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조각들2017. 8. 27. 16:30
 




숙소에 짐을 두고, 사라예보 시내 중심거리로 나왔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사라예보 시내 중심가를 걷기 시작했다.

아직 쌀쌀한 3월 말이지만, 거리에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그닥 위험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도시는 소박하지만, 참 예뻤다.

그러다 문을 연 어느 작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초코케이크를 주문하고, 옆 테이블 사람이 마시고 있던 뭔지 모를 음료를 하나 주문했다.



엣퉷퉷!



커피를 마실까 했지만, 잠을 못 잘 거 같아 고른 거였다.

얼핏 보기에는 요거트나 우유 종류 아닐까 싶었는데, 느끼하면서도 썩은 맛이 났다.

얌전히 커피 주문할걸.

기껏 돈 주고 산 거니 아까워서 마시려고 했지만, 결국 몇 모금 못 마시고 아예 손을 놓았다.

이름이 뭔지도 모른다.

알았으면 레시피라도 찾아봤을텐데.


옆에 있는 초코케이크나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암흑이 되었다.

깜짝 놀라 밖을 보니, 카페 뿐만 아니라 거리 전체가 정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너무 평온하다.

서빙을 하던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초를 켜더니 다시 일을 했고, 카페 안의 사람들도 초 몇 개의 불빛에 의존해서 커피도 마시고, 하던 이야기도 계속 했다.

길가던 사람들도 그냥 제갈길 간다.

가끔 신나서 소리지르면서 뛰어다니는 청년들은 몇 있었지만. 

폭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매치기 같은 경범죄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밝거나 어둡거나 차이가 없다.

원래 여기 사람들이 감정 표현이 적은 건가? 아니면 하도 일상적인 일이라서 다들 그러려니 하는 건가?

10분 정도 지나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직원은 초를 켰던 것처럼 초를 껐고, 사람들은 흘깃 보더니 다시 평온하다.

암흑의 시간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만 괜히 무섭고 걱정했나?

참 낯설고 재미있었던 경험이었다. 



2009.3.31 보스니아 사라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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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티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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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런 ㅜㅜ 황당한 경험을 하셨네요. 케잌 먹고 있는데 갑짜기 암흑으로 돌변하는 생각만해도 전 끔찍하네요. ㅎㅎㅎㅎ 그래도 기억할만한 추억이 되어서 이렇게 글도 올리셨네요.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반갑습니다.

    2017.08.27 17: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가끔 정전되는 일은 겪었지만, 한 나라 수도의 가장 도심거리에서 갑자기 정전되어 버리는 건 진짜 전무후무한 경험이었어요.
      처음에는 '무슨 일 생기는거 아냐' 싶어서 걱정이 왈칵 들었는데, 다들 너무 평온하더라고요ㅋㅋㅋ

      2017.08.27 23:41 신고 [ ADDR : EDIT/ DEL ]
  2. 퉷퉷이라니... 안타깝네요 ㅠ
    초코케이크는 맛있어보이는데요?!

    2017.08.27 17: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요즘 같았으면 메뉴판도 다 찍어두고 해서 저 음료 이름을 알아냈을 거예요.
      당시만해도 여행 초짜라 그냥 지나쳤지만요.
      초콜렛 케이크는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죠 ㅋㅋㅋ

      2017.08.27 23:43 신고 [ ADDR : EDIT/ DEL ]
  3. 음료가 입맛에 안맞으시거나,,
    맛이 없는 가게였군요!!ㅠㅠ

    2017.08.27 18: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맛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고, 제 입맛에 음료가 잘 안 맞았던 거 같아요.
      이거 시킨 다른 분들이 잘 드셨던 거 보면요.

      2017.08.27 23:44 신고 [ ADDR : EDIT/ DEL ]
  4. 가끔 옛날 사진을 꺼내어 회상을 해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 때문에 못하고 있다는 것을 히티틀러님의 글을 보고 다시 상기하고 갑니다. ^^

    2017.08.27 18: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예전에 찍어둔 여행 사진들 보면서, 미처 여행기에서 쓰지 못한 내용이나 짤막한 추억 같은 건 이렇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ㅎㅎ

      2017.08.27 23:45 신고 [ ADDR : EDIT/ DEL ]
  5. 혼자셨다면 놀라고 무서우셨을 것 같아요. 저는 몇년 전에 앙카라 출장 갔을때 거기 중국식당에서 밥먹다가 갑자기 불이 다 나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거기 분들이 별로 당황하지 않고 촛불 켜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도 거긴 거리 전체가 정전은 아니었고 식당 몇개만 정전인데다 일행들이 있어서 괜찮긴 했는데 혼자였다면 무서웠을 것 같아요. 히티틀러님은 엄청 꿋꿋하시네요 :)

    2017.08.27 22: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혼자는 아니고, 일행이 있긴 했어요.
      그래도 금방 전기가 들어온 게 아니라 거의 10분간 정전이다보니 긴장이 되긴 하더라고요.
      소매치기라든가 성추행이라든가 하는 범죄가 있을 수도 있고, 외국인이다보니 눈에 더 띄기도 하고요.
      그런데 너무 사람들이 평온해서 걱정하는 제가 더 민망하더라고요;;;

      2017.08.27 23:52 신고 [ ADDR : EDIT/ DEL ]
  6. 저라면 지레 겁먹을 것 같아요.
    맛이 희안한 음료의 이름이라도 아셨음 좋았을텐데... 어쩐지 궁금하실 것 같아요. ㅎㅎ
    잠깐의 정전이지만... 낯선곳이라 긴장될 수 밖에 없을 듯 싶네요.

    2017.08.28 00: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도 순간 긴장했는데, 주변사람들이 너무 평온해서 티를 낼 수는 없었어요.
      소매치기 같은 경범죄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데, 딱 봐도 눈에 띄는 외국인이다보니 더더욱 긴장을 놓칠 수 없더라고요.

      2017.08.28 00:59 신고 [ ADDR : EDIT/ DEL ]
  7. 2009년 이야기를 이렇게 생생하게 할 수 있다는게 신기해요^^
    정전이 되어도 당연한...꼭 아프리카 같아요^^
    저도 아프리카에 사는 언니네 집에 갓을때.. 수시로 정전이되었는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초를 켜고 다시 하던일을 이어서 하더라구요

    2017.08.28 01: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가정집 같은데야 정전이 될 수 있다고 해도 수도 중심가에서 단체 정전이 되는 건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인 거 같아요.
      우리나라는 한 번 블랙아웃되면 난리가 나는데요.
      여행 사진 중에서 좀 특별한 이야기가 있거나 기억에 많이 남는 사진들을 가지고 짤막하게 이야기를 풀어보려 노력 중이에요.

      2017.08.29 20:01 신고 [ ADDR : EDIT/ DEL ]
  8. 진짜 갑자기 전 어린시절로 여행을 하게 만드는 포스팅입니다. 정전되면 신나서 뛰어다녔었는데. 불 나갔다~~불 나갔다~~2009년에 좋은 추억이 살아있으시네요.ㅎㅎㅎ근데 썩은 맛 음료는 과연 무엇일지 호기심이 입니다.ㅋㅋ

    2017.08.28 23: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는 정전이 되면 무서워요.
      어둠을 싫어해서리..
      어두울 때 뛰면 뭔가 느낌이 다른가요?ㅋㅋㅋㅋ

      2017.08.29 20:02 신고 [ ADDR : EDIT/ DEL ]
  9. 해외에서 갑자기 정전이면 놀랄 거 같은데요@.@ 한국에서도 그런데 @.@
    보스니아 사람들, 강심장이네요ㅋㅋㅋㅋ

    2017.08.29 03: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강심장이라기보다는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한국인 반응이랄까요ㅋㅋㅋ
      너무 많이 겪어서 담담한 거 같은 그런 분위기였어요.
      저는 사라예보 간 첫날밤에 저런 일을 겪어서 당황했는데, 주변이 너무 덤덤해서 티를 내기도 민망했어요.

      2017.08.30 01:44 신고 [ ADDR : EDIT/ DEL ]
  10. 사라예보 이 지역도 참 파란만장한 곳이네요. 동계 올림픽도 치루면서 잘 나가다가 내전으로 다 복잡하고 끔찍하더니 이제는 또 평온을 찾은 듯 해 보여요. 그런 일들을 다 겪고 살았으니 (어린 세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정전은 그냥 쿨하게 지나갈 것 같구요.
    보스니아 난민으로 미국에 정착한 사람이 남편 예전 직장 동료였었어요. 이 사람은 보스니아에서 수용소에 끌려가 수용되었었는데 보스니아에서 나름 유명한 사람이라 수용소 내에서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2017.09.06 02: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제가 여행했을 때만해도 도시 건물 곳곳에서 총자국을 볼 수 있었어요.
      터키에도 보스니아쪽에서 오신 분들도 꽤 있었어요.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토이기도 했고, 무슬림도 많다보니 연고만 있으면 터키 쪽으로 많이 피신하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수용소까지 끌려가셨다니... 생각만해도 끔직하네요.
      전쟁은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2017.09.08 02:0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