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들 지나자 날씨가 개었어요.

비도 그치고, 일단 국경까지 가는 택시를 타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였어요.

밤늦게 국경에 도착해서 어떻게 할까는 그 다음문제.



"어, 호수다!"


앞자리에 앉은 A씨가 호수를 발견했어요.

사마르칸트 근처에 호수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론니플래닛에도 안 써있었는데요.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무언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요.

아마 호수가 아니라 저수지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차는 평지를 조금 달리다가 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이거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왠지 풍경이 낯이 익었어요.

"여기 지난 번에 지나갔던 그 길이구나."

카슈카다리오 여행 때 샤흐리사브즈에서 산을 넘어서 타슈켄트로 왔어요.
그 때 그 길을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어요.
아마 그 큰 산이 사마르칸트 주와 카슈카다리오 주를 구분하는 경계인 것 같아요.


산 정상에는 시장이 있어요.
사람 많고, 가기 쉬운 곳도 많을 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산꼭대기까지 올라와서 물건을 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기 뿐만이 아니라 산길 중간중간에는 이것저것 물건을 파는 사람이 엄청 많았어요.
어린 아이들이 나리 비슷하게 생긴 붉은 꽃을 팔기도 하고, 신맛 나는 풀을 팔기도 해요.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저씨는 지난 번 카슈카다리오 여행 때 밥을 먹었던 바로 그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물을 뜨러갔어요.
자주 있는 일인지 차 뒤쪽에서 빈 페트병이 우수수 나왔어요.
저와 B양은 그 참에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그 식당 화장실은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더럽고, 냄새나고, 남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다녀와야해요.
이동 중에 화장실 가기가 쉽지않거든요.
우리나라처럼 휴게소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부인에게 화장실을 잘 빌려주지 않아요. 
현지인들도 그래서 적당히 안 보이는 길가에 해결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보면 무료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어요.
더군다나 그 지역에서는 그곳 외에 다른 화장실은 한동안 찾기 힘들고요.



차는 산을 넘고, '키톱'이라는 마을에 들어섰어요.
조금만 더 가면 샤흐리사브즈.
저와 A씨는 이미 다녀왔지만, B씨는 가보지 못했어요.

"혹시 샤흐리사브즈 시내 구경 좀 할 수 있나요?"
"이 차 샤흐리사브즈 시내로 안 들어가요."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고, 그냥 차로 지나가면서 구경만 할게요."

아저씨는 좋다고 승락하셨어요.
'옥 사로이'에 데려다달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데려다 준 곳은 '콕 굼바즈.'

"여기가 '콕 사로이'예요. 이제 됐죠?"

아무래도 아저씨가 잘못 알고 계신 것도 같긴 했지만, B씨가 괜찮다고 하기에 다시 타지키스탄 국경으로 출발했어요.



샤흐리사브즈를 조금 벗어나자마자 모두 잠이 들었어요.
전날 갑자기 여행 준비를 하느라 제대로 못 잔데다가 아침 일찍부터 이동하느라고 서둘렀으니 피곤했어요.
두어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니 택시는 가스 충전소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바람이나 쐴 겸 차 밖으로 나왔고, A씨도 차가 정차하자 잠이 깬 듯했어요.

"여기 수르혼다리오야?"
"아마도."

꽤 잔 데다가 지난 번에 봤던 풍경이 아니라서 수르혼 다리오에 왔겠거니 생각했어요.
A씨가 기사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아직 카슈카다리오라고 했어요.

'아직도 한참 남았구나.'

여기도 비가 왔었는지 땅이 젖어있었어요.
산지인데다가 비까지 한 차례 오고나니 기온이 푹 떨어진 모양인지 날이 꽤 춥게 느껴졌어요.
으레 날씨가 더울 줄 알고 긴 옷을 제대로 챙겨오지 않고, 얇은 가디건만 하나 입고 왔어요.
타지키스탄도 산지라던데 거기도 여기처럼 추우면 어쩔지 걱정이 되었어요.


카슈카다리오와 수르혼다리오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유목을 많이 하는 지역이래요.
가는 내내 몇 십마리, 몇 백마리 되어보이는 양떼나 소떼가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는 광경을 쉽게 볼 수가 있었어요.
사료 값은 안 들겠네요.

"수르혼다리오 왔어요."

기사 아저씨께서 바로 앞의 검문소를 가리켰어요.

'드디어 수르혼다리오에 왔구나.'

수르혼다리오는 우즈베키스탄 최남단에 있는 주예요.
중심도시는 테르미즈인데,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도 유명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곳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의 변방 오지에 가까워요.
그닥 유명한 곳도 아니거나와 다른 도시에서 가기에는 너무 외진 곳에 있거든요.

수르혼다리오에 오니 차량 검문이 훨씬 까다로워졌어요.
카슈카다리오까지만 해도 그냥 안전벨트 정도만 하면 대강 통과였는데, 수르혼다리오에 들어오자 모든 운전자가 내려서 트렁크를 열어서 경찰에게 확인시켜줘야했어요.
아마 마약 때문이 아닌가 해요.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양국 모두 마약 생산과 유통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나라.
두 나라와 국경을 마주 하고 있고, 실제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마약이 수르혼다리오를 거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유통되거나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가거든요.



수르혼다리오에 오니 신기한 점은 흙색깔이 달라졌어요.

흙이 검은색 아니면 붉은 색이었어요.

누가 보면 강원 남부 탄광지대인 줄 알았을 거예요.

붉은 빛을 띄는 땅 위에 푸른 풀들이 돋아나니 두 색이 대조되어 보여서 울긋불긋하게 보였어요.



여기에서도 소떼.


카슈카다리오만 해도 길이 꽤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르혼다리오에 오니까 길이 더욱 나빠졌어요.

포장 자체가 안 된 길도 엄청 많았어요.

거기에 비까지 오니 차는 점점 진흙탕을 달리고 있었어요.



창 밖으로 설산이 보였어요.


"여기서 잠시 세워줄 수 있나요? 사진 찍게요."


A씨가 물었어요.
아저씨는 대답이 없다가 갑자기 차를 세웠어요.
A씨가 내리려하자 아저씨는 내리지 말라고 말렸어요.
앞에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있었어요.


길 자체도 포장이 안 된 길이었는데, 비가 많이 오니 산사태가 났는지 길이 유실되어 있었어요.
흙탕물이 꽤나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나가야할지 몰라 일단 차에서 내린 상태였고, 큰 화물트럭들만 간간히 지나가고 있었어요.
아저씨는 별 것이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운전을 해서 통과했어요.


다르벤트 (Darbent) 지역으로 햇빛이 금가루를 뿌리듯 쏟아졌어요.
게다가 무지개도 떠 있었어요.

하지만 해는 곧 지고,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어요.
가로등 하나 없는 길에 계속 꼬불꼬불한 산길만 계속 이어졌어요.
더군다나 날씨 상황은 계속 안 좋아져 번개가 계속 치고, 빗방울도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열심히 운전을 한다고 해서 1시간에 40-50km를 채 못갔어요.
시간은 10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 1시간도 더 넘게 가야한다고 했어요.

"오늘 반드시 타지키스탄 가야해?"

기사 아저씨가 물었어요.
사실 하루 이틀 늦어진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었어요.
다만 우리가 마음이 조급해서 서둘러 타지키스탄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었어요.

"반드시 가야하는 게 아니면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게 어때?"

솔직히 고민이 되었어요.
국경이 24시간 열려있다고 해도 도착하면 자정.
그 시간에 택시가 있을지도 불분명하고, 택시가 없으면 국경에서 밤을 새는 수 밖에 없어요.
하루종일 날씨도 안 좋았는데, 비가 내린다면 비를 피할 곳도 없을건 뻔했어요.
택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두샨베에 도착해서 호텔을 찾아다녀야하는데, 밤늦게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고요.

사실 여행할 때 현지인의 집에 신세를 지는 건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못 사는 나라에서는 더더욱이요.
하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기사 아저씨도 더이상 운전하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럼 내일 아침 6시에 출발할 수 있나요?"
"물론. 원하는 시간에 떠날 수 있어."

결국, 기사아저씨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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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