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투르크멘&아제리2013. 2. 1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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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더위 좀 식히고 저녁 무렵이 되자 슬슬 다시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장소는 테제 피르 모스크 Təzə pir məscidi.

저는 모스크나 마드라사 같은 종교 유적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테제 피르 모스크'만은 꼭 가보고 싶었어요.

카프카스 지역에서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는 기독교를 믿는 국가이지만, 아제르바이잔과 현재는 러시아에 속해있는 일부 민족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 무슬림들입니다.

소련 시절,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슬로건 하에 종교를 억압했습니다.

같은 종교를 믿는 무슬림들간의 형제애를 강조하는 이슬람은 그 중에서도 특히 탄압을 많이 받았는데,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모스크와 종교 시설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유적들은 파괴 혹은 방치되었으며, 종교인들은 잡혀가서 처형 혹은 유배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시설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고, 명목상으로나마 각 지역을 담당하는 일부 종교 기관은 남겨두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경우에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는 '하즈라티 이몸 모스크 Hazrati Imom Masjid'가 그 역할을 했고, 카프카스 이슬람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 바로 '테제 피르 모스크'입니다.


테제 피르 모스크는 대로변이 아니라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있어서 찾아가기가 좀 고약했어요.

하지만 골목이 막 엉켜있는 것도 아니고 골목 이름이 쓰인 간판을 쉽게 볼 수가 있어서,  론니플래닛의 지도를 보고 골목 이름을 하나하나 비교해가면서 찾아갈 수 있었어요.




찾아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골목들을 볼 수가 있었어요.



낡고 허름한 골목을 따라가자, 테제 피르 모스크가 나타났어요.

멀리서도 보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돔만 보아도 이 곳이 우리가 찾던 곳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찾아가는 길만 해도 전혀 보수가 안 된 낡은 건물들이었는데, 이 근처만 리모델링이 되어 있었어요.




모스크 바로 옆에는 이슬람 신학교 건물이 있었어요.

이슬람 신학교라고 하면 왠지 다양한 아랍어 서체로 장식이 되어있고, 기하학적인 문양의 타일이 붙어있는 듯 전통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의 건물이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는데, 번듯한 유럽식 건물이 신학교라고 하니 왠지 낯설고 신기했어요.




테제 피르 모스크.



내부에 있는 조그만 녹색 돌판에는 아제르바이잔어로 '테제 피르 모스크의 재건과 증축이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라고 쓰여있었어요.


"왜 이런 곳이 잘 알려져있지 않을까?"


테제 피르 모스크는 모스크를 그렇게 싫어하는 저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꽤 볼만했어요.

역사적인 의미도 있고, 규모도 크고, 조용하고...

바쿠를 찾아오는 한국인 관광객인 물론, 외국인 관광객도 테제 피르 모스크는 거의 찾아오지 않을 뿐더러 존재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좋은 곳이 왜 잘 알려져 있지 않은지 모를 정도로 정말 좋았어요.



여기 정말 모스크 맞아?

두 개의 미나렛만 없다면, 얼핏 봐서는 유럽의 성당 혹은 교회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낯선 외국인들이 갑자기 와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고 있으니, 모스크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께서 저와 친구를 물끄럼이 쳐다보셨어요.

모스크나 마드라사 같은 종교 시설은 보통 나이 좀 지긋하신 할아버지 분께서 관리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그 할아버지께 안에 들어가도 되냐고 조심히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어디 가시더니 30대 즈음 되보이는 젊은 남자를 데리고 왔어요.

옷차림을 보아하니 이맘(예배 지도자 혹은 학자)로 보였어요.


"혹시 안에 들어가도 되나요?"

"안에는 들어가도 되는데, 사진은 찍으면 안 되요. 그리고 여자는 저쪽으로 들어가야 해요."


모스크에서는 남녀의 기도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요.

여성들의 기도실은 남자들의 공간 뒤쪽에 칸막이를 설치해서 만들기도 하고, 층으로 구별하기도 하고, 아예 다른 공간을 사용하기도 해요.

하지만 모스크는 남성들의 공간에 가까워요.

여성들도 물론 모스크에 와서 기도를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집에서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볼거리가 있는 메인 공간은 남성들이 차지하고, 여성들의 기도실은 정말 기도할 수 있는 공간 밖에 없어요.

모스크에서 남녀가 들어가는 입구가 분리되어 있다면 여자 입장에서는 볼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해요.


예상대로 여자 기도실에는 조그마한 방 하나와 밋밋한 벽 하나 뿐이었고, 아주머니 서너 분이 기도를 드리고 계셨어요.

입구에서 굴러다니는 머리 수건 하나를 뒤집어쓰고, 그래도 뭐 볼 거 있나해서 돌아다니는데 계신 분들이 어찌나 눈치를 주는지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왔어요.

관리자가 없다면 남자 기도실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입구에서 슬쩍 볼 수도 있겠지만, 안내해준 이맘이 계속 우리를 지키고 있던 터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나와야했어요.






테제 피르 모스크를 보고 난 후, 론니 플래닛을 보니 근처에 모스크가 하나 더 있었어요.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 가지 않으면 언덕길을 또 올라와야한다는 생각에 힘들게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어요.



이곳은 이맘 후세인 모스크 İmam Hüseyin Məscidi.

테제 피르 모스크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성지라고 한다면, 이맘 후세인 모스크는 동네 주민이 다니는 평범하고 아담한 모스크였어요.




관리가 좀 안되어서 약간 낡기는 했지만, 이 모스크도 외관은 미나렛만 없다면 모스크보다는 교회와 비슷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교회 건물을 개조해서 모스크로 쓰는 건가 싶을 정도로요.


일반인들이 다니는 평범한 모스크여서 그런지 테제 피르 모스크처럼 엄격하게 제지하지 않았어요.

여성 기도실은 2층이 모스크 내부도 지나가면서 대강 볼 수 있었어요.

아제르바이잔은 이란과 가까워서 시아파 무슬림들이 많고, 시아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순니파 무슬림들도 적지 않지만, 종파보다는 '이슬람'이라는 종교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더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처럼 양 종파 무슬림 사이에 큰 갈등은 없어요. 



여성 기도실에는 '파티마의 손'이 있었어요.

파티마의 손은 이슬람에서 액을 막아주는 부적 혹은 장신구로서 이슬람 지역에서 많이 사용되는 상징이예요.

원래는 중동 지역에 퍼져있던 무속 신앙이었으나 이슬람이 전파가 되면서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의 큰 딸은 파티마에 대한 숭배에 따른 의미가 더해졌다고 합니다.

제가 많은 모스크를 가봤지만, 파티마의 손은 이야기만 들었을 뿐 보기는 처음이어서 신기했어요.





이맘 후세인 모스크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언덕 꼭대기 즈음에는 한 남자의 거대한 동상이 하나 나왔어요.



동상의 모델이 된 남자는 네리만 네리마노프 Nəriman Mərimanov.

20세기 초에 살았던 아제르바이잔의 정치인이자 언론인, 번역가라고 해요.

테제 피르 모스크와 후세인 이맘 모스크 주변은 오래되어 허름하고 낡은 서민들의 집이 가득했지만, 네리만 네리마노프 동상 주변은 이미 리모델링이 전부 끝나서 완전히 정비가 다 되어 있었어요.




해가 지고 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니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전부 나와서 산책과 휴식을 즐기고 있었어요.

주변에 바로 도로라서 좀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이들은 삼삼오오 공을 차며 놀고 있었어요.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서 카스피해와 도심을 내려보는 경치도 볼만했어요.
너무 관광지처럼 인위적으로 꾸며지지 않고, 나만 알고 있는 명당이라는 느낌이었어요.
숙소가 있는 이쳬리 쉐헤르까지 가는 버스가 있기는 했지만, 계속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친구와 함께 천천히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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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티틀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알 수 없는 사용자

    이태원에 있는 건물과 같은 종교 건물인건가요? 전에 들어가서 보려고 했는데 여자는 들어오면 안된다고 혼났었어요 ㅜㅜ

    2013.02.16 20:47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이태원에도 한국 중앙 이슬람사원이 있어요.
      저도 몇 번 가봤어요.
      여자는 본당에는 못 들어가지만 2층 기도실은 들어갈 수 있어요.
      입구가 다른 곳에 있답니다.
      원래는 무슬림 여성을 대동하고 가야하지만, 그냥 들어가도 별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요.
      조만간 저도 서울 올라가는데, 언제 한 번 만나서 같이 가요ㅎㅎㅎ

      2013.02.16 22:21 신고 [ ADDR : EDIT/ DEL ]
  2. 알 수 없는 사용자

    >ㅁ< 좋아요 ㅎㅎ 우왕 근데 전 아무런 지식이 없는데 ㅎㅎ 그냥 따라가면 되나염 ㅎ

    2013.02.16 23:44 [ ADDR : EDIT/ DEL : REPLY ]
  3. 모스크를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시나요? ㅎㅎ;;
    테제 피르 모스크는 정말 성당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도쿄에도 성당같은 분위기의
    절이 있어요..심지어 파이프 오르간까지 있는..ㅎㅎ;;
    파티마의 손은 그냥 옷걸이 인줄 알았네요..ㅎㅎ

    2013.02.17 08: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너무 지겨워서요.
      제가 여행한 지역이 대부분 이슬람 지역이었어요.
      여행을 다니면서 하도 많이 다니다보니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도 다 그게 그거 같아요.
      그 유명한 터키의 블루모스크도 하도 많이 봤더니 별 감흥이 없어졌어요 ㅎㅎ

      파이프 오르간 있는 절은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
      매우 독특한 느낌일 거 같아요.

      2013.02.18 02:3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