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몽골에 관한 교양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간단한 몽골어와 함께 몽골 문화을 익히는 개론 수업이었는데, 몽골어 특유의 커컥컥컥 발음과 함께 'сайн байна уу (몽골어의 안녕하세요)'를 왜 [사인 바이나 오] 라고 읽지 않고 [사인바이노] 라고 읽는가에 대한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장렬하게 B0를 받고 전사했어요.
그 때 배웠던 몽골 음식에 대한 정보라고는 간단한 음식 이름 몇가지와 '몽골 사람들은 붉은 음식과 흰 음식이 있다. 붉은 음식은 고기요, 흰 음식은 유제품이다' 라는 정도 밖에 없어요.
그 이후 몽골에 대해서는 정말 싸그지 잊고 지내다가, 이웃 블로거인 '돼지왕왕돼지' 님의 블로그를 보고 몽골 음식을 먹으러가야겠다는 욕구가 폭발했어요.
계속 벼르고만 있다가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2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뉴금호타워는 이른바 '몽골타운'으로 불려요.
몽골 국영항공사 MIAT 사무실부터 핸드폰 대리점, 식료품점, 음식점까지 몽골과 연관된 상점 및 사무실 등이 건물 하나에 몰려있거든요.
몽골 음식점도 2,3층에 두 군데나 있어요.
돼지왕왕돼지님은 2층에 있는 '울란바타르'를 가셨지만, 저는 3층에 있는 '잘루스'에 갔어요.
'잘루스'가 더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거든요.
평일 점심시간 무렵에 갔더니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어요.
저는 그나마 한 자리 남아있어서 바로 앉을 수 있었지만, 저보다 늦게 온 사람들은 기본 5-10명씩 줄서서 기다려야했고, 사람이 많아서 그냥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어요.
개중에서 한국 사람이라고는 저와 친구 딱 둘이었고, 대부분은 몽골 사람들이었어요.
잘루스 메뉴.
만원 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가격이 저렴해요.
주변 사람들이 다 몽골사람들이고, 종업원도 몽골사람들이이라서 한국어가 잘 안 통할 거 같았어요.
메뉴판을 하나하나 가리키면서 짧은 러시아어로 'ето один (이거 하나)' 하면서 가리켜서 주문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말을 꽤 잘 하시더라고요.
찐만두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더니, 만두 4개에 사워크림이 곁들여서 나와요.
별생각없이 젓가락으로 만두 하나를 집었더니, 육즙과 함께 고기 기름이 뚝뚝 흘러내렸어요.
겉이 식었다고 그냥 멋모르고 입에 넣으면 입 안을 데일 수도 있어요.
쫄깃한 피에 양고기 특유의 노릿한 냄새가 나는 고기 소가 정말 맛있었어요.
양고기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기는 어느 정도 고기냄새가 나야 제맛이니까요.
양고기 볶음
같이 간 친구는 양고기 볶음을 주문했어요.
양념해서 볶은 고기에 야채 볶음, 밥까지 곁들여 정식 비슷한 느낌으로 나오는데, 예상보다 양이 엄청 많아요.
사진으로는 그렇게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저 그릇이 갈비찜이나 메인요리 담는 쟁반만해요.
고기만 몇 조각 맛보았는데, 간이 좀 있는 것 같았어요.
고기인심도 넉넉해서 고기볶음만 거의 1인분은 나온 거 같아요.
친구가 밥과 야채를 다 먹고도 고기가 다 남았거든요.
칼국수
칼국수도 역시 냉면 사발만한 사이즈였어요.
이름이 '칼국수'라고 가느다란 면을 기대했는데, 거의 수제비 수준으로 넓적한 면이었어요.
진한 고기 국물에 부들부들한 면과 고기조각이 들어있어요.
'굉장히 익숙한 맛인데?'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내던 시절 즐겨먹던 음식 중에 '베쉬바르막'이라는 음식이 있었는데, 그거랑 맛이 거의 흡사했어요
한국에서는 팔지 않는 음식이라서 그냥 그리워만하고 있었는데, 왠지 추억의 맛을 찾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요즘 같은 쌀쌀한 날에 뜨끈한 고깃국물이 들어가니 든든하고 좋아요.
립톤 차
마실 것으로는 차를 시켰어요.
저는 왠만하면 홍차를 잘 주문하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차를 마시는 문화가 없다보니 티백 하나 덜렁 넣어주는 데가 많은데, 주문하는 입장에서는 본전 생각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메뉴 자체에 키릴문자로 '립톤 차'라고 적혀있고, 가격도 500원인 거 감안하면 괜찮았어요.
잘루스는 몽골 사람들이 고향 음식이 그리울 때 찾는 밥집 같은 느낌의 음식점인 듯 해요.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양이 많았어요.
왠만큼 많이 먹는다는 성인 남자들이 가도 양이 적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요.
저도 둘이서 배부르게 먹고도 2만원도 채 안 나왔으니까요
음식 맛도 무난한 편이었어요.
몽골은 가축을 도살할 때 피를 되도록 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고기 비린내가 심하게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호주산 양고기라서 그런지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네요.
전반적으로는 종종 먹으러 가는 우즈베키스탄 음식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다만 양고기의 맛이나 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메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피하시는 게 좋을 듯 해요.
저렴한 가격에 양고기를 많이 먹고 싶을 때는 앞으로 잘루스를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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