 김삿갓 같은 인물로, 때로는 현명하고 때로는 멍청하고 엉뚱한 행동으로 많은 해학적인 일화를 많이 남겼어요.

하지만 그의 명성에 비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미스테리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언제, 어디에서 살았는지도 불분명한데다가 심지어는 실존인물이었는지 여부도 논란 중이예요.

터키에서는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가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어 있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그래도 정상적인 모습이네요.



나디르 디반 벡 카나카


라비하우스는 그 주변의 세 채의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를 전부 합쳐서 라비하우스 앙상블 Lyabi-Hauz Emsemble 이 통칭하기도 해요.

그 건물 중 하나인 나디르 디반 벡 카나카 Nodir Devonbegi xonakasi.

1620년에 지어진 건물로, 특히 수피교도들 사이에서 수 세기 동안 문화적,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했던 장소라고 해요.




안은 그냥 평범한 박물관처럼 꾸며져있었어요.



쿠켈다쉬 마드라사


쿠켈다쉬 마드라사 Ko'kaldash Madrasasi는 16세기 중반인 1568년, 압둘라칸 2세 Abdulla Khan Ⅱ 시기에 지어진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로, 부하라에서 가장 큰 마드라사 중 하나이자 과거에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이슬람 교육기관이었어요.

정문의 푸른 장식은 화려한 장식용 도자기인 마욜리카 Majolica 도자기로 장식되었다고 해요.



이슬람 신학교로 쓰였던 건물답게 쿠켈다쉬 마드라사는 수업을 하던 교실과 넓은 광장, 학생들이 머물던 작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19세기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작가인 아이니 Sadriddin Ayni 도 이 마드라사에서 공부했다고 하니 꽤 근대까지 존속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상당수의 방이 장인들을 위한 공방으로 바뀌어서 전통 수공예품들을 만들기도 하고 기념품으로 판매도 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썼던 방 일부는 당시의 환경을 재현해서 전시하고 있어요.

안에 들어가면 보면 두어평 남짓되는 작은 방에 생존에 필요한 가재도구 몇 가지가 전부예요.

당시 학생들의 굉장히 엄격하고 절제된 환경에서 생활했구나를 짐작하게 하면서, 이런 데에서 살면 심심해서라도 공부 밖에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쿠켈다쉬 마드라사에서는 야간에 인형극이 열린다고 해요.

둘 다 그런 공연을 좋아해서 시간이 되면 꼭 보러오자고 했어요.



라비 하우스 옆에는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어요.

벤치에서 간단히 쉰 후에, 마지막 건물을 보러갔어요.



나디르 디반벡 마드라사


라비하우즈 앙상블의 마지막 건물인 나디르 디반벡 마드라사 Nodir Devon Begi Madrasasi.

1622년에 지어진 건물로 원래는 카라반사라이 (카라반 대상들을 위한 숙소)로 지었어요.

그런데 건물을 완성했을 때 수피 쉐이크(이슬람 종교지도자)의 조언을 듣고 갑자기 마드라사로 바꾸었다고 해요.



내부는 쿠켈다쉬 마드라사처럼 대부분이 공방으로 꾸며져 있었어요.



가장 눈에 띄는 기념품은 바로 체스판.

체스의 판과 말을 일일히 손으로 칠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기자기하니 정말 눈길이 가더라고요.

말에 따라서 다 그림도 달라요.

손이 많이 가서 그런지 가격도 가장 저렴한게 60달러가 넘었어요.

제가 체스를 좋아했다면 모르겠지만, 간단한 룰 정도만 아는 수준이라 사지는 않았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어요.



나디르 디반 벡 마드라사는 유난히 테이블이 많은데,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요.

단체 관광객이 오는 경우에는 광장에서 전통춤이나 공연을 하면서 식사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라비 하우즈 앙상블만 돌아봤을 뿐인데, 화려함이나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어요.

부하라 칸국의 부와 화려함을 단편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어요.

여행을 마치고 나중에 여행책자를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라비하우즈를 만든 나디르 디반 벡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하나 전해져 내려온다고 해요.


나디르 디반 벡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부에게 결혼 선물로 단지 귀걸이 한 쌍만을 주었다고 해요.

신부는 부유하고 능력있는 신랑이 귀걸이 한 쌍만을 준 것에 기분이 매우 상했지만, 나디르 디반 벡은 이에 대해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요.

몇 년이 지난 이후, 그가 거액을 들여 라비 하우즈와 주변의 건물들을 짓자 자신의 결혼 선물에 대해 앙금이 남은 부인이 크게 화를 내었어요.

나디르 디반 벡은 부인에게 보석함을 확인해보라고 일러주었어요.

부인이 보석함을 열자 귀걸이 한 짝만이 남아 있었어요.

그녀는 한 짝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했으나, 나디르 디반 벡은 모든 건물이 그가 결혼선물로 준 귀걸이 한 짝의 가격으로 지은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해요.


책에서는 마치 로맨틱한 이야기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제 스타일의 남자는 아니네요.

공권력 남용해서 멀쩡한 사람 집을 뻿은 걸로도 모자라서, 귀걸이도 못 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 귀걸이가 아무리 비싸더라도 한 짝만 하고 돌아다닐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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