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2009. 9. 19. 00:10
 



이 유목민족의 국가는 북방에서 같은 계통의 민족에 의하여 끊임없이 압박을 받았다.

그래서 이 민족은 다시 남으로 이동하여 동카프카즈에서 아르메니아의 산지를 거쳐 아나톨리아(Anatolia; 소아시아)로 들어왔는데, 여기에서도 그 무역으로 할리스강(Halys江; 지금의 키질 이르마크江) 지방의 원주민 하티(Hatti)족을 정복하고, 드디어는 소아시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였으며, 다시 에게해 도서에까지 빈번한 식민활동을 하였다.
이는 기원전 3000년기의 일이었다.
아나톨리아의 인도 유럽어계 부족 중에서 최초로 이 반도에 들어와 드디어는 에게해역까지 진출한 이 민족은, 후의 히타이트 시대에 소아시아의 남방 변경에 자리잡고 아르자와(Arzawa)제국을 형성하였던 루위아민족(Luwian 民族)이었을 것이다.
루위아 민족의 발자취는 흑해(黑海) 연안의 두새의 헤르모나사, 소아시아 동부의 야프레사, 고전기(古典期)에 있어서의 소아시아의 테르메소스, 에게해 연안의 파르나소스 등, 접미사 -ss-를 갖는 많은 지명에 남아있다.

또한 1935년 이후, 터키 발굴대가 발굴한 13개의 알라카(Alaca; 보가즈쾨이 북동 35Km)의 왕묘 수혈분(竪穴墳)과 석곽(石槨), 네 귀퉁이의 나무 기둥와 서까래를 사영한 천장, 굴장(屈葬) 및 시체의 붉은 채색 등의 특징이 마이콥 분묘와 흡사하여, 금은의 호화로운 부장품에도 양자의 연결성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왕묘는 기원전 3000년기 끝무렵의 것이라고 인정되는데 이것들도 또한 쿠반지방에서 들어와 여기에 지배권을 수립하였던 루위아인의 왕족의 분묘로 간주된다.

그리고 다음의 기원전 2000년대의 초기, 할리스강의 남안 카네쉬(Kanesh; 퀼테페, 카이세리의 북동 20Km)를 중심으로 하여 이 지방에 식민지를 설치하였던 앗시리아인의 상업활동이 있었다는 것이, 카파도키아 문서(Cappadocia 文書)라고 일컬어지는 한 무더기의 점토판(粘土板)에 의하여 알려졌다.

교역된 상품은 토산(土産)의 구리 ․ 곡물 등에 대하여 앗시리아의 주석과 옷감 따위였다.

문서 중의 고유명사는 또는 루위아인, 히타이트인 등의 존재를 확인시키므로 그런 뜻에서도 흥미가 깊다.


Posted by 히티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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