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날.
오전 11시 5분 비행기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하려면 아침 6시 버스를 타야해요.
설렘과 긴장감에 잠도 잘 안오는데다가 캐리어를 워낙 오랜만에 사용하는 터라 비밀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아 일일히 맞춰보는 뻘짓을 하느라 1시간 남짓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버스를 탔어요.
공항에 도착해 간단하게 아침으로 햄버거를 먹고 오니 벌써 수속이 시작되었어요.
요즘이 성수기라서 그런지 줄을 엄청 많이 서 있더라고요.
한참만에 수속을 마치고, 여행자 보험도 가입하고 나니 시간이 정말 빠듯했어요.
더군다나 출국 심사대에는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 관광을 온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까지 섞여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어요.
저가항공이라서 그런지 게이트는 왜 그렇게도 멀리 있던지.
셔틀을 타고 에스컬레이터를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리고 또 달려서 겨우 도착.
다행히 아직 늦지는 않았구나.
10시 40분부터 탑승시간인데 조금 넘겼지만, 다행히 아직 사람들이 탑승 중이었어요.
우리가 제일 꼴찌인 줄 알았으나 다행히 우리보다 더 늦은 사람도 몇 명 있었어요.
비행기는 3-3좌석의 작은 비행기였는데, 빈자리 하나 없이 만석이었어요.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직원들은 산타클로스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대부분이 베트남 사람이었는데, 한국인 스튜어디스도 한 명 있더라고요.
이륙해서 안정권에 접어들자 승무원들이 물과 기내식을 나눠주었어요.
치킨 스파게티와 비프 라이스 중 저는 치킨 스파게티를 골랐어요.
닭고기가 들어간 스파게티라고 생각했는데 닭고기 조림+ 스파게티 더라고요.
워낙 맛이 없다고 말이 많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은 편이었어요.
스파게티가 소스가 부족해서 그런지 조금 느끼하긴 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매운 거 좋아하시는 분들은 같이 나온 벌꿀 고추장을 조금 섞으면 약간 아라비아타 같은 느낌이 들거 같아요.
기내식을 마치자 음료와 간식을 파는 카트가 지나다녔어요.
비엣젯 항공은 저가 항공이라서 기내식과 물 한 통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먹어야해요.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한 두명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니 온 기내에 달콤한 커피 향기가 진동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한 잔 주문했어요.
베트남의 G7 커피를 타서 주는데 향도 강하고 달콤하니 참 좋더라고요.
베트남으로 가고 있다는 실감도 조금씩 나고요.
우리가 탄 비행기는 예정보다 빨리 현지시작 오후 2시 반에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어요.
오늘의 일정은 올드 타운에 있는 신카페 Sinh Tourist 를 찾아가서 훼(후에)로 가는 6시 버스를 타는 것.
다행히 비행기가 연착은 안 했지만, 되도록 빨리 서둘러서 사무실에 도착해야했어요.
공항에서 지체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수하물도 부치지 않고 기내에 전부 가지고 탔고요.
다른 사람들이 짐 찾는데 시간을 보낼 동안에 우리는 바로 입국 심사를 받고 나왔어요.
그리고 일단 눈에 보이는 은행 아무 곳이나 가서 달러를 베트남 동으로 환전을 했어요.
친구가 유심칩을 산다길래 바로 눈에 띈 통신사인 비나폰 Vinaphone 에 갔어요.
"20일동안 인터넷 무제한만은 200,000동, 인터넷 무제한에 전화통화까지 되는 건 300,000동이예요."
어차피 전화는 필요없어서 친구는 인터넷 무제한만 되는 유심칩을 샀어요.
따로 등록할 필요 없이 심카드를 핸드폰에 끼우기만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더라고요.
공항 밖으로 나오니 벌써 3시 반.
올드 타운으로 가기 위해 인포메이션에 물어서 미니버스 정류장으로 갔어요.
기사들에게 신카페의 주소와 지도를 보여주니
"1사람당 5달러."
"4달러로 해요."
버스기사들은 ok 하고, 우리의 짐을 실었어요.
원래 요금은 3달러 정도지만, 원하는 장소까지 데려다주면 4달러를 받는게 정가라고 해요.
미니버스를 타고 나니 그제야 어느정도 몰려오는 안심.
"아, 더워!"
긴장이 풀리니 그제야 주변 풍경도 보이고, 더위도 느껴졌어요.
하노이의 기온은 영상 19도인데, 제 옷은 아직도 영하 20도.
원래는 인천공항에서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비행기에 타려고 했는데, 계속 서두르다보니 아직도 목폴라에 털코트 차림이었어요.
그런데 여기가 베트남 맞나.
막상 도착은 했는데, 외국에 나온 거 같은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어요.
이제까지 여행 다닌 국가들은 일단 사람들 외모에서부터 '아, 내가 외국에 나와있구나' 하는 사실이 확 느껴졌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외모가 한국사람들과 너무 비슷했어요.
왠지 한국어로 말을 걸어도 다 알아들을 거 같은 느낌이었어요.
안 그래도 공항에서 나가는 길을 영어로 물어보니 "아, 한국인이세요? 저쪽으로 가시면 되요." 라는 대답을 들었는데요.
미니버스는 빈 자리를 다 채우자 출발했어요.
현재의 공항 옆에는 새로 짓고 있는 노이바이 국제공항 신 청사가 있어요.
2015년부터는 저 신 청사를 사용한다고 해요.
창 밖으로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면서 '내가 정말 베트남에 왔구나' 하는 묘한 설렘과 야릇한 감상에 젖어있었어요.
적어도 하노이 시내로 들어오기 전까지는요.
여긴 내가 상상했던 하노이가 아니야!
다른 분들은 하노이를 어떤 도시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베트남 노래인 'Nho Ve Ha Noi (하노이를 그리워하며)' 를 들으면서 하노이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어요.
Nho Ve Ha Noi - Minh Quan
하노이를 그리워하며 - 임태경 (한국어 가사 자막)
일단 우리는 올드 타운 거리를 잠시나마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큰 도로에서나 작은 거리에서나 오토바이는 무섭게 질주를 하고 다녔어요.
한국에서도 길을 잘 못 건너서 사고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베트남은 더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오토바이 뿐만 아니라 자전거, 시클로와 사람들까지 좁은 도로를 한꺼번에 이용하니 어떻게 길을 건너야할지 더 감이 오지 않았어요.
저녁으로 먹은 반미 Banh Mi.
시간이 없어서 저녁 대신으로 먹었는데, 맛이 참 독특하더라고요.
바게트빵은 바삭바삭하면서 속에 넣은 고수나 숙주나물에서는 베트남 음식 특유의 독특한 풍미가 느껴졌어요.
시간 맞춰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남자 한 명이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더니 여러 여행사 사무실에서 데려온 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자리도 부족한 미니버스에 마구 집어넣었어요.
"여기서 10분만 기다려요."
미니버스는 어느 길거리에 관광객들을 전부 내려놓고 사라졌어요.
여긴 어딘가, 난 누군가.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멍때리고 있었어요.
베트남은 날이 따뜻해서 반팔에 반바지 입고 다녀도 된다는데, 밤이 되니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했어요.
15분 정도 지나자 우리가 기다리던 버스가 왔어요.
그저 아는 거라곤 6시에 훼로 출발한다는 것 밖에는 없어서 내가 타고 갈 버스가 맞는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짐을 챙기고 버스에 타니 저도 덩달아 같이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에 들어가자마자 신발을 벗어서 비닐봉지에 담게 하더니 물 한병을 주고 안으로 들여보냈어요.
지정된 자리에 앉아야하는지몰라 두리번거렸으나 특별히 정해진 자리가 없는 거 같아서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어요.
슬리핑 버스라고 하지만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생각보다 편했어요.
두툼한 이불도 있었고, 버스 내에 화장실도 있었고, 약하지만 와이파이도 쓸 수 있었어요.
그래도 일정이 예상대로 진행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버스에 피곤한 몸을 뉘였어요.
온종일 헉헉대며 서두르다가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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