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책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책 욕심은 많았다.

'남아수독오거서 男兒必讀五車書' 라고 사람은 반드시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한다는데, 책 욕심은 욕심이 아니라 좋은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중고서점이 있으면 딱히 살 생각이 없어도 들렀고, 좀 괜찮아보인다 싶은 책이 있으면 한두 권씩 사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한때 공부한답시고 이리저리 사모은 혹은 제본한 책들로 벽 한 쪽을 꽉 채웠다.



절반으로 줄인다



나는 가로 길이 90cm, 높이 2.1m의 책장 2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꽉 채우다 못해 책 위에 책을 겹쳐쌓아가며 간신히 욱여넣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사 전 새 집의 내 방을 둘러보며 가구 배치를 고민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책장 2개를 집어넣을 구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가장 만만한 건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판매하는 일이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2가지 방법으로 책을 판매할 수 있다.

온라인은 홈페이지에서 팔기 신청을 한 뒤 택배를 보내면 그쪽에서 가격을 평가해서 추후 입금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책곰팡이나 물얼룩 자국이 있거나 신판이 나오는 등 매입이 안 되는 경우에는 택배로 다시 책을 돌려받아야하는 등의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서 나는 고생스러워도 서울갈 때마다 몇 권씩 짊어지고 가서 알라딘에 팔아치웠다.



참고 : 알라딘 중고서점에 중고책 판매 - 오프라인 매장 방문 판매




소장가치가 있다며 구입했다가 한 번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보관하던 책들이 대부분이었고, 언젠가 읽어야지... 하다가 손도 안 댄 책들도 꽤 많았다.

가격은 7-800원에서 기껏해야 몇 천원 수준.

책을 살 때 들었던 비용과 비교하면 너무 헐값이라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팔지 말까?' 를 고민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판매하고 난 이후 그 책이 다시 필요했던 적은 1-2번 밖에 없었고, 소소하지만 현금이 손에 들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그 이후로는 서점에 관심가는 책이 있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나중에 이 책을 다시 들고와서 팔아야한다는 게 귀찮아서 안 사게 되었다.

정 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 도서관에서 신청을 해서 빌려보고 있다.



비교적 깨끗하고 최근에 출시된 책들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판매해서 정리할 수 있지만, 오래된 책들은 처분이 힘들었다.

199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출간되어서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냅다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특히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는 소비에트 소설이라서 이제는 출간도 안 되고 구할래가 구할 수도 없을텐데, 나중에 연구하시는 분이라도 필요한 사람이 없을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찾아본 곳이 '인터넷 고구마 헌책방' 이라는 곳이다.

정말 오래된 책들과 고서까지도 취급하는 헌책방인데, 교외에 큰 도서 창고까지 운영하고 있는 요즘 보기 드문 곳이다.

10여 년도 전에 여기에서 1970년대 출판된 책을 구입한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찾아봤는데, 아직까지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참고 : 인터넷 헌책방 고구마 http://www.goguma.co.kr:8081/



개인이 하는 곳이다보니 시스템이 알라딘 중고서점처럼 잘 갖추어져있지는 않다.

먼저 처분할 책 리스트를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올리면 며칠 후에 매입 가능 여부에 대한 답변을 이메일로 받을 수 있다.

나는 며칠을 기다려도 이메일이 오지 않아서 직접 전화를 했더니 주소를 알려주면서 보내라고 했다.



박스를 구해와서 책을 하나씩 포장하기 시작했다.

한 권씩 차곡차곡 담으니 열 몇권이 넘었고, 어느새 박스 하나가 가득 찼다.

개인 연락처와 송금받을 계좌번호를 적은 종이를 같이 넣고 포장했다.



택배는 CJ대한통운에 착불로 보내면 된다고 하셨다.
며칠 후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왔다.


"2만원 보내드리면 괜찮을까요?"


편한대로 보내달라고 했다.
책을 처분해서 돈을 마련하려는 목적이 아니다보니 싸가지고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운 책들을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사실 돈을 받기도 민망해서 '그냥 기증한다고 할 걸 그랬나?' 한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책장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것보다는 정말 필요한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서 예쁨받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대략 50여 권의 책을 처분했다.




(재미있게 보셨으면 아래의 를 눌러주세요 ^_^)

Posted by 히티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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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장서가 고민이라고 하더니, 책이 많아 줄이는 게 목표시군요! ^^

    2020.10.25 08: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이삿짐 센터에서 제일 싫어하는 짐이 책과 물 종류 (술 같은 거) 래요.
      중량 대비 무거워서요.
      저는 혼자 살 때 이사도 몇 번 해봤는데, 제일 큰 짐이 책이더라구요ㅠㅠ

      2020.10.25 09:52 신고 [ ADDR : EDIT/ DEL ]
  2.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2020.10.25 11: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알라딘중고서점이 이럴때 좋은거 같아요 ㅎㅎ

    2020.10.25 12: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겨나면서 중고책을 사고 파는 게 확실히 편해진 거 같아요.
      여기서 책도 엄청 사고, 산 책을 다시 팔기도 했네요ㅎㅎㅎ

      2020.10.25 15:51 신고 [ ADDR : EDIT/ DEL ]
  4. 전 너무 옛날 책만 있나봐요.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매입 안하는 책들이 더 많더라고요. ㅜㅜ

    2020.10.25 14: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알라딘에서 매입이 안 되면 예스24 중고서점도 한 번 알아보세요.
      제가 사용했던 고구마 중고책방도 괜찮긴 하지만, 돈은 번다는 목적보다는 책을 처분하는 데 좀 더 중점을 둬야하는 거 같아요.
      정 안 되는 책은 버리기도 했습니다ㅠㅠ

      2020.10.25 15:16 신고 [ ADDR : EDIT/ DEL ]
  5. 저도 책 욕심 많은데 팔기 왤케 아까운지 😂

    2020.10.25 19: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도 처음엔 그래서 좀 힘들었어요.
      책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기도 하고..
      그래서 잘 보이는 곳에 책을 하나씩 쌓아두고 1-2주 정도 놔둬봤어요.
      일종의 유예기간을 준 셈이죠.
      그 기간동안 한 번도 그 책을 보고 싶다거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걸 보고 '이건 욕심이구나' 라는 생각에 홀가분하게 판매할 수 있엇던 거 같아요.

      2020.10.25 19:38 신고 [ ADDR : EDIT/ DEL ]
  6. 얼마전에 대거 버렸는데.. 책방이라도 가져다 드릴걸 후회가 되요.
    집이 좁아서 어쩔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ㅠ,.ㅠ

    2020.10.25 20: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도 다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이리저리 처분한 거였어요.
      이리 버리신 건 어쩔 수 없고, 앞으로 잘 이용하시면 되죠^^

      2020.10.25 22:05 신고 [ ADDR : EDIT/ DEL ]
  7. 와 다섯수레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여기서는 이북으로 읽고 있는데 종이책 너무 읽고 싶어요^^
    제가 사고 싶네요 ㅎㅎ 여긴 배송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요 ㅠㅠ

    2020.10.25 21: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남아공이면 진짜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거 같기도 합니다.
      외국에서 한국책 읽고 싶은 기분.. 이해해요.
      저는 이북도 별로 안 좋아하고, 제가 외국 살 때는 그렇게 이북이 대중적일 때도 아니었거든요.
      살던 집 주인분이 한국분이셔서 임신육아 관련한 책을 한 권 남겨두고 가셨는데, 애도 없으면서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ㅎㅎㅎ

      2020.10.25 21:38 신고 [ ADDR : EDIT/ DEL ]
    • 히티틀러님은 여행도 많이 다니신것 같은데^^ 어디 거주 하셨었어요?
      애도 없는데 육아 서적 2번이나 읽으셨다니요 ㅎㅎ 대단하시네요 저는 관심없으면 안봤을건데요~~

      2020.10.25 21:58 신고 [ ADDR : EDIT/ DEL ]
    • 우즈베키스탄에 1년간 살았어요.
      할 일도 없는 임신육아에 관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답니다ㅋㅋㅋㅋㅋㅋ

      2020.10.25 22:06 신고 [ ADDR : EDIT/ DEL ]
  8. 글보고 저도 이번에 책정리 한번 해봐야겠어요!😊

    2020.10.25 22: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책 버리면 나중에 필요할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무일 없어서 놀라고 있습니다.
      한 번 정리해보세요!

      2020.10.26 10:28 신고 [ ADDR : EDIT/ DEL ]
  9. 카 너무 좋은 취미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지하 알라딘 같습니다. ? 면허시험장 근처 같기도 하구요 ㅜㅜ 잘봤습니다

    2020.10.25 22: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알라딘 종로점이랍니다.
      다 처분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소중한 책이나 구하기 어려운 책, 필요한 책은 다 뺐어요ㅎㅎ

      2020.10.26 10:27 신고 [ ADDR : EDIT/ DEL ]
  10. 제 친구 하나도 책 욕심이 어마 어마해서 항상 책 보관 때문에 고민하더니 요즘에 알라딘에 종종 내다 파는 것 같습니다.

    알라딘에서 사 주는 건 참 고맙지만 너무 헐값에 매입하는 것 같아 좀 아쉽네요.

    2020.10.25 23: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처음 오픈했을 때는 그래도 값을 좀 쳐줬는데, 갈수록 기준은 높아지고 가격도 후려치는 거 같아요.
      제가 판매한 책을 그 자리에서 재판매 스티커 붙이는 거 봤는데, 1천원대에 매입한 책을 거의 5천원 붙여서 팔더라구요 ㅠㅠ

      2020.10.26 10:33 신고 [ ADDR : EDIT/ DEL ]
  11. 와.. 그래도 성공적으로 처분(?)하셨네요 ㅎㅎ 요즘 도서관이 잘 안되어서 알라딘 중고로 샀던 책도 있는데, 다시 팔고 책장에 공간 만들어야겠다 생각 중입니다.ㅎㅎ

    2020.10.26 00: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알라딘에서 아예 구입하신 책 다시 팔라고 안내도 있더라구요ㅎㅎ
      책 처분 2탄도 이어집니다!

      2020.10.26 10:40 신고 [ ADDR : EDIT/ DEL ]
  12. 저도 책 욕심이 많아 읽은 책들을 버리지 못하고
    책꽃이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들은
    박스에 담아 베란다에 보관중이거든요..
    히티틀러님 말씀 처럼 그냥 박스속에서 묵혀지는 것 보다
    누군가에게 가서 사랑받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알라딘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2020.10.26 01: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이리스 님은 그래도 읽으신 책들이지만, 저는 사놓고 몇 페이지 읽는 둥 마는 둥, 아예 안 읽은 책들도 많았어요.
      집값도 비싼 요즘에 보지 않는 책들로 공간을 차지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도 들고, 큰 돈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용돈벌이라도 할 겸? 판매했는데, 아직까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한 번도 그 책들이 필요했던 적이 없었거든요.

      2020.10.26 10:42 신고 [ ADDR : EDIT/ DEL ]
  13. 좋은글 잘보고 +구독까지 하고갑니당!!😁시간나시면 제 블로그도 오셔서 지적한 번 해주고 가세욯ㅎㅎ

    2020.10.26 03: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열심히 운영하시는 블로그이실텐데, 제가 뭐 지적하고 말고할 깜냥이 되나요.
      방문 감사드립니다!!!

      2020.10.26 10:43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