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기차를 타고 류블라나에 도착했어다.
세수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아서 부스스하니 그야말로 상거지 꼴.
그래도 유명한 장소랍시고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예쁜 여자 하나가 마이크를 들고 다가왔다.
"익스큐즈미..."
"예스?"
낯선 곳의 낯선 여자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손에 들고 있는 왕방울만한 마이크는 더 부담스러웠다.
"저는 류블라나 라디오 리포터인데요. 혹시 류블라나 관광에 대해서 인터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녀는 류블라나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나 개선할 점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했으며, 내 인터뷰는 라디오 방송으로 나갈거라고 대단히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했다.
"미안해요, 방금 류블라나에 도착한 거라서 이제 관광을 시작해야해요."
그러자 그녀는 아쉬운 듯 즐거운 여행하라면서 다른 관광객을 찾아 떠났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류블라나에 한 달을 머물렀다고 해도 똑같은 얘기를 했을 거다.
내 짧은 영어 실력으로 그 긴 이야기를 영어로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부끄러운 내 영어가 방송에 나간다는 건 더 무서웠다.
이래서 살아있는 외국인이 죽은 외국인보다 무섭다는가보다.
P.S. 슬로베니아는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아서 사실 뭘 봤던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 리포터에 대한 기억이 추억의 전부다.
2009.4.16. 슬로베니아 류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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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랴냐 유럽수도 중에서 넘 작아서
2016.01.10 09: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뭘 봣다고 말하기도 좀 그럴것 같아요 ㅋ
전 용다리 하나 기억에 남네요^^
그러고보니 용다리도 봤네요ㅎㅎㅎ
2016.01.10 17:36 신고 [ ADDR : EDIT/ DEL ]용다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용이 너무 작아서 그것도 실망했어요ㅎㅎ
매번 류블라냐옆을 지나쳐서 달려봤지만, 아직도 류블랴나는 보지 못했었는데.. 히티틀러님덕에 류블랴나 시내를 조금 맛보네요.^^
2016.01.10 10:27 [ ADDR : EDIT/ DEL : REPLY ]굉장히 작은 도시라서 그냥 안 보셔도 무방할 거예요.
2016.01.10 17:37 신고 [ ADDR : EDIT/ DEL ]수도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아기자기하더라고요ㅎㅎㅎ
아 인터뷰에 자막이 쓰이지 않을까.. 하다가 글을 다시 보니 라디오방송!!!
2016.01.10 15: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음성 인터뷰만 전파를 탄다는게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네요.
제가 한달을 머물렀어도 인터뷰에 선뜻 응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
라디오 인터뷰가 비디오보다 차라리 나았어요.
2016.01.10 17:40 신고 [ ADDR : EDIT/ DEL ]그 때 상태가 정말 말이 아니었거든요.
완전히 상그지꼴이라서요;;;
예전에 업무 때문에 슬로베니아 쪽이랑 교류행사 같은걸 했는데 메일로만 주고받다가 제가 딴 부서로 발령이 나서 가보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나요. 가보고 싶었는데 류블랴나는 많이 작는가보네요
2016.01.10 18: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저 때 러프가이드 유럽편을 들고 다녔는데, 다른 도시는 축적이 500m, 800m 이런데 반해 류블라냐는200m 였어요.
2016.01.10 19:11 신고 [ ADDR : EDIT/ DEL ]진짜 훅 하면 지나가있더라고요ㅎㅎ
리포터에 대한 기억이 추억의 전부...라니요?
2016.01.10 20: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그거면 충분한거 아닙니까??? ㅋㅋ
여행가면 이것저것 보고 먹고 한 게 어느 정도는 기억에 남아야하는데, 여기는 정말 리포터 때문에 당황했던 거 밖에 생각이 안 나요.
2016.01.10 20:55 신고 [ ADDR : EDIT/ DEL ]심지어 사진을 보면서도 '여기가 어디었지?' 싶더라니까요.
그래도 그 추억이라도 남아있는게 어딘가 싶기도 해요ㅎㅎㅎ
저정도 추억이면 저도 평생 안고갈 것 같네요 ㅋㅋ
2016.01.10 23: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일단 영어가 너무 유창해서 부담스러웠어요 ㅎㅎㅎ
2016.01.10 23:07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