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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2019 말레이시아[完]

여자 혼자 말레이시아 여행 - 07. 1/18 페낭 클랜 제티 (추 제티, 탄 제티, 리 제티, 뉴 제티, 여 제티)

by 히티틀러 2019.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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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따라 클랜 제티 Clan Jetty 를 보러갔다.

클랜 제티는 19세기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중국계 노동자들이 바닷가에 짓고 살던 수상가옥 마을을 의미한다.

집성촌처럼 일가를 중심으로 모여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성을 따라 추 제티 Chew Jetty, 탄 제티 Tan Jetty, 림 제티 Lim Jetty, 여 제티 Yeoh Jetty 등으로 나뉜다.

7-8개 정도가 인근에 모여있는데, 다 모아서 클랜 제티 Clan Jetties 라고 통칭한다.

첫날 공항에서 라피드 페낭 버스를 타고 내렸던 터미널도 정식 명칭은 웰드 퀘이 Weld Quay 터미널이지만, 클랜 제티와 가까워서 일반적으로는 제티 터미널 Jeti Terminal 이라고 더 많이 불리곤 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추 제티 Chew Jetty 로, 제티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번화한 곳이라고 한다.

일부러 여기부터 간 건 아니고, 포트 콘월리스 방향에서 걸어가는 길에서 입구가 가장 가까운 데 있었기 때문에 먼저 들렀다.




츄 제티가 형성된 건 19세기 중엽으로, 중국 푸젠성 쪽에서 온 사람들이 만든 수상가옥 마을이라고 한다.

입장료는 없지만, 방문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로 제한되어있는데, 현재도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75세대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길 양쪽으로는 기념품이나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쭉 있어서 주택가라기보다는 관광지에 가까웠다.

일부는 수상가옥을 개조해서 관광객들 대상으로 홈스테이나 수상가옥 체험 등을 운영한다고 했다.



수상가옥이라고는 하지만, 아예 바다 한가운데 집은 지은 건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바닷가 인근 뻘밭부터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는데, 하나둘 가구가 들어나다보니 바다쪽까지 마을이 형성된 것 같았다.

전기나 수도 공급 같은 문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이는 집들은 비교적 육지 가까운 데 몰려있었고, 멀리 갈수록 가게나 창고 등이 대부분이었다.



페낭 조지타운이 곳곳에 그려놓은 벽화로 유명한 것처럼 여기에서도 몇 군데 벽화를 볼 수 있었다.

여기나 저기나 벽화 그리는 게 유행인가 보다.

그나저나 여기는 바로 바닷가 옆인데, 저기에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바다의 비린내보다는 오폐수의 쾨쾨한 냄새가 나서 으레 더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짱뚱어인지 망둥이인지 펄떡거리는 걸 보니 그렇게 더러운 건 아닌가보다.



길의 맨 끝에 있는 건물은 사당이었다.

감천궁 感天宮 이라고 쓰여있는데, 정확히 무슨 신인지는 모르겠고 도교 사당인 듯 했다.




제티를 찾는 이유는 바로 이 풍경 때문이다.

나무로 만든 길이 끝나는 지점과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너무 예쁘다.

특히 인생 사진을 남기 수 있다는 포토스팟으로 유명해서 다들 사진 한 장씩은 남기곤 한다.

혼자 있는 내가 만만해보였는지 일행과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내 사진은 한 장도 안 찍는데, 남의 사진만 잔뜩 찍어주었다.



저 멀리 페낭대교 Penang Bridge 가 보인다.

말레이시아 본토와 페낭 섬을 잇는 다리로, 무려 길이가 13.5km 가 된다고 한다.

이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육로가 없어서 페리로만 오갈 수 있었다고 한다.

1985년 완공되었는데, 우리나라의 현대건설이 건설했다고 한다.



'미녀 사랑해요' 는 대체 누가 알려준 걸까.



츄 제티를 나와서 1-2분 정도 걸어갔는데, 고소한 기름냄새가 났다.

튀김 가게다.

관광객인지 현지인인지 구분은 안 가지만, 너덧 명이 앞에서 튀김을 고르고 있으니 나도 호기심이 갔다.

테이크아웃으로 운영하는 가게라, 걸으면서 먹을 생각으로 튀김을 포장했다.




운좋게 근처에 벤치가 있어서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2개를 샀는데, 하나는 Pisang Goreng, 바나나 튀김이고, 다른 하나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골랐는데, 고구마 튀김인 듯 했다.



두 번째로 온 곳은 탄 제티 Tan Jeti 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츄 제티에서 3-4분만 걸어가면 입구가 나온다.



아까와는 달리 여기는 가게도, 사람들도 별로 없고, 비교적 조용했다.



대신 나무다리가 좀 더 부실한 편이다.

나무판 자체도 좀 더 낡아보였고 얼기설기 엮여저있어서 틈 사이로 바닥이 들여다보였다.



미쳐불겄네



걸을 때마다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물도 무서워하고,  높은 곳도 무서워하는 나에는 정말 아랫도리가 후들후들거렸다.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저 틈새.

핸드폰 하나 가지고 지도도 보고, 사진도 찍고, 기록도 하고, 여행의 전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잘못해서 손에 미끄러진다면? 그래서 저 틈새로 빠져버린다면?

그런 아찔한 생각에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한 발씩 조심조심 걸어가기 시작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산 넘어 산이라고, 허허벌판에 또 다시 길이 펼쳐졌다.

양쪽 옆에 집과 가게들이 있을 때는 그래도 '사람이 살 정도면 안전하겠지' 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저기는 정말 바닷가 허허벌판에 발판 하나 믿고 가야한다.

핸드폰이 문제가 아니라 발판이 뚝 떨어져서 내가 바다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는 상황.

고민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말레이 여학생들 3-4명이 재잘거리면서 다가왔다.

만약에 사고가 난다면 최소한 저 아이들이 도와줄 사람은 불러주겠지... 아니면 적어도 저승가는 길에 동행은 있겠지... 라는 호랑코말코 같은 생각을 하면서 발을 내딛었다.



여기는 다리 상태가 더더욱 엉망이다.

입구에 보니 통행시간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라고 쓰여있는데,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어보였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걸어갔다가는 100% 뻘밭으로 직행할 각이다.



중간에 있는 빨간집은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화장실이었다.

구멍 하나만 뚫려있는게 정말 친환경인데, 문이 없이 그냥 뻥뚫려있어서 볼일은 도저히 못 볼 거 같다.



빨간 지붕의 가건물을 넘어서면 본격적으로 물이 넘실거리는 바닷길이다.

다리의 지지대는 이끼인지 해조류인 게 잔뜩 껴있는데, 자세히보니 나무가 썩지 말라고 PVC 파이프를 씌워놓았다.

펄럭이는 노란 깃발이 예뻤다.



이렇게 보니 제법 그럴싸한 수상가옥 마을의 느낌이 난다.

왠지 수맥의 영향은 장난 아닐 거 같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수상가옥을 많이 짓는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암만 봐도 '수맥이 엄청나겠다' 라는 엉뚱한 생각만 든다.




다리 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나왔다.



세번째로 간 곳은 리 제티 Lee Clan Jeti 다.

원래 이렇게까지 많이 갈 생각은 없었는데, 걷다보니 보여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탄 제티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걸리는 거 같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길은 나무판자로 되어있기는 했지만, 그냥 평범한 동네 느낌이었다.

길 양쪽에는 전신주가 서있었고, 수도를 공급하는 것으로 보이는 파이프가 연결되었으며, 쓰레기차가 수거하는 거 같은 큰 쓰레기통도 있었다.


거의 마을 끝까지 걸어가서야 길이 살짝 보였다.



앞서 봤던 츄 제티나 탄 제티와 비교해보면 리 제티는 바닷길이 짧은 편이다.

여기도 끝에는 노란색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데, 아마 '여기가 끝입니다' 라고 알려주는 역할인 거 같다.




끝에 와서 보니 급경사로 꺾어진 길은 아예 다니기 힘든 상태였고, 길과 이어지는 쪽에는 무엇인가 일렬로 솟아있었다.

원래 다리가 좀 더 길었지만 해체를 하고 옆쪽으로 새 길을 만드는 중인 거 같았다.



화분 장식이 특이하다.

다른 집도 이렇게 해놓은 거 보니 여기 유행인가?



네번째로 간 곳은 뉴 제티 New Jetty 다.

이름 그대로 최근에 생긴 곳으로 1960년대에 생겼다고 한다.

다른 제티들은 특정 성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성촌의 성격이 강한데 비해 여기는 혈연친족관계과 상관없이 다양한 성씨가 섞여산다고 한다.

그 이전에 클랜 제티를 여러 군데 봤던 터라 무덤덤하기도 하고, 딱히 특징이 없어서 대충 돌아만 봤다.



멀지 않은 곳에 화려한 사원이 보였다.

가이드북이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받은 지도에는 정보가 없고, 구글맵을 찾아보니 불교 사원이라고 한다.

피곤한 상태라서 기력이 남으면 저기까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바로 집 앞 편의점, 마트도 가기 귀찮은데, 외국에 나가면 '다시 여기 올 일이 있을까?' 싶어서 더 기를 쓰고 다니게 되는 거 같다.



다섯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간 곳은 여 제티 Yeoh Jetty 다.



여기까지 올 생각은 아니었어



츄 제티나 탄 제티, 리 제티 정도까지는 다녀온 사람도 꽤 많은 편이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같은 데에서도 포스팅이나 사진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종류가 많은 줄도 몰랐고, 이렇게 많이 볼 생각도 없었다.

클랜 제티를 전부 정복해버리겠다! 도 아니고, 걷다보니 하나 보이고.. 또 걷다보니 또 하나 있고.. 그러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관광객도 없고, 주민도 없고, 그냥 조용하다.

딱히 볼 게 있는 건 아니라고 해도 덕분에 맘편하게 돌아다니고 사진도 누구 눈치 볼 거 없이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

어차피 클랜 제티들의 풍경은 다 비슷하니 사진을 많이 찍고 싶은 사람들은 차라리 이런 듣보잡 작은 제티를 오는 게 오히려 더 나을 거 같았다.



의도치않게 고양이들의 러브러브한 시간도 방해했다.



아까 봤던 사원은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갔다.

그냥 쉽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미궁하는 것처럼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꺾어들어가니 간신히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현모전 玄母殿 Hean Boo Thean 으로, 남해 관세음보살을 모신 사원이라고 한다.

불가에서 관음보살은 바닷가 외로운 곳에 살면서 용을 타고 회현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관음신앙은 양양 낙산사나 부산 해동용궁사, 남해 보리암 등 해안이나 바닷가에서  발달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일 듯 싶었다.

오히려 페낭에 정착한 화교들은 해상무역에 종사한 계층이 많았으니 바다와 관련된 신앙과 합쳐서 믿음이 더 강화되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건물은 2층이었는데, 아쉽게도 공사 중이었다.

여기저기에 공사 자재 쌓여있고, 인부들이 계속 오가면서 일하는 중이라 관람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도 하늘이 맑았고, 높은 곳에서 올려다보눈 탁 트인 바다가 좋았다.

한국은 황사며 미세먼지로 연신 난리인데, 여기는 그 걱정 없이 파아란 하늘을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야지.



현모전까지 보고 나오면서 마을 골목에 있는 노점에서 사탕주스 주스를 하나 사먹었다,
4-5시간을 거의 쉬지 않고 걸었더니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장이 약해서 '탈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지만, 이대로 호텔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즉석에서 짜준 주스는 시원하고 들척지근했다.


Your Luxury Trip is My Daily Misery.


최근 관광업계에서 문제가 되는 현상 중에 '오버투어리즘 overtourism' 이 있다.
많다는 뜻의 over 와 관광을 뜻하는 tourism 이 결합된 단어로, 과도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도시를 점령해 현지 주민들의 삶까지 침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이 손꼽힌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관광객들이 오가면서 소음을 유발하고, 주민이 살고 있는 집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기물을 폐손하거나 심지어 침입하는 일도 있어서 현지 주민들이 집을 팔고 이사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클랜 제티도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나에게는 페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관광지일 뿐이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이다.
불특정다수가 오가는 길목에 속옷빨래를 늘어놓을 수 없는 사람이나 그것을 지나가면서 그것을 볼 수 밖에 없는 사람, 둘 다 민망스러운 일이다.
관람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진 시간 내에 거주민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보고 나오는 것, 사유지에 침범하거나 함부로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장소였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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