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꾸리고, 밤새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느라 3시간 남짓 밖에 자지 못했어요.

A씨도 밤을 샜다고 했어요.

원래는 역까지 지하철로 가려고 했으나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빠듯해서 택시를 타고 갔어요.


타슈켄트에는 남역과 북역, 2개의 역이 있어요.
보통 이용하는 역은 북역이에요.
건물에는 '타슈켄트 역 Vokzal Toshkent'이라고 써있지만, 그렇게 말하면 택시기사들이 잘 못 알아들어요,
러시아어로 '북역 Северный вокзал' 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타슈켄트 지하철역 Toshkent metro bekati' 라고 해야 북역으로 갈 수 있어요.


기차역에 도착하니 다행히 7시 33분.

역 밖에서 B씨를 만나서 같이 안으로 들어갔어요.


타슈켄트 기차역은 매표소와 역이 분리되어 있어 오직 표를 구입한 사람만 역에 들어갈 수 있어요.

일단 들어가기 전에 밖에 있는 검문소에서 기차표을 검사한 뒤, 역 입구의 보안검색대에서 엑스레이로 짐 검사를 해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면 다시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경찰에게 가서 여권과 표 검사를 받아요.

경찰은 여권을 확인한 후 여권 뒷면에 도장을 찍어줘요.

이렇게 검사를 까다롭게 하는 이유는 아마 테러 때문인 거 같아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테러 시도가 있었고, 실제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테러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검문이 매우 삼엄해졌다고 들었어요.

모든 지하철 역에 경비견을 배치하고 짐검사를 시작했고, 공항도 폐쇄해서 실제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모두 밖에서 기다려야한대요.



"어! 저기서 마실 거나 뽑아가자."

우즈베키스탄에서 처음으로 보는 자판기.
한국에서는 흔해 빠진 평범한 자판기인데, 막상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용하려니 어떻게 써야하는지 난감했어요.
이건 돈을 먼저 넣어야하는지, 버튼을 눌러야하는지, 아님 실제 작동이 되기는 하는건지...
1500숨짜리 아이스티 한 통 뽑아가려는 건데,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요. 

"뭐해요?"

경찰이 왔어요.

"이거요."

자판기라는 말은 우즈벡어로 몰라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쓸 필요 자체가 없는 말이에요.

경찰은 어이 없는 듯이 웃더니 무엇을 살 거냐고 물어봤어요.
아이스티 페트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1500숨을 받아가지고 자판기에 집어넣고 번호를 눌러주었어요.
창피해서, 고맙다고 이야기 한 뒤 차를 가지고 바로 도망갔어요.
아마 그 경찰은 '얘들은 어느 깡촌에서 온 애들인가' 했을 거예요.



기차에 어떤 할아버지가 탔어요.

"너희들은 어디 가니?"
"사마르칸트 가요."
"그럼 왜 저 옆 기차 안 타?"

옆 기차는 아침 8시에 출발하는 아프라시압 Afrasiab 기차인데, 2시간 반이면 사마르칸트에 도착하는 특급열차예요.
대신 가격은 거의 2배에 가까워요.
우리가 탄 기차는 저렴한 대신 사마르칸트까지 약 4시간 걸린다고 했어요.

"사마르칸트 보고는 어디 가니? 부하라? 히바?"
"아뇨, 타지키스탄 가려고요."
"거기 타직인들 밖에 없는데 뭐하러 가?"

여행 내내 느꼈던 사실이지만, 우즈벡 사람들은 타지키스탄은 무시하는 경향이 좀 있는 거 같아요.
그 할아버지는 부하라와 히바가 매우 예쁘다면서 타지키스탄 가지말고 그런 곳을 가라고 했어요.

기차는 8시 5분이 좀 넘자 출발했어요.
출발하자마자 검표원이 돌아다니면서 표를 걷어가서 뒷장을 떼서 돌려주고, 열차 내 모니터에서는 우즈벡 영화를 틀어주었어요.


출발할 때만 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점점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다 말다를 반복했어요.
피곤해서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영 잠이 오지 않아서 핸드폰으로 고스톱을 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우즈베키스탄 기차에서는 특별히 안내 방송을 해주지 않았어요.

"사마르칸트! 사마르칸트!"

사마르칸트 역에 도착하자 표를 걷어갔던 검표원이 소리를 지르고 다녔어요.
자던 A씨를 황급히 깨워서 내렸어요.




정오 무렵, 사마르칸트에 도착했어요.
론니 플래닛에 따르면 사마르칸트에서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레기스탄 광장 근처에서 마슈르트카를 타고 펜지켄트를 가야한다고 했어요.
역에서 나오자마자 택시기사들이 버글버글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레기스톤 광장 가요!"
"얼마인데요?"
"만숨이요."

B씨는 예전에 사마르칸트를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 때 3명이 레기스탄 광장까지 5천숨 정도 냈다고 했어요.
이것들이 외국인이라고 장난하나! 우리는 무려 타슈켄트 거주자라고!!!!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앞쪽으로 가면 레기스탄 가는 버스가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일단 택시 기사 무리에서 벗어나서 앞으로 쭉 가니 Agrabank 가 보이고 공터에 버스들이 모여있었어요.

"레기스탄 가는 버스 있어요?"
"3번 타세요."

사마르칸트 버스비는 500숨.타슈켄트보다 무려 200숨이나 싸요.
시력 좋은 A씨가 버스 옆에서 100숨도 주워다주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100숨은 거의 걸레짝과 다음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요.
누군가가 쓰다가 두조각 나니까 그냥 버린 것 같았어요.
다행히 찢어진 조각을 모두 찾아서 테이프로만 붙이면 쓸 수 있어요.
어쨌거나 돈을 주운 것은 매우 좋은 징조 같았어요.


사마르칸트 역에서 레기스탄 광장까지 가는 길은 매우 깔끔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어요.
오히려 타슈켄트보다 더 잘 꾸며놓은 것 같았어요.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그런가?'

B씨의 말로는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인 이슬람 카리모프의 고향이라 신경써서 꾸민다고 했어요.



버스를 타고 레기스탄 광장 근처에서 내렸어요.
조금 걸어가니 레기스탄 광장이 보이는 바로 옆쪽 골목으로 마슈르트카들이 서 있었어요.

"펜지켄트 가는 마슈르트카 있어요?"
"펜지켄트? 아~ 판자켄트? 거기는 뭐하러 가는데?"
"타지키스탄 가려고요."
"거기 국경 닫혔어!"
"네?"
"판자펜트 국경 닫힌지 꽤 되었어. 오이벡으로 가든지 아니면 수르혼다리오로 가야해."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하늘이 어둑어둑하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씨알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자 사람들이 모두 모스크처럼 보이는 건물 아래로 비를 피하러 모여들었어요.
현지인들은 자기들끼리 우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 사람이 관광객 상대로 택시 기사하는 사람이라서 잘 알아. 판자켄트 국경 닫혔어."

우리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는 '일단 아브토 스탄찌아에서 판자켄트 가는 다마스가 있으니 거기 가서 알아보라.'고 했어요.
지나가는 소나기인지 빗줄기가 좀 잦아들었고, 우리는 그 참에 빨리 택시를 잡았어요.

"아브토 스탄찌아요."
"아브토 바그잘?"

그게 그거 아닌가? 일단 맞다고 하고, 탔어요.
아저씨는 외국인이 우즈벡어를 하는 게 신기한지 자꾸 말을 걸었어요.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에요?"
"판자켄트 가요. 타지키스탄 국경 가려고요."

아저씨가 갑자기 누군가에게 전화을 해서 낯선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사마르칸트는 원래 타직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
아마도 그 언어는 타직어인 것 같았어요.

"정확히 어디 가는 거예요? 아브토 바그잘이에요 아니면 아브토 스탄찌야에요?"
"아브토 스탄찌야요."

알고 보니 아브토 바그잘과 아브토 스탄찌야는 같은 장소가 아니었고, 우리는 모르고 끄덕끄덕했던 것.
이야기를 하다보니 뭔가 의심쩍어 아는 사람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어요.
아저씨는 가던 길을 다시 돌아가, 아브토 스탄찌야로 데려다주었어요.



아브토 스탄찌아에 도착하자 들었던 이야기대로 다마스가 엄청 많이 몰려있었어요.
일단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어요.

"판자켄트, 타지키스탄 국경 가나요?"
"타지키스탄 국경? 거기 6개월 전에 닫혔어."

여기 기사들도 하는 이야기는 똑같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키스탄 넘어가는 국경은 타슈켄트 쪽과 수르혼다리오 쪽 밖에 없고, 그 외의 국경은 전부 닫혔다고 했어요.
그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양국 사이에 관계가 안 좋아져서 그런 것 같아요.
이렇게 된 이상 다시 타슈켄트로 돌아갈 수는 없고, 수르혼다리오로 넘어가야했어요.

"여기서 수르혼다리오에 있는 국경까지 어떻게 가요?"
"그렙노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택시가 있어."
"그렙노이 멀어요?"
"8km 정도 떨어져있는데, 10,000숨 내면 거기까지 데려다줄게."

가겠다고 하자, 바로 옆에 세워두었던 다마스 기사가 바로 목적지 팻말을 치우고 우리를 태웠어요.


날씨는 계속 흐렸다 갰다, 소나기가 내렸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오락가락 했어요.
사마르칸트의 외곽은 도로상태가 타슈켄트보다 안 좋다는 것을 빼고는 평범했어요.


오후 2시 경, 그렙노이에 도착했어요.
다마스 기사는 우리에게 국경까지 가는 택시기사를 알아봐주겠다고 했어요.
잠시 뒤, 아저씨 한 분이 오셨어요.

"타지키스탄 국경 간다고?"
"네. 한 사람에 얼마예요?"
"국경까지는 한 사람에 75,000숨이고, 그 근처도시까지가면 65,000숨이야.
근처도시에서 택시 타고 1시간 더 가야해서, 거기서 국경 가도 10,000숨은 들어."

세 명이 합치면 225,000숨이지만, A씨가 열심히 흥정을 해서 셋 합쳐 215,000숨에 가기로 했어요.
짐을 트렁크에 싣고,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저씨가 전혀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한 사람 더 와야 출발해. 셋이 가려면 100달러."

우즈베키스탄의 장거리 합승 택시는 4명이 기준이에요.
즉, 승객 4명이 생길 때까지 출발하지 않아요.  
바로 출발하려면 없는 승객 몫까지 남은 사람들이 내줘야해요.

셋이서 100달러는 매우 비싼 가격이에요.
그 돈이라면 사마르칸트가 아니라 타슈켄트에서 수르혼다리오 국경까지 갈 수도 있을 거예요.
타슈켄트에서 수르혼다리오의 중심도시인 테르미즈까지 기차로 갈 때, 1사람당 70,000숨이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시간! 
기사 아저씨 말로는 사마르칸트에서 국경까지 거리로는 500km, 8시간이 걸린다고 했어요.
당장 출발해봐야 한밤 중에나 국경에 도착할 텐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다른 승객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촉박했어요.

"100달러 드릴게요. 지금 바로 출발해요."

이렇게 사마르칸트를 떠났어요.
두 번이나 사마르칸트를 왔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또 이렇게 떠나야했어요.


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