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바로 호텔에서 나와서 근처에 있다는 서점에 갔어요.

저와 A씨는 몇 번 여행을 같이 했지만,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그 나라의 서점은 꼭 찾아서 들리는 편이에요.

이유는 현지어-영어, 영어-현지어 사전과 여행 회화책을 구입하기 위해서지요.


흔히들 "영어는 세계 공용어라서 영어 하나만 알면 전세계 어디에서든 살 수 있다."라고 말하곤 해요.

사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일부 나라를 제외하고,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며 다닐 수 있는 나라는 그닥 많지 않아요.

관광업이 발달한 나라거나 미국, 영국과 정치, 경제, 역사적으로 큰 연관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경우에서는 그나마 잘 통하는 편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말 기본적인 수준조차도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못한다'고 난리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적인 영어 수준이라면 세계적으로 꽤나 준수한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우즈베키스탄에 살아봐서 알지만,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정말 지지리도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들이예요.

이런 나라를 여행할 때 꽤 유용한 게 현지어-영어 사전과 여행 회화책.

질과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나라든 수도에서 서점을 뒤져보면 현지어-영어 사전과 여행 회화책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어요.

조그만 여행 회화책 하나 사서 가지고 다니다가 여행 중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때 혹은 간판이나 표지판 등을 볼 때 조금씩 찾아보거나 현지인들에게 보여주면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 훨씬 편하게 여행할 수 있어요.

물론 개인적으로 외국어에 관심이 있기도 하지만요.




택시 기사가 알려준 곳에 서점이 있긴 있었어요.




겉에서 보기에 건물이 꽤 커보여서 기대를 했는데, 교보문고처럼 전부 하나의 서점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책과 학용품 등을 파는 소규모 가게들이 빼곡하게 모여있었어요. 

그 중 책이 좀 많아보이는 아무 가게 앞에 가서 물어보았어요.


"타직어-영어 여행 회화책 있어요?"




"영어는 이거 뿐이예요."


주인이 보여준 것은 타직어-러시아어-영어 여행회화책.

갱지에 적당히 인쇄해서 호치키스로 박아놓은, 누가봐도 불법복제처럼 생긴 책이었어요.

그나마 놓여있는 몇 개 중에서 제일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골라서 가져왔어요.'

사실 타직어라고는 단어 몇 개 밖에 모르는 상황에서 그거라도 감지덕지했어요.






구입을 마치고 우리는 두샨베의 중심가인 '루다키거리'를 걷기로 했어요.



중앙아시아, 카프카스 지역에서는 수도의 중심가에 그 나라에서 유명한 혹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학가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중심가 '나보이 거리'는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알리쉐르 나보이',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중심가 '니자미 거리'도 시인인 '니자미 겐제비'의 이름을 붙였어요.

두샨베의 중심가인 '루다키 거리'도 8-9세기 '페르시아 고전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문인인  '아부 루다키'의 이름을 붙인 거리예요.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유일하게 페르시아계(이란계) 국가이고, 타직어도 이란어,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토어와 같은 페르시아계 언어예요.

그래서 한 역사적 인물을 놓고 이 세 나라 사이에서 서로 자기 나라의 위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아요.

아부 루다키도 이러한 논란이 있는 인물인데, 페르시아 계통이지만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태어나서 부하라에서 살았기 때문이예요.

사실 예전에는 지금과 같은 국경의 구분이 있는게 아니라 다같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동일 문화권인데, 어느 나라 출신이냐를 이제와서 따지는 것은 큰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타지키스탄에서는 중심가에 루다키의 이름을 붙일 정도로 아부 루다키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관광객이 그닥 많이 오는 나라도 아니인데, 거리 이름이 타직어, 러시아어, 영어 3개 국어로 쓰여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어요.






여기 꽤 괜찮은데?


타지키스탄에 오면서 '가난한 나라다' '거기 볼 거 없는데 뭐하러 가냐'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나라다' 등등 안 좋은 이야기를 엄청 많이 들어서 솔직히 정말 별 거 없는 후줄근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중심가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미관도 잘 되어 있고 청소 상태도 깨끗하고 예쁘게 잘 꾸며져 있었어요.



여긴 SFC다!!!

'

타슈켄트에는 Champions Fried Chicken 이라고 해서 CFC가 있어요.

여러 가지 국가 여건이나 규제 때문에 다국적 기업이 들어오지는 못하고, 유사한 제품에 대한 내부에서의 수요는 존재하니 이런 식으로 비슷한 짝퉁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우리 여기서 밥 먹자."


마침 점심을 먹을 시간.

전 하루 세 끼를 햄버거로 먹어도 좋을 정도로 패스트푸드를 좋아해요.

더군다나 우즈베키스탄에 온 이후로 4개월이 넘도록 햄버거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어요.

A와 B도 좋다고 했어요.


메뉴는 키릴 문자가 아니라 영어로 적혀있었고, 직원들도 영어를 꽤 잘했어요.

우리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꽤 오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가격은 꽤 비싼 편이었어요.

한국의 햄버거 가격과 비슷한 정도이니, 이 나라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고가였어요.



햄버거 맛은 그럭저럭 평범했어요.

우리나라에 비교하면 양은 조금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먹어보는 햄버거라서 그런지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특이한 점은 콜라를 고를 수가 있다는 점이에요.

타지키스탄에서는 흔히 알고 있는 코카콜라, 펩시콜라 외에 RC 콜라라는 자체 브랜드 콜라가 있어요.

이곳에서도 펩시 콜라와 RC 콜라 중에서 고를 수가 있는데, 펩시는 RC보다 약간 비싸요.

그리고 펩시 콜라는 흔히 생각하는 그런 기계에서 뽑아먹는 게 아니라 냉장고에서 페트병으로 된 콜라를 꺼내서 종이컵에 부어줘요.

맛이 궁금해서 RC 콜라를 시켜봤는데, 뭔가 밍밍한 것이 콜라향맛?

옛날에 마셔본 콤비콜라라든가 815 콜라에서 느껴지는 콜라는 콜라지만 뭔가 밍숭맹숭하고 콜라이긴한데 콜라 같지 않은, 여하튼 오묘한 느낌이었어요.





즐겁게 식사를 하고 다시 루다키 거리를 걷기 시작.







루다키 거리만 놓고 본다면, 타슈켄트의 나보이 거리 부럽지 않았어요.

오히려 어떤 면에서 보면 나보이 거리보다도 나았어요.

타슈켄트가 두샨베보다는 압도적으로 큰 도시이고 중요한 도시이기는 하지만, 나보이 거리는 정말 할 거 없고 심심해요.

루다키 거리에는 공원처럼 벤치도 마련되어 있고, 가로수랑 화원도 잘 조성되어 있어서 오히려 시간을 보내기에는 훨씬 좋았어요.



이스마일 소모니 왕의 동상.

9세기부터 10세기까지 동부 이란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배했던 사만 왕조를 건국한 사람이예요.



타지키스탄 국립 도서관.



뒤쪽에는 커다란 기념물이 있었어요.

아주머니 한 분과 아저씨 한 분이 청소를 하고 계셔서 올라가도 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우리를 본 아주머니께서 계단 위로 올라와서 구경하라고 하셨어요.



아까 본 소모니 동상의 뒷모습.



대통령궁과 타지키스탄 국기가 걸려있는 깃대.

아주머니께서는 저 깃대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이라면서 매우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전통의상을 입은 여자들.

타지키스탄의 전통 의상은 겉으로 봐서는 크게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의상과 매우 비슷했어요.

우즈베키스탄도 전통 의상을 많이 입기는 일상적으로 입고 다니지는 않는 거 같아요.

입는다고 해도 주로 아주머니, 할머니들이나 기혼 여성들이 입지, 젊은 처자들은 현대적인 의상을 많이 입어요. 

그러나 타지키스탄에서는 할머니부터 청소년까지 많은 여자들이 저런 형형색색의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소모니 동상과 국립 도서관, 기념물이 있던 옆에는 루다키 공원이 있어요.

타직어로는 '보기 루다키'.




여기는 분수 펑펑 틀어놓은 것이 보니까 국가에서 엄청 신경쓰는 곳이구나!


물이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타지키스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분수를 틀어놓은 것 자체만으로 놀라운 일이었어요.

여행기 앞 부분에도 쓰기는 했지만, 타지키스탄은 만성적인 전력 부족에 시달리는 나라거든요.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처럼 에너지가 나는 나라도 아니고 주로 수력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데, 그나마도 대부분 산업용으로 사용해요.

일반 가정에서는 외국에서 수입한 비싼 전기를 쓰는데 그나마도 공급이 원활하지가 않아서 수도 두샨베조차도 하루에 몇 시간만 전기를 공급하기도 한다고 해요.



이 분이 바로 루다키 거리와 루다키 공원의 주인공인 아부 루다키.




Posted by 히티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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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그렇군요..참 신기하네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제 입장에서는 모두 잘 구분이 안 가는 새로운 장소 같이 느껴져요.
    그런데 타지키스탄 거리가 생각보다 깨끗해서 깜짝 놀랐어요.
    (역시 선입견은 버려야 해요..ㅠㅠ)
    국립도서관이 저렇게 큰데도 영어회화책은 좀 아쉽네요~
    사진과 함께 생생한 여행기를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타지키스탄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어서 좋아요^^

    2013.07.09 15: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국립도서관은 큰데, 거기를 채울 책이 없어서 전국에서 있는 책이란 책을 전부 모아서 저기에 갔다놓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안에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타직어로 된 책보다는 러시아어로 된 책이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해요.

      2013.07.10 01:14 신고 [ ADDR : EDIT/ DEL ]
  2. ㅎㅎ 타지키스탄어 발음은 적혀 있는 건가요.
    회화책까지 구입하다니 대단하십니다 ^^

    2013.07.16 10: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실제 여행하다가 두어 번 정도 써먹었어요.
      특별히 발음이 쓰여있지는 않은데, 몇 가지 글자 빼고는 러시아어랑 똑같아서 키릴 문자를 알면 그럭저럭 읽을 수 있어요.

      2013.07.16 10:53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