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역시 늦잠.
창문이 없는 지하방인데다가 피로 누적에 이곳 시차도 적응이 되면서 매일같이 늦잠을 잤어요.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아서 새벽부터 밤까지 돌아다녀야한다면 오르겠지만, 예레반에서 오래 머물다보니 긴장이 풀어진 감도 있었어요.
오늘은 예레반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내일이면 아르메니아를 떠나서 그루지아로 넘어가요.
다음날 오랜 시간 이동해야하는 만큼 많이 돌아다니지는 않고, 예레반을 마지막으로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전날 갔던 bistro OST 에서 라흐마조를 먹고, 이제껏 돌아다녀보지 않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친구와 길거리 키오스크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사서 쪽쪽 빨아먹으면서 돌아다녔어요.
중심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레반의 거리들은 차분하면서도 낭만적인 느낌이었어요.
의도치 않게 걷다보니 마테나다란 Matenadaran 까지 왔어요.
마테나다란은 아르메니아의 고문서를 보관하는 도서관 겸 박물관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의 자부심을 담고 있는 건물이에요.
이곳에는 17,000개가 넘는 필사본과 100,000개가 넘는 고대 및 중세의 문서가 보관되고 있다고 해요.
입구에는 아르메니아 문자를 발명했다고 알려져있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성자 메스로프 마쉬토츠 St. Mesrop Mashtots 의 동상이 있어요.
여행할 때에는 그냥 박물관이겠거니 하고 안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늦어서인지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마테나다란 뒤쪽 골목을 쭉 따라가니 서민들이 사는 듯한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요.
뭔가 집도 좀 허름하고 부실해보였고, 도로도 군데군데 아스팔트가 깨진 곳이 많았어요.
친구는 가이드북에 잘 나오지 않는 뒷골목이나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앞장서서 갔어요.
저는 그런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계속 언덕길만 나오니 슬슬 짜증이 밀려오고 있었어요.
여기는 캐스케이드잖아!
예상치 않게 마을 길은 캐스케이드와 이어져있었어요.
그것도 언덕길을 오른 수고가 아깝지 않게 캐스케이트 중턱 즈음에 연결되어 있었어요.
올라가야하는 것보다는 내려가는게 그나마 낫다는 생각에 계단 하나하나 천천히 내려갔어요.
그러나 옆에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안 되는 곳이면 경찰이 나가라고 하겠지.
안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힘들게 걸어서 올라갈 필요가 없었어요.
어쩐지 지난 번에 캐스케이드에 왔을 때 사람들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면서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있더라...
지난 번에 왔을 때에는 문이 잠겨 있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힘들게 1,000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올라갔는데, 다 내려와서야 이유를 알았어요.
똑같이 생긴 입구가 두 개가 있었는데, 한쪽이 잠겨있는 것을 보고 다른 쪽도 으레 잠겨 있겠거니 하고 지레짐작했던 거였어요.
옆에서는 현지인들도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이고, 중간중간 문마다는 경찰들이 지키고 있어서 들어가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끝까지 걸어올라갔던 것.
그야말로 뻘짓을 한 셈.
차라리 몰랐으면 아쉽지나 않지....
숙소에 돌아온 이후 친구와 함께 마지막으로 게미니 카페에 갔어요.
매일 이곳에 들려서 시원한 커피나 아이스티 한 잔 하는게 예레반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었는데 이제 이곳을 못 온다니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들었어요.
수첩에 하루 일정을 정리하면서 친구와 노닥거리고 있는데, 이틀 전 에치미아진에 같이 갔던 터키인 케말 아저씨와 마주쳤어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케말 아저씨와 합석을 했어요.
케말 아저씨는 터키 이즈미트에서 사시는 엔지니어이신데,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러시아어를 조금 아신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잠시 쉬면서 카프카스 여행을 다니시는 중인데,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아를 이미 다녀오셨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내일 그루지아에 갈 예정이이기 때문에 여행에 관련된 팁을 얻기도 하고, 터키 음식인 라흐마준과 아르메니아 라흐마조가 비슷하다는 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사이에 가장 예민한 문제이가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이야기까지 흘러갔어요.
아르메니아인 학살은 제 1차 세계 대전 중이 1915-1916년에 오스만 제국의 내무 장관이었던 탈라트 파샤의 명령으로 오스만 제국 내에 거주 중이던 아르메니아인들을 강제이주시킨 과정에서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당한 사건이예요.
아르메니아 측에서는 이 당시 100만 명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터키 측에서는 이는 일방적인 학살이 아니라 민족간 분쟁이며 희생자 숫자가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실상 터키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 학살을 인정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어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이 이 사실을 언급해서 재판을 받기도 했어요.
이러한 역사적 문제 때문에 현재 아르메니아와 터키는 양국이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아르메니아와 터키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폐쇄되어서 양국을 오가려면 이란이나 그루지아와 같은 제 3국을 거쳐야만 해요.
그 때문에 사실 처음 케말 아저씨를 보았을 때 친구도 저도 '터키인도 아르메니아 올 수 있나?' 하고 궁금해했었어요.
법적으로 막지는 않더라고, 아르메니아 국경에서 비자 문제 같은 걸로 트집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도 있고, 양국 간의 감정을 고려해봤을 때 터키인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호스텔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을 많이 봤지만, 터키인은 케말 아저씨 밖에 보지 못했어요.
케말아저씨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관해서 흥분해가며 열심히 말씀해주셨지만, 터키 정부 측의 주장과 거의 비슷했어요.
늦은 밤 호스텔로 돌아와서 케말 아저씨와 계속 연락을 하자면서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어요.
그리고 스탭에게 다음날 체크아웃 한다고 이야기하고,숙소에서 버스터미널 가는 방법을 물어본 후 자정이 되어서야 자러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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