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말레이시아 여행을 떠나는 날.
출국하기 전날 밤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시간 눈만 붙인 뒤 공항버스 첫차를 탔다.
그 때부터 뭔가 조짐이 안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속이 불편했다.
화장실에 들렀다 갈까 싶었으나 그러면 버스를 놓칠 듯 하며 '괜찮겠지' 하면서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버스가 출발하면서부터 장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여기서 내려서 공항전철을 타고 가야살 것인가, 아니면 계속 이 버스를 타고 가야 살 것인가.
내리기도 애매한터라 결국 그냥 서울역을 지나쳐버렸다.
장은 잠잠했다 날뛰었다를 계속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뱃속에서는 장이 배배 꼬이는 듯 끊어질 것 같이 쑤셔대고, 등에서는 식은땀까지 차올랐지만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는 어디 세울 곳도 없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입술을 깨물고 꾹 참는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새벽 시간이라서 차는 막히지 않았고, 오전 5시 30분이 조금 넘어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내려서 화장실로 뛰었다.
화장실에서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나니 그제야 좀 살 거 같았다.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나서야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갓 새벽 6시가 됐을 뿐인데, 공항은 벌써 사람들로 번잡스럽다.
나도 놀러가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안 갈까 싶다.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한 친구 좀좀이와 만나서 같이 아침을 먹기로 했다.
친구는 버거킹을 가고 싶다고 했는데,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영 버거킹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도 애매하니 바로 눈에 띄는 KFC에 들어갔다,
이것도 안되냐!
이왕 이렇게 된 거 포스팅이나 할 생각으로 안 먹어본 메뉴를 고르고, 사진을 찍기 위해 컷팅칼로 반을 잘랐다.
평소에는 실수도 별로 없이 깔끔하게 잘만 잘랐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쓰지 못할 정도로 엉성하게 잘렸다.
먹는데에는 지장이 없으니 일단 안 좋은 속에 꾸역꾸역 먹었다.
다 먹고 수속을 하러 갔더니 그 바로 근처에 버거킹이 있었다는 건 함정.
짐까지 다 부치고 출국 게이트에 들어섰다.
출국 수속을 하기 전에 짐 검사를 받기 위해 가방과 짐을 엑스레이 기계에 넣고 통과하려는데, 직원이 나를 잡았다.
"가방 속에 필통 있으시죠?"
"네, 그런데요."
"필통 속에 칼 있으시죠? 필통 좀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평소에는 카메라 가방만 가지고 비행기에 타기 때문에 펜 한 자루만 넣고, 필통은 아예 가지고 가지 않거나 수하물로 붙여버렸다.
지난 여행에서 카메라 가방이 망가졌는데 새로 살 시간은 없어서 그냥 평소 쓰던 백팩을 가지고 탔더니 필통에 든 문구용 커터칼을 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지고 가시려면 다시 나가서 부치고 오셔야하고, 아니면 폐기처분 하셔야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냥 버려주세요."
여행을 떠나던 그 순간부터 꺼림찍한 일들의 연속이다.
일기예보도 계속 비소식 뿐이라 제대로 관광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계속 안 좋은 생각만 들었다.
나를 말레이시아로 데려다 줄 에어아시아 비행기가 보였다.
지연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지만, 에어아시아는 워낙 연착이 잦다고 악명이 높아서 으레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다행히 원래 예정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어진 9시 정도부터 비행기 탑승을 하기 시작했다.
탑승한 비행기는 에어버스 A330-300 이었고, 좌석은 3-3-3으로 되어있었다.
저가항공이다보니 당연히 좌석 간격이 좁아서 각잡고 가야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예상 외로 좌석이 좀 넓어서 다리를 뻗고 갈 수 있었다.
내 자리는 창가였다.
버스에서 그렇게 고생을 한터라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만석이라 자리를 바꿀 수 없어서 그냥 앉았다.
다행히 비행기에 타고 있는 동안에는 속만 좀 부담스러울 뿐 큰 문제는 없었다.
비행기에 타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인지 졸음이 쏟아졌다.
대체 얼마나 잔거지?
비행기가 게이트를 떠나고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기억나는데, 어느새 나는 상공을 날고 있었다
자동차든, 기차든, 비행기든 이동수단에서는 특유의 진동 때문에 여간해서는 쉽게 잠들지를 못하는데, 비행기가 뜨는 것도 모르고 그냥 푹 자버린 거 같다.
어디 가서 굶어죽지는 않을 팔자인지, 눈을 뜬지 얼마 안 되어서 기내식을 판매하는 카트가 다니기 시작했다.
에어아시아는 저가항공이라서 기내식을 구입해먹어야하는데, 나와 친구는 비행기표를 살 때 미리 기내식을 예약해두었다.
승무원은 탑승권을 확인하고, 기내식을 건네주었다.
내가 주문한 음식은 미고랭 마막 Mee Goreng Mamak 이었다.
원래는 나시르막을 먹고 싶었지만 친구가 먹겠다고 해서 차선으로 고른 메뉴였다.
볶음면이라 기름기도 많은 데다가 다 불어서 툭툭 끊어져서 젓가락질을 하는건지, 숟가락질을 해야하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결국 결국 반쯤 먹다 말았어요.
밥 종류를 그닥 좋아하지 않더라도 다음엔 그냥 밥이나 빵 종류가 훨씬 나을 거 같다.
창 밖의 풍경은 봐도봐도 예쁘고 신기하지만, 이번 자리는 정말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날개 옆이라서 바깥 풍경을 거의 볼 수가 없다.
한잠 실컷 늘어지게 자고,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쿠알라룸푸르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면 귀가 터질 듯이 아프고 웅웅거려서 늘 고생을 하는데, 이번엔 기내 압력조절이 잘 되는지 귀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기장님이 경험이 많으신 분인지, 착륙도 덜컹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활주로로 내려앉았다.
보통 구소련권에서는 비행기 착륙을 성공하면 승객들이 박수를 쳐주곤 하는데, 이번에는 나도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 눈치 때문에 가만히 있었지만요.
현지시각 오후 3시 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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