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2009. 9. 19. 01:21
 



신왕조의 시조는 투드할리야(TudhaliyaˇsⅡ; 재위 1450-1435경 BC)였다.
그 증손자 수필룰리우마스 대왕(Suppiliumaˇs 大王; 재위 1380-1346 BC)과 그 차자(次子)무르실리스 2세(MurˇsilisⅡ; 재위 1345-1315 BC)의 치세에 히타이트 제국의 위세는 절정에 달하였다.
대왕은 동쪽 후르리족의 미탄니국을 쳐서 수도 와스간니(Washganni)를 함락시키고 투슈라타왕을 추방하였다.
또 시리아로 출진하여 레바논 산맥까지를 제국의 판도에 넣고, 반도 동남부의 키주와트나(Kizzuwatna), 서남 경계의 루위아족의 아르자와와 반도 일원을 세력 하에 종속시켰다.
그 뒤 병사한 형의 뒤를 이은 무르실리스 2세도 아버지되는 대왕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고, 혼란을 틈타 봉기한 루위아 등 국내의 이민족들을 평정하여, 바빌로니아 ․ 이집트와 함께, 고대 오리엔트의 3강(强)의 하나로서의 위치를 유지하였다.
다음의 무와탈리스(Muwattaliˇs; 재위 1315-1290)의 치세에 히타이트의 전차대는, 기원전 1286년 경 오론테스 강변 카데쉬의 전투에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군대를 격파하여 빛나는 전과를 자랑하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제국의 서경 에게해 방면은 이른바 ‘바다의 민족’이 진출하여 왔기 때문에 차츰 소란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에게해에서 소아시아 일원을 휩쓴 동한 속에 빠져들어 하투샤는 재로 변하고, 그처럼 무위(武威)를 자랑하던 히타이트 제국도 일장춘몽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이는 기원전 1190년 경의 일인데, 그 후 3000년동안이나 (20세기의 고고학자가 이를 발굴하기까지) 흙에 파묻힌 채 역사의 햇볕을 쏘지 못하였던 것이다.
단, 히타이트의 지배층의 일부는 북시리아의 카르케미쉬(Carchemish; 지금의 제라불스) 등의 여러 도시로 본거지를 옮기고 몇 개의 소후국(小侯國)을 형성하여 그 후도 몇 세기동안 명맥을 유지하였다.
또한 제국이 괴멸한 후의 소아시아는 트리키아에서 헬레스폰토스(Hellespontos; 지금leek의 다아다넬즈 해협)를 건너서 침입하여, 반도 서부를 근거지로 하였던 프리기아인의 천하가 되었다.
동방 아르메니아의 산지(山地)에는 금(金)에서부터 철에 이르는 각종 금공술(金工術)로 유명하던 우라르투(Urartu)의 나라가 기원전 9세기에서 기원전 7세기 사이에 번영하였다. 우라르투의 민족은 후르리 민족의 후예인 것으로 생각된다. 

Posted by 히티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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