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갈수록 점점 햇살이 뜨거워지니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버스 안은 미지근했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문구점에서 작은 부채를 하나 샀는데, 3천원짜리 싸구려 부채가 그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어요.

그루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와인이 유명해요.
현지에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거 같았어요.
어릴 적에 '과일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달아진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귤을 바닥에 던지거나 마구 때린 후에 먹곤 했어요.
이렇게 날씨가 덥고 태양이 뜨거우니 포도도 열받아서 달아질 수 밖에 없는 거었어요.

버스는 만차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자리를 채워서 달렸어요.
차장은 사람이 탈 때마다 장부에다가 무언가를 적고, 한 번 앉은 자리에서 절대 이동하지 못하게 했어요.
이유는 버스가 직행이 아니라 중간중간 도시마다 서면서 손님이 타기도 하고 또 내리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자리를 옮겨버리면 누가 얼마를 내고 어디에서 타서 어디에서 내리는 손님인지 헷갈려요.
중간에 몇몇 사람들이 빈 자리로 옮기려고 했으나 차장이 마구 화를 내면서 제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해서 말다툼을 하기도 했어요.


아제르바이잔의 전 대통령이었던 하이다르 알리예프의 초상화. 지금은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가 대통령이예요.
비록 독재자이긴 하지만, 현재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기틀을 다져놓은 사람이예요.


부서진 모스크. 짓다가 시공사가 부도가 난건지 아니면 원래 버려진 곳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사실 근처에 민가도 없는데 저 모스크를 완공한다고 해도 올 사람이 있을지 의심스러웠어요.


예블라크에 도착했어요. 이 때가 11시.


퀴르 강이 흐르고 있어요.
버스를 타고 오면서 예상치 않던 참 많은 것들을 보았어요.


1시 즈음 되자 버스가 휴게소에 섰어요. 점심 시간이 됐으니 밥을 먹어야하니까요.
일단 세수를 하기 위해서 화장실에 갔어요.
용변 보고 나서 물 내리는 버튼도 없는 낙후된 화장실이었으나 그래도 돈은 안 받았어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 화장실을 가지고 돈을 받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치사하고 돈 아까워요.

사람들은 야외테이블에 앉아 이것저것 시켜먹기도 하고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거리를 사먹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니 덩달아 배가 고파왔어요.
우리의 마지막 끼니는 전날 먹은 기내식.
먹은 것으로만 따지자면 거의 SBS '정글의 법칙' 에 나오는 병만족 수준이었어요.
요기가 될만한 걸 먹고 싶었지만, 파는 데가 없었어요.
분명히 사람들은 뭔가를 먹고 있는데, 메뉴도 없고 어디에서 주문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건물 안에서는 사람이 음식을 가지고 나오고 있는데, 가서 보면 건물 안은 입주하기 전처럼 어두컴컴하고 텅 비어있었어요.
참으로 신기한 일.
수중에 돈이 넉넉했다면 물어물어 가면서 음식을 시켰겠지만, 국경에서 환전을 많이 하지 않아서 현지화도 많지가 않았어요.
음식 시켜서 실컷 먹고난 후 계산을 못하면 그것만큼 쪽팔린 일도 없어요.  
게다가 여기서는 먹튀도 불가능해요.
결국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기로 했어요.

"Bu ne kadar? (얼마예요? 의 터키어)"

M씨가 물어보았어요. 다행히 알아들었어요.
아제르바이잔은 물가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어요.
아이스크림은 우리나라처럼 산뜻한 맛의 '하드' 가 아니라 우유가 듬뿍 들어간, 말 그대로 아이스'크림'이었어요.
먹고 나니 목이 말라 음료수를 하나씩 사고, 식당 옆 수돗가에서 다시 세수를 하고 손과 팔을 씻었어요.
생각 같아서는 발도 씻고 싶었으나 차마 식사 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틀 안 씻은 발을 들이밀 순 없었어요.


약 30분 뒤에 다시 버스가 출발했어요.
바깥 공기 쐬면서 세수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더니 한결 기운이 났어요.


집들이 뭔가 익숙했어요.
처음에는 둘 다 '여기는 중국인들이 사는 데인가?'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집이 한 두채도 아니고 마을 전체가 다 이런 스타일이었어요.

아제르바이잔의 전통 가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동북아시아스러운 느낌이었어요.
아마 저런 스타일의 집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낯설게 보이지 않을 거예요.
왜 저렇게 지었을까요?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창 밖으로 기차도 지나갔어요.


처음에는 그냥 시멘트나 석탄을 실은 평범한 기차라고 생각했어요.

"잠깐... 저거 뭐야!"

M씨가 갑자기 소리를 쳤어요. 기차가 끝도 없이 줄줄이 비엔나로 이어져있었어요.
저 검은 점들이 다 기차 한 량이에요.
얼마나 긴지 사진 한 컷에 다 담을 수도 없어요. 이 사진에도 기차 뒷 부분이 조금 짤렸어요.

"하나.. 둘.. 셋..............쉰 여덟....쉰아홉...예순....예순하나...."

엔진 역할을 하는 기관차 2대가 60량이 넘는 기차를 끌고 있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 청량리역이나 성북 역에서 정선, 태백, 사북 등지에서 시멘트를 싣고 오는 화물 열차들을 종종 보았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기관차 한 대가 20량 정도의 기차를 끌어요.
아무리 기관차가 한 대 더 있다지만 저렇게 긴 기차를 끌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왠지 가다가 중간에 끊어지거나 뭔가 사고가 일어나는 게 정상일 거 같았어요.

"저게 가능해? 진짜 쏘련 과학의 힘이다."

쏘련. 왠지 이 때는 소련이 아니라 '쏘련' 이라고 해줘야 느낌이 사는 거 같아요.
대학 시절 러시아 관련 교양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 때 교수님이 하나 우스갯 소리로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아요.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대치상황에 있을 때 미국의 골머리를 앓게 하던 '쏘련'의 전투기가 하나 있었대요.
미국이 그 전투기를 어쩌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그 전투기를 조종하는 조종사 하나가 탈영해서 미국으로 망명했대요.
옳다구나, 기회는 찬스다! 해서 그 전투기를 해체해봤더니, 내부가 진공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해요.
당시 미국은 크고 불편한 진공관 대신에 가볍고 효율적인 최첨단의 칩과 부품으로 전투기를 만들고 있었는데 말이예요.

여하튼, 그 놀라운 '쏘련' 과학의 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오후 2시 반. 태양이 최고조로 뜨거울 때.
차 안은 에어컨을 틀어놔도 시원한 맛이 없이 미지근했어요.
밖에는 풍경이 바뀌어 있었어요.

"저거 진흙 화산 아냐?"

M씨가 물어봤어요.

"에이... 설마."

진흙 웅덩이에서 가스가 볼록볼록 올라온다던 고부스탄.
고부스탄은 가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렇게 길에서 훤히 보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고부스탄이었네;;;

저 표지판의 다섯 사람은 고부스탄에 그려져있다는 춤추는 사람들이에요.
고부스탄에는 진흙화산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처럼 옛날에 원시인들이 남겨놓은 그림이 있다고 했어요.
고부스탄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관광지.
그러나 가기도 힘들고, 진흙 때문에 옷이며 신발이며 다 버린다기에 마음을 접었어요.
차에서 지나가면서라도 보긴 봤네요.

"바다다!"

고부스탄을 지나서 얼마간 더 가자 반대편으로 바다가 펼쳐졌어요.
이게 그 유명한 카스피해구나!
바쿠는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도시.

즉, 바다가 보인다 = 바쿠에 다 왔다!

처음 버스를 탈 때도 차장이 3시에서 3시 반이면 도착할 거라고 했으니까 사실 이제 바쿠에 다 온 거나 마찬가지.
어차피 서쪽 국경에서 동쪽 끝 바쿠까지 오면서 생각보다 많은 걸 볼 수 있었어요.
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포기해야했던 겐제도 보고, 고부스탄도 봤어요.
멀리서라도 본 것은 본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리고 오후 3시, 한국을 떠난지 39시간 만에 드디어!!!!!! 바쿠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마치 삼장법사 일행이 천축국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