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 기차역에서 나왔다.
기차역에서 여행자거리인 말리오보로 거리로 가려면 철길을 건너야한다.
캐리어를 끌면서 울퉁불퉁한 철길을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양쪽에서 차단기가 내려왔다.
순식간에 차단기 사이에 갇혀버렸다.
어떡하지? 빨리 뛰어가야하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갇힌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라 꽤 많다는 것.
하지만 현지인들은 아무렇지도 아닌 듯 적당히 가장자리로 피해갈 뿐이었다.
심지어 관리인조차도 별 거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볼 뿐이었다.
철도는 곧 텅 비어버렸다.
나도 현지인들을 따라서 철도 가장자리 적당한 곳에 서있었다.
기차가 바로 코 앞에서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차단기 안이라고 해도 지하철 플랫폼의 안전선 정도의 거리는 되기 때문에 그렇게 위험할 거 같지는 않았지만, 차단선 안에서 기차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때 기차를 타고 통학했던 터라 수도 없이 기차를 보고 또 탔지만, 이렇게 보니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기차가 지나가자 차단기는 다시 올라갔고, 양쪽에서 기다리던 사람과 오토바이 무리로 길은 다시 혼잡해졌다.
족자카르타 대부분의 숙소는 말리오보로 거리에 몰려있지만, 거기서 조금만 떨어지면 비슷한 가격대의 훨씬 좋은 숙소들이 많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말리오보로 거리에서 2km 정도 거리에 떨어져있는 파쿠알라만 Pakualaman 이라는 곳에 있었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멀지만 트랜스 족자 Trans Jogja 1A 버스를 타면 바로 갈 수 있다.
정거장에서 직원에게 지도를 보여주니 알겠다고 하고 자기들끼리 수근수근거린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일단 기다리라는 눈치다.
정거장 안에서는 지금 오는 버스 번호를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있다가 어느 버스 한대가 오니 직원이 바로 타란다.
버스 차장은 캐리어 짐까지 받아서 버스 안에 실어다준다.
어디서 내려야하는지도 모르고 멍하게 있다가 버스 차장이 부르는 소리에 후다닥 내렸다.
그는 '저쪽 길로 가라'며 우리 호텔 가는 길까지 알려주고서야 떠났다.
호텔은 버스 정거장에서 걸어서 2-3분 정도의 거리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잘못 찾아왔나?
부킹닷컴에서 조식 포함 2인실 가격이 25달러 정도였다.
가격 대비 괜찮은 호텔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숙소가 너무 좋았다.
어두워서 정확하게는 몰라도 넓은 정원에 건물만 여러채였고, 리셉션도 독채로 따로 되어있을 정도였다.
족자카르타 숙소에 자세한 정보
->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욕야카르타) 숙소 - 푸리 판게랑 호텔 Puri Pangeran Hotel
리셉션 직원은 족자카르타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보로부두르와 프람바난 사원 등의 투어가 있다면서 안내해주었다.
일단 체크인을 하고, 그녀에게 투어를 하게 된다면 나중에 이야기하겠다고 하고 안내문만 받아왔다.
방도 꽤 넓고 깨끗했다.
더운 나라이다보니 바닥은 시원한 타일로 되어있었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잘 돌아갔다.
간단하게 씻고 짐만 푼 뒤에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적도에 위치한 나라라서 그런지 해가 일찍 지는 듯 했다.
말리오보로는 밤에도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길거리에는 말이 서있어서 깜짝 놀랐다.
말리오보로 거리가 여행자 거리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마차도 다니는 모양이다.
말의 대소변으로 길거리가 더렵혀지지지 않도록 말 엉덩이에 자루를 매달고 다니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길 한 켠에는 포장마차 비슷하게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다 비슷비슷해보여서 그 중 한 가게에 들어갔다.
메뉴는 당연히 인도네시아어.
"ayam 은 닭고기고, telor 는 계란, nasi 는 밥이고, es 는 아이스, goreng 은 볶은거..."
가기 전에 익혀간 인도네시아어 몇 마디와 함께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음식점을 가본 경험을 바탕으로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어는 라틴 문자를 쓰고, 단어를 나열하는 식으로 수식하기 때문에 단어만 안다면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편이다.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어 단어가 채 10개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지만.
아이스 티 Es teh
일단 더워서 시원한 음료부터 주문했다.
es 은 인도네시아어로 얼음, teh 는 티 라는 뜻으로, 아이스티이다.
처음 자카르타에 도착해서 마셔온 차 음료수처럼 차는 향 뿐이고, 엄청나게 달았다.
나시 구덱 Nasi Gudeg
구덱 Gudeg 이 설익은 잭푸르츠에 팜슈가와 코코넛 밀크를 넣고 오랜시간 끓여서 만든 음식인데, 욕야카르타 지역의 전통음식이라고 한다.
구덱에 밥과 닭고기, 훈제메추리알, 삼발 소스가 같이 올려져있어서 마치 도시락 같은 느낌이었다.
맛은 예상보다 평범했다.
약간의 향신료향이 있긴 했지만, 한국인이라면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오히려 더 인상깊었던 거는 삼발 소스였다.
한국에서 먹어본 삼발소스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조금만 먹어도 매운 맛이 확 입안에 확 퍼졌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말리오보로 거리를 걸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굉장히 이국적인 음악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있는 곳을 가보니, 인도네시아 전통악기들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월드뮤직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이전에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에도 굉장히 낯설고도 신비로운 소리에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가' 하면서 굉장히 신기해했었는데, 막상 직접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신비로웠다.
대나무통에서 저렇게 통통 울리는 맑고도 독특한 소리가 나는지 보면서도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람만 없다면 가서 '한 번만 만져봐도 되요?' 라고 묻고 싶었다.
1889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을 때, 베트남, 캄보디아, 자바섬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 지역의 음악들이 유럽에 소개되어 예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내가 있어도 정말 쇼킹했을 거 같았다.
인도네시아 음악을 처음 들어보는 친구도 연신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 장면은 녹화해두었는데, 중간에 사라져버려서 아쉽다.
실제 공연 장면은 이와 비슷하다.
시간만 있으면 계속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즐거운 음악을 감상한 값으로 얼마를 놓고 오는 것도 있지 않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 일정을 어떻게 해야하나."
보로부두르와 프람바난 사원은 족자카르타에 오면 꼭 가야하는 대표적 관광지이지만, 시내에서 거리가 좀 있기 때문에 가기가 쉽지 않다.
총 여행일정을 감안하면 다음날에 둘 중 한 군데 중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프람바난 사원은 트랜스 족자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지만, 보로부두르 사원은 교통수단 자체가 거의 없고 그나마도 일찍 끝기기 때문에 그냥 투어를 이용하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리셉션에서 준 투어 안내문을 보니 오후 1시 반에 시작하는 5시간짜리 보로부두르 투어가 10만 루피.
시간대도 그렇고, 입장료 불포함이긴 해도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리셉션에 가서 다음날 보로부두르 오후 투어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빈땅 맥주 있어요?"
리셉션 직원 뒤에 빈땅 맥주를 판매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있다면서 방으로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빈땅 맥주 Bir Bin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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