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반이 넘어서야 간신히 감비르역에서 벗어났다.
이제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가야했다.
역에서 나오니 베짝 기사들이 어디로 가냐며 물어봐서 길을 물어볼 요양으로 호텔의 이름과 주소를 보여주었다.
"나 여기 알아. 데려다줄게."
걸어서 가겠다며 거절했다.
호텔 안내에 머르데카 광장 내에 있는 모나스 Monas 에서 10분 거리라고 했기 때문에 굳이 베짝을 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체 광장을 왜 잠궈두는거야!
머르데카 광장으로 통하는 문이 전부 잠겨있는 상태였다.
무슨 박물관도 아니고, 뭐 중요한 게 있다고 그 큰 광장의 문을 걸어잠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숙소는 머르데카 광장을 기준으로 감비르역과 정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광장을 뱅 돌아서 가기 시작했다.
철창 사이로 모나스 Monas 가 보였다.
"저기만 통과하면 금방 갈 수 있는데!"
인도네시아에 대한 짜증이 다시금 치솟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친절하고 좋았지만, 인도네시아는 정말 나와는 안 맞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여기도 교통체증이 한창이었다.
그나마 베트남은 오토바이라도 차들 사이도 슉슉 지나갔는데, 여기는 오토바이조차도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길이 막혔다.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는게 오토바이보다도 빠를 정도였다.
길은 곳곳이 지뢰밭이었고, 횡단보도도 제대로 없었다.
심지어 광장 외곽 한 켠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마이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면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왜 내 돈 주고 이 고생을 하지?'
떠난지 몇 시간 되지도 않는 베트남이 정말 그리웠다.
므르데카 광장을 빙 돌아서 호텔까지 가는 거리는 2km 정도지만, 짐이 있는데다가 초행길이다보니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느라 시간이 자꾸 지체되었다.
40-50분 가량을 걸어서야 드디어 예약해두었던 숙소인 '시티 엠 호텔 CITI M HOTEL'에 도착했다.
2인실이 약 30달러였는데, 조식도 포함되고 방도 생각보다 넓고 깨끗했다.
짐도 제대로 풀지 않고 일단 샤워부터했다.
새벽 5시부터 비오듯 흘리면서 쉬지도 못하고 계속 다녔더니 온 몸에 진이 빠졌다.
CITI M 호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숙소 - 시티 M 호텔 Citi M Hotel
그냥 숙소에서 푹 쉬고 싶었지만, 저녁을 먹어야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왔다.
인도네시아는 적도 부근이라서 그런지 오후 6시 남지 밖에 안 되었는데도 깜깜했다.
아까 머르데카 광장을 따라오던 길에 그 근처에 포장마차 같은 노점들이 몇 개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 근처로 향했다.
낮에 봤던 것보다 노점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시간이 흐른 듯 이제야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그냥 눕는 걸 좋아하는구나.
도로 표지판을 눕혀두고 한 아저씨가 아들인 듯한 어린 아이와 함께 누워있었다.
바닥에 돗자리 하나 깔고 그 위에 앉거나 누워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공항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있던 사람들이 노숙자나 구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온 건에 아직 음식을 파는 노점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조그만 수레에 먹을것을 파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쇼마이 Siomay
"이게 뭐예요?"
"쇼마이 Siomay"
생선으로 만든 만두 비슷한 음식에 두부, 메추리알, 감자조각 등이 들어있고 그 위에 땅콩 소스가 뿌렸는데, 중국 딤섬의 일종인 슈마이에서 비롯된 음식이라고 해요.
한 그릇 사들고 우리도 돗자리 위에서 앉아서 나눠먹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맛있는데?"
살짝 매콤한 맛이 나면서도 고소한 땅콩 소스가 정말 일품이었다.
하나만 먹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한 그릇 더 사서먹었다.
크루푹 Krupuk
즉석에서 크루푹 Krupuk 을 튀겨내는 노점도 있었다.
크루푹은 다진 새우에 밀가루를 섞어서 칩이나 크래커처럼 만든 뒤 기름에 튀긴 전통 음식으로, 인도네시아에서는 대부분의 요리에 크루푹을 곁들여서 먹는다고 한다.
맛은 알새우칩과 거의 비슷하다.
모나스에도 조명이 환하게 켜져있었다.
그러면 뭐하나,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현지인들은 철창 사이에 개구멍 같은 곳으로 어떻게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하긴 하는데, 그 개구멍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니 노점들이 문을 열었다.
나시 고랭 Nasi goreng
인도네시아어로 '나시 nasi'는 밥, '고랭 goreng' 은 '볶은, 튀긴'이라는 뜻으로, 딱 우리말로 하면 볶음밥이다.
우리나라에도 나시고랭을 많이 알려져있는데, 'CNN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2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문을 하자마자 1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 웍에 재료를 넣고 그 자리에서 슥슥 음식을 만들어냈다.
"우와!"
한 입 먹자마자 입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한국에서도 인도네시아 음식점을 몇 번 갔기 때문에 나시 고랭은 이미 먹어본 적이 있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제껏 먹어봤던 나시고랭은 뭐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현지의 나시고랭은 차원이 달랐다.
삼발소스의 매콤함과 함께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풍부한 향신료의 감칠맛, 게다가 방금 약간 그슬린 듯한 불맛까지 났다.
볶음밥 종류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도 정말 허겁지겁 먹었다.
고양이들도 노점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떨어진 음식물 조각들을 주워먹었다.
몇몇 상인들은 모나스 모형이며 티셔츠 같은 기념품을 펼쳐놓고 팔았다.
쪼그려앉아서 구경을 했지만, 별로 내 취향의 기념품들이 아니라서 사진 않았다.
"저 사람 좀 봐!"
친구가 신기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면서 한 아저씨를 가리켰다.
멀리서 기웃거리면서 지켜보니 정말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희한했다.
현지인들도 종종 지나가면서 사먹는 것을 보니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 사서 나눠먹기로 했다.
먼저 넓고 얇은 볶음팬 같은 데에 쌀을 넣었다.
생쌀은 아니고 불린 쌀처럼 보였다.
그 위에 말린 새우 보푸라기처럼 보이는 조각들을 넣었다.
그 다음으로 두 재료를 잘 섞는다.
누룽지처럼 팬에 얇게 펴서 겉면을 살짝 눌게 한다.
그 위에 계란이나 오리알을 깨넣고, 잘 섞는다.
만드시는 아저씨가 어느 것으로 할 거냐는 등 계란을 손으로 가리켰다.
약간 푸른 빛이 도는 하얀알이 오리알인데, 나는 그냥 흰달걀과 갈색달걀이라고 생각했다.
흰 달걀을 넣어달라고 하니 좀 더 가격을 비싸게 받았다.
어느 정도 익으니 아저씨가 팬을 거꾸로 뒤집어서 숯불에 직화로 익혔다.
180도 홱 뒤집었는데도 내용물이 떨어지지 않아서 신기했다.
끄락 뜰로르 Kerak Telor
다 익으니 아저씨가 팬에서 살살 긁어내서 종이에 담은 후, 그 위에 생선가루 같은 것을 뿌려주었다.
이 음식의 이름은 '끄락 틀로르 Kerak telor'인데, 인도네시아어로 '끄락 kerak' 은 딱딱한 껍질이나 크러스트, '뗄루르 telur' 는 계란을 의미한다고 하다.
끄락 틀로르는 자카르타 지역의 전통 오믈렛의 일종인데, 식민지 시대에는 부유하고 권력있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 이름처럼 누룽지를 먹는 듯 바삭바삭하다.
하지만 말린 새우가루 같은 것을 넣어서 약간 짭짤하고 비릿한 맛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을 들렸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븐 일레븐이 인도네시아에도 있었다.
빈땅 맥주 bir Bintang
인도네시아 대표 맥주라는 빈땅 맥주를 한 캔 샀다.
날도 덥고, 목마를 때에는 시원한 맥주만한게 없다.
한모금 쭉 들이켜는데 뭔가 맛이 이상하다.
"이거 무알콜이잖아!"
오늘은 무슨 마가 꼈나.
하루를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도네시아에서는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다.
그냥 음료수 마신다고 생각하고 쭉 마신 다음에 숙소로 돌아왔다.
(재미있게 보셨으면 아래의 ♥ 를 눌러주세요^_^)
'해외 여행 > 2015 호치민&인니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네시아] 09. 6/2 족자카르타 말리오보로 거리 (1) (6) | 2016.01.04 |
---|---|
[인도네시아] 08. 6/2 족자카르타 가는길 (12) | 2015.12.25 |
[인도네시아] 06. 6/1 자카르타 감비르역 (6) | 2015.12.17 |
베트남 항공 호치민 - 자카르타 구간 후기 (6) | 2015.12.11 |
[베트남&인도네시아] 05. 6/1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가는 길 (6) | 2015.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