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히타이트 제국의 건설, 그리고 번영
기원전 17세기 이전에는 아나톨리아의 거대한 땅은 다양한 작은 소국가로 분리 되어 있었다.힘의 지배 원칙에 의하여 같은 영토가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면서 비교적 안정되지 못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의 지역을 통일한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히타이트의 왕국을 건설한 하투실리스 1세이다. 그는 통일 왕국의 수도를 키질 이르마크강 만곡부의 중심 지점으로 옮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하투샤(Hattusha)라고 명명했다. 하투실리스 1세는 통일 왕국을 하티 왕국이라고 불렀고, 스스로를 하티의 왕이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지명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히타이트 왕국이라고 칭하고 있다.
하투실리스 1세에 의해 통일된 세력을 형성한 히타이트 제국은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기원전 1530년경에는 무르실리스 1세가 군사를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남진하여 함무라비 왕의 후손이 통치하고 있던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다. 그 때 불행하게도 히타이트 왕실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일어났다. 제국의 내정부터 평정시키기 위하여 히타이트는 바빌로니아 통치를 포기하고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왕실 내부의 권력 투쟁은 결국 왕이 암살되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막강한 제국의 힘을 과시했던 히타이트 제국은 이러한 내부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힘이 꺾이게 되었고 이를 회복하는데 1세기 반이 소요되었다. 오랜 침체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제국은 회복되고 히타이트의 기상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원전 15세기 후반부터는 제국의 힘을 결집하여 1세기 동안이나 인접 지역의 강력한 왕국 미탄니와 격렬한 전투를 계속했다. 미탄니 왕국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히타이트의 동쪽에 위치한 미탄니가 가장 번성할 때는 미탄니 군이 히타이트의 영토 내에 깊숙이 침입해 온 적도 있다. 이 때 히타이트 제국은 수도 주변만 방어할 정도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기도 했다. 시대는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이 시기에 등장한 히타이트의 영웅 수필룰리우마스 1세는 수도를 중심으로 거대한 성을 쌓고 방어 체제를 튼튼히 하였다. 그리고 후방 지역의 여러 소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후방의 위협을 배제하였다. 주변의 위험 요소를 정리한 수필룰리우마스 1세는 장기간 동안 히타이트를 위협해 오던 미탄니 왕궁을 공격했다. 수필룰리우마스 1세의 전략은 적중되었다. 그의 공격으로 미탄니 왕국의 수도는 함락되었다.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한 히타이트 제국은 주변의 대부분의 소국가들을 주중에 장악함으로써 명실 공히 아나톨리아의 완전한 주인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이집트가 세력 확장에서 히타이트 제국과 충돌하면서 거대한 두 제국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예고되었다.
*하투실리스 Hattusilis 라는 이름은 'Man of Hattusha' 즉, 하투샤의 남자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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