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의 중심가인 니자미거리에서 흘러흘러 걷다보니 구시가지와 처녀의 탑도 보고 카스피해까지 왔어요.
예상치 않게 하루에 바쿠 시내 관광을 다 한 셈.
그 이유는 관광지들이 근처에 몰려있어서이기도 했지만, 해가 늦게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우리가 시내에 도착한 시간이 5시 남짓.
아마 한국 같았으면 두어시간 돌아다니다보면 어두워졌겠지만, 여름의 바쿠는 9시까지는 밖이 밝았요.
9시 반이 되어야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10시~10시반 정도가 되어야 '아, 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는 정말 산유국이구나!"

바다에서 석유를 뽑아올리는 유정이 가깝게 보였어요.
바쿠는 19세기부터 석유를 생산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유지예요.
예전에는 석유가 얼마나 많았는지 삽질만 해도, 심지어는 손으로 땅을 파도 석유를 얻을 수 있었대요.
하지만 지금은 육상 유전은 거의 고갈되고, 카스피해에서 석유를 생산하고 있어요.
기름 한 방울도 안 난다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참 부러운 일.


카스피해를 따라 있는 공원이예요.

"야!  확실히 돈 많은 나라는 다르구나."

정말 유럽의 어느 밤거리 부럽지 않았어요.
아마 그렇고 그런 유럽 도시들 보다는 훨씬 나을 거예요.
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 뿐만이 아니라 비스트로, 카페, 식당, 간단한 스낵을 파는 간이 키오스크 등 먹고 놀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다 바닷가 공원에 모여있었어요.
이건 아예 국가 측에서 사람들에게 놀라고 자리를 깔아준 것.

낮에는 더위 때문에 집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더위가 한풀 꺾이자 모두 선선한 바다로 몰려나와 여름밤을 즐기고 있었어요.
신기한 점은 밤 10시, 11시가 넘도록 어린 아이들도 다 뛰어논다는 점이었어요.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한다."며 밤 9시에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나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저로서는 참 부럽고도 낯선 일.   
그런데 그 시간에 안 자면 성장호르몬이 안 나올텐데요.

'아, 기름 냄새.'

공원은 예쁘지만, 카스피해 바닷물은 더러워요.
누가 기름 나오는 바다 아니랄까봐 기름기와 쓰레기가 둥둥 떠있었어요.
그 유명하다는 카스피해에 손 한 번 담궈보고 싶었지만, 괜히 피부병만 걸릴까봐 깔끔하게 포기했어요.


"우리 뭐라도 먹어요."

길거리 간이 키오스크에서 되네르 케밥 두 개와 콜라를 사서 벤치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가격은 1 마나트 정도.
아제르바이잔 마나트는 유로랑 거의 비슷해서 '1마나트=1유로'로 계산하면 편해요.
빵은 좀 질기고 퍽퍽했지만, 야채랑 고기도 꽉꽉 넣어주고 소스도 매콤해서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우리 둘 다 여행을 할 때 반드시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한다거나 식도락을 즐긴다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다행이었어요.

300년 이상 된 바오밥 나무래요.


바쿠의 야경.
바쿠는 건물 외곽에 조명 시설을 해서 밤이 되면 온 도시가 반짝반짝 한 게 너무 예뼜어요.
정말 '바쿠의 밤은 낮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이 났어요.
그런데 바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처녀의 탑'에는 조명 설비를 안 해서 밤에는 안 보인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

콜라를 쪽쪽 빨면서 여유롭게 공원을 산책했어요.

"헉! 저거 봐요!"

공원에는 시간과 기온을 알려주는 큰 철탑이 하나 있었어요.

지금 기온이 33도? 밤 11시인데?

한국에서는 25도가 넘으면 열대야.
낮에도 30도가 넘으면 삼복더위니 폭염주의보니 뭐니 해서 정말 '더운 날' 느낌이 예요.
우리 둘 다 '이제 좀 시원해서 살 거 같다'고 좋아하고 있는데 33도라니.
낮에 41도의 제대로 된 더위를 먹어서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가? 아님 습기가 적어서 그런건가?
여튼 이것도 신기한 일.


일단 밤이 늦었으니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돌아가기로 했어요.
첫날 늦게 도착해서 바쿠를 이정도 봤으면 예상보다 큰 성과를 거둔 거예요.
밤늦도록 밖에 나가 노는 사람들이 많아서 택시 잡기는 어렵지가 않았어요. 
택시 기사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었거든요.

"우리 여기 가고 싶어요."

한 택시기사에게 호텔에서 가져온 주소와 지도가 있는 명함을 보여줬어요.

"8마나트."

아제르바이잔 택시에는 미터기가 안 달려있어요.
무조건 택시기사랑 흥정하고 봐야해요. 

"이 호텔에서 택시타고 5마나트에 왔어요."
"그 가격에는 못 가요."

그리고는 이어지는 신세한탄.
나에게는 가족이 몇 있는데 나만 바라보고 있다, 동생들도 다 공부를 시켜야하고, 어머니가 아프시고 등등

결국 7마나트에 합의를 보고 택시를 탔어요. 어차피 야간 할증인 셈 치면 되니까요. 
택시는 역시 먼지 풀풀 날리는 구식 차였지만, 시내에서 100km/h 는 가뿐히 넘어주는 센스있는 차였어요.


호텔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샤워를 하려는데....

"아이씨!!!!!!!!"

한국에서 샴푸랑 린스를 챙겨온다는 게 린스만 두 통을 챙겨오는 바보짓을 했어요.
다행히 호텔에서 제공하는 샴푸가 있어 임시적으로 사용했지만 거품이 정말 안 나고 머리가 뻣뻣했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푹 씻으니까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샤워를 마친 후, 속옷과 양말, 땀에 젖은 옷들을 빨고 헤어드라이기로 일일이 말리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어요.


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