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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2015 호치민&인니 [完]

[인도네시아] 06. 6/1 자카르타 감비르역

by 히티틀러 2015.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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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인도네시아 땅을 밟았다.

사실 공항은 어느 나라든 다 비슷비슷한데, 수하르토 국제공항은 나무로 된 전통 양식으로 디자인이 되어 있었다.

마치 리조트에 온 거 같은 기분이 들면서 '내가 동남아에 왔구나' 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했다.



올해 6월 9일부터 한국인은 인도네시아에 30일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내가 갔을 당시만해도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아야했다.

표지판을 보며 따라가니 입국비자를 구입하는 창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직원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35달러를 내밀자 바로 도착비자 영수증이라고 쓰여있는 종이쪼가리를 주었다.

다른 창구에 가서 이 종이와 여권, 비행기 안에서 쓴 입출국 카드를 내밀었다.

직원은 여권을 스캔하고 영수증 한 장을 부욱 뜯어가더니 여권에 비자 스티커를 한 장 붙여주었다.


"어? 이게 끝이야?"


그 사람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 나가니 우리는 수하물 찾는 곳으로 나와있었다.

볼일 보고 뒤 안 닦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입출국 카드는 아예 손도 안 댄 상태라서 더 불안했다.

직원에게 물어보았지만, 직원은 아무 문제도 없으니 그냥 가라고 했다.

왜 입출국 카드를 쓰라고 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찜찜한 기분을 뒤로 한채 공항 밖으로 나왔다.

호치민에서와 마찬가지로 적도의 열기가 또 다시 훅 끼쳐왔다.

공항 건물 밖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였다.



"더운데 일단 음료수나 하나 사마시고 보자."


공항 밖 자판기에서 'tea' 라고 되어있는 캔음료를 하나 뽑았다.

차가운 음료인데도 뚜껑을 따자마자 안에서 김이 나오는데에 헛웃음이 났다.

음료수는 맛이 오묘했다.

어설픈 열대과일 맛이 나는 거 같기도했고, 쇠맛이 나는 거 같기도 했다.

마시자마자 이가 썩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달았다.

그래도 목 마르고 돈이 아까워서 꾸역꾸역 다 마셨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놀라운 건 더위가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있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는 누워있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거지들인가?'


피부도 거무잡잡한 사람들이 슬리퍼 하나 신고 아무렇게나 앉아있으니 유럽 여행 때 봤던 집시들 생각이 나기도 했다.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건이 털리는 거 아니겠지.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모르게 괜시리 소지품을 점검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숙소가 있는 감비르역 근처까지는 공항에서 담리 Damri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택시기사들의 호객행위를 뿌리치고 공항에서 왼쪽으로 쭉 나오면 'shelter bus' 라고 쓰여진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표를 사고 버스를 탈 수 있다.



"Stasiun Gambir, dua orang (감비르역, 두 사람이요)"


여행을 오기 전에 나름 몇 마디 외워두었던 인도네시아어를 끌어모아서 표를 샀다.

그런데 직원이 마구 인도네시아어로 이야기를 한다.


"미안해요. 난 외국인이에요."


직원들끼리 한바탕 웃더니만, 그녀는 친절하게 영어로 다시 설명해주었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영어가 꽤 유창했다.


"표는 한 사람당 4만 루피예요.

여기에서 기다리다가 '감비르' 라고 쓰인 버스를 타면 되요. 버스가 오면 아마 감비르! 감비르! 하고 이야기할 거예요."



자카르타와 인근 여러지역을 가는 버스가 계속 도착한다.


"감비르! 감비르!"


버스에 짐을 싣고 목적지를 알리는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손짓한다.

얼른 캐리어를 끌고 버스로 향했다.



짐칸에 짐을 실은 후 버스에 올라탔다.

좌석이 따로 지정된 건 아니라서 아무 자리나 앉으면 되는데, 우리나라 시외버스 같은 느낌이다.



이제 출발한다!!!



버스는 국내선 청사로 보이는 다른 터미널을 들렀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태우고나서야 차장이 돌아다니면서 표를 검사했다.




처음에는 좋았다.

베트남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풍경과 건물들, 잘 정비되고 붐비지 않는 도로.

운전 방향이 우리나라와 반대인 나라는 처음이라서 신기하기도 했다.



공항에서 감비르역까지는 30여km 남짓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 가지 않아서 슬슬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카르타는 예상 밖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예상보다 세련되고 번화한 도시였다.






대로에서도 맞히는데, 좁은 길이 안 막힐리가 없다.

여기에는 자동차에 오토바이까지 다니니 더 정신이 없었다.



벌써 1시간이 다 되어간다...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자카르타의 교통체증에 짜증이 나다 못해 이제는 포기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공항에서 미리 화장실을 다녀온 게 천만다행이다.




"감비르역 근처까지는 온거 같아."


친구는 분명히 감비르역 근처까지는 온거 같다고 했지만, 너도 초행, 나도 초행인 마당에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긴 또 어디야.'


버스가 어딘가에 정차했어요.

계속 정차하면서 사람을 내리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사람들이 우루루 내렸어요.

차장 아저씨도 내리라고 했어요.


"Stasiun Gambir? (감비르역?)"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30km 남짓 가는데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할까?"


원래 계획은 먼저 숙소를 찾아가서 체크인 한 후, 다시 나와서 환전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족자카르타 가는 기차표를 끊는 것이었지만, 예상보다 너무 늦게 도착했다.

더군다나 숙소가 근처도 아니고 1-2km 정도 거리인데, 지도 하나 놓고 찾아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도 모르는 일.

결국 먼저 환전을 하고 기차표를 산 후에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캐리어를 덜덜덜 끌면서 감비르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역 안에 은행이 있었다.


"exchange?"

"close!"


직원은 문을 닫았다며 단칼에 말을 잘랐다.

그 옆에 있는 은행에 가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한 은행 직원이 인도네시아어로 뭐라고 막 이야기했지만, 당연하게도 무슨 말인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사람이 우리에게 따라오라면 손짓을 했다.

그녀가 우리를 데려간 곳에는 'locker' 라고 쓰여져 있었는데, 역사 내의 짐 맡기는 장소였다.

'Authorized Money Exchanger' 라고 쓰여있긴 했지만 좀 긴가민가했는데, 환전을 해주긴 했다.

당장 기차표도 사고 숙소비도 내야했기 때문에 각각 100달러씩 환전을 했다.

당시에는 급하기도 했고 환율을 잘 몰랐는데, 나중에 여기가 완전히 환율을 후려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1달러에 보통 13,000루피 정도라는데, 그곳에서는 12,800루피로 계산해주었다.



욕야카르타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서 매표소 앞에 줄을 섰다.

사람들이 많이 서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줄이 줄지를 않았다.

무엇 때문에 기차표 하나 끊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일처리가 느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일처리를 빨리 한다는 사실을 정말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결국 한 시간이나 기다려서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내일 아침에 족자카르타요."

"여기는 오늘 표만 판매해요. 내일 표는 저쪽 건물에 있는 예약창구로 가야해요."



속에서부터 욕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화낼 시간마저 없어서 서둘러 예약창구를 찾아갔다.


"여기서 내일 족자카르타표 살 수 있어요?"

"이거 작성해오세요."



직원이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주었다.

탑승자와 여행 일정을 다 적은 후에 이걸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 줘야한다고 했다.

일단 친구에게 줄 서 있으라고 한 다음에 혼자서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름과 개인정보, 출발지와 도착지는 어렵지 않게 적을 수 있었다.

그런데 좌석 등급과 출발시간은 알 수가 없었다.

대강 적고서 다시 줄에 합류했다.

역시나 줄이 줄지가 않는다.

방금 전 경험으로 볼 때 여기서도 최소 1시간은 기다려야할 각이다.

더운 날씨에 이미 온 몸은 땀범벅이 된지 오래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뭐가 있나 둘러보다보니 뭔가 기계 같은 게 보였다.

게다가 거기에는 줄도 서있지 않았다.


'혹시 저거 티켓 자동판매기 같은 거 아냐?'


친구에게 계속 줄 서있으라고 맡겨놓은 후에 기계 근처에서 기웃기웃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헬로우! 뭐 필요해요?"


인도네시아 대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청년이 영어로 말을 걸었다.


"이 기계로 내일 족자카르타 가는 표 살 수 있나요?"

"그럼요. 도와줄게요."


일단 기계에서 영어버전을 제공했기 때문에 혼자서 여권번호와 간단한 정보를 먼저 입력했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란이 나왔다.

입력하지 않고 넘어가려니 다음 단계로 진전이 되지 않았다.


"저, 여기 전화번호가 필요한데요?"


청년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해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다음날 아침 8시 50분, 감비르역에서 족자카르타로 가는 표를 끊을 수 있었다.

표 두 장의 가격은 692,500루피야(약 50달러).

기계에 돈을 넣으면 이제 모든 일이 끝난다.

돈을 넣으면 당연히 거스름돈이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청년이 말렸다.


"더 작은 돈 없나요?"


막 환전을 한 상태라서 수중에는 고액권 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보여주니 청년은 자기의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자비로 남은 돈을 내주었다.

그러고도 얼마가 부족했다.

그는 옆 기계에서 돈을 뽑던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뭐라고 얘기했더니 그 사람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기차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도와준 청년에게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인도네시아의 교통체증과 일처리 속도에 머리 끝까지 치솟았던 화가 한 순간에 사라지고, 인도네시아에 대해 좋은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돈의 금액을 떠나 돌려받을 가망이 없는데,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사비를 털어가며 도와줬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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