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말레이시아 국적의 사람들은 자동출입국 심사를 통해서 빨리 통과하고, 대부분 외국인들이다.
말레이시아는 90일간 무비자에 입국신고서도 쓰지 않는 대신, 양쪽 검지손가락의 지문을 채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스캐닝하는 기계에 양쪽 검지손가락을 가져다댔는데, 슬쩍 눌러서 그런지 다시 찍으라고 했다.
조금 힘을 주어서 누르니 통과.
보통 공항에서 일하는 출입국 관리 공무원들은 얼굴이 바짝 굳어있거나 피로에 지쳐있는데, 여기서는 표정이 나쁘지 않다.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고 'Thank you' 라고 말하니 슬쩍 웃어준다.
입국 심사를 마치니 짐도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캐리어 가방을 찾자마자 그 자리에서 개봉해서 옷부터 갈아입었다.
한국은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날씨라서 두꺼운 털스웨터에 코드, 털양말까지 신고있던 상태였는데, 쿠알라룸푸르의 기온은 30도.
공항이니 에어컨이 빵빵 틀어져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등줄기에서는 땀이 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름옷은 본가에 있는데 가지고 올 시간이 없어서 얇은 긴팔옷 몇 벌을 챙겨왔는데, 그거라도 갈아입으니 훨씬 시원했다.
입고 있던 코트는 캐리어 바닥에 쑤셔넣었다.
어? 밖이 아니야?
보통은 짐을 찾고 세관절차까지 마친 후, 자동문을 나서면 바로 공항 밖으로 연결되거나 밖으로 나가는 안내표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쇼핑몰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때 알았어야했다, 쿠알라룸푸르는 정말 쇼핑을 위한 최적의 나라라는 것을.
다국적 브랜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자주 보았던 악세사리 숍도 입점해 있어서 조금 신기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여행을 하기 전 연락을 주고 받았던 친구의 지인과 만나기로 이미 약속을 한 상태였다.
다행히 쇼핑몰 내에서 무료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어서 급하게 연락을 했다.
자기는 지금 가고 있는 중이니 무조건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원래 계획은 도착하자마자 현지 유심을 산 후 만날 생각이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길을 모르면 직진이라고 어찌어찌 계속 걷다 보니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 와이파이가 안 된다.
길 찾다가 유심도 못 산 터라, 현재 위치와 만날 장소를 알려줘야하는데 알려줄 방법이 없다.
왠만하며 안 쓰려고 했는데 할 수 없이 눈 딱 감고 데이터 로밍을 사용했다.
2번 출구 앞에 있다고 하니 아직 오는 중이라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데이터를 차단해버렸다.
1-2분도 채 안 쓴 거 같은데, 나중에 핸드폰 요금을 보니 로밍요금이 2천원 가까이 나왔다.
역시 해외로밍은 무섭다.
쿠알라룸푸르가 교통 체증이 그렇게 장난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공항 앞 도로까지 차가 막힌다.
보통 공항 출구 앞 도로는 차가 거의 없거나 잠깐 서있는게 전부인데, 이렇게 공항 앞까지 차가 밀리는 경우는 처음 본다.
"여기예요!"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를 알아본 지인이 손을 흔들었다.
자기 차를 직접 운전해서 왔는데, 역시나 길을 막혀서 늦었다고 했다.
습관적으로 조수석에 타려고 문을 열었는데, 말레이시아는 운전석 방향이 반대였다.
하마터면 내가 운전하고 갈 뻔했다.
"식사해야죠. 뭐 먹고 싶은 거 있나요?"
"말레이시아 전통 음식 먹어보고 싶어요."
"그래요, 제가 안내할게요."
그녀가 운전해서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ioi city mall 에 위치한 한 음식점이었다.
메뉴는 영어로 되어 있었지만, 뭐가 뭔지를 몰라서 그녀가 적당히 주문해주었다.
완탕튀김
완탕 wonton 을 튀겨서 스윗칠리소스를 찍어먹는 음식인데, 중국계 음식인 듯 했다.
피가 바삭한 만두를 먹는 느낌인데, 한 입에 쏙 들어가서 깔끔하게 먹기가 좋았다.
할랄 음식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잘 먹는 우리를 배려하기 위한 것인지 그녀는 먹지 않았다
치킨 사테
인도네시아와 말레시이아의 대표음식 중의 하나인 사테 Satay.
사테는 꼬치구이를 의미하는데, 쇠고기, 닭고기 등 육류부터 해산물, 계란까지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다.
살짝 카레향이 돌면서 짭조름한 사테 자체도 맛있지만, 솔직히 꼬치 자체 보다는 곁들여 먹는 땅콩소스가 너무 맛있었다,
커리 해산물 락사
락사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중 하나였는데, 굉장히 묘한 맛이었다.
커리향이 굉장히 진하게 나면서도 부드럽고 매콤시원한 맛이 났다.
굳이 말하자면 커리탕면 이라고 해야하나?
그렇게 매운 음식도 아니었는데, 향신료 때문인지 먹고 나니 몸에서 열이 나는 듯 화끈거리고 땀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쇼핑몰 내 환전소에 들러 한국돈을 말레이시아 링깃으로 환전까지 했다
외국에서 한화를 환전해보는 건 처음이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아니다보니 '정말 환전이 될까' 긴가민가했으나, 직원들은 놀란 기색도 없이 바로 환전을 해주었다.
쇼핑몰에서 나오니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어느새 많이 거세어져 있었다.
너무 비가 많이 내려서 아무리 와이퍼를 작동시켜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적당한 곳에 차를 잠시 세워두고 비가 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내일도 비가 이렇게 내리면 어떡하지
일기예보를 보니 여행기간 내내 비 소식만 있던데, 걱정이 앞섰다.
이러다가 호텔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여행을 망치는 게 아니겠지.
가까스로 예약해둔 숙소에 도착했다.
"데려다주셔서 고마워요. 이건 선물이에요."
그녀에게 한국에서 준비해온 딸기초콜릿을 선물로 주었다.
동남아 사람들은 한국 딸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다.
원래는 생딸기를 가져가고 싶었지만 세관에 걸릴 거 같아 대신 딸기 초콜릿을 골랐다.
일부러 'korean strawberry' 라고 영어로 쓰여진 제품으로.
"정말 고마워요. 내일 시간되면 또 만나요. 연락 기다릴게요."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묵어보는 5성급 호텔이다.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유니폼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저희는 보증금이 있어요. 3박이시니 총 300링깃이에요. 카드도 가능해요."
숙소에서 보증금을 받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300링깃이면 9만원이나 되는 돈인데, 이후에 다른 일정이 없는 우리에게는 마지막날에 아무리 펑펑 쓴다고 해도 다 쓰지 못할 정도로 큰 돈이었다.
우리가 당황해하는 것을 눈치챈 리셉션직원은 200링깃도 가능하다고 했고, 그냥 200링깃만 보증금으로내기로 했다.
쇼핑몰에서 미리 환전을 해온 것이 다행이었다.
확실히 오성급 호텔이 좋긴 좋구나!
매일 좁은 자취방에서 아등바등 지내다가 단 며칠만이라도 넓고 탁 트인 공간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침대도 넓고 푹신했다.
이래서 돈을 벌어야하는구나 싶었다.
커튼을 열면 쿠알라룸푸르의 야경이 펼쳐졌다.
마천루들이 늘어선 화려한 도시 풍경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객실 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딱 문을 나서 복도로 나가면 내가 그토록 바랬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도 볼 수 있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일정이 짧아서 게으름을 피울 여유가 없었다.
짐만 두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더블트리 바이 힐튼 호텔은 호텔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카페, 드러그스토어, 슈퍼마켓 등이 건물 내에 입점해있다.
지하에 슈퍼마켓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기 때문에 우선 슈퍼마켓부터 들려보고 싶었다.
해외 여행을 할 때 슈퍼마켓은 꼭 들리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소비하는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비슷하기도 하고, 가격을 흥정해야하는 부담감도 없다.
어차피 이날 쇼핑할 할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제품이 있는지, 가격대는 어느 정도인지 대강 둘러보았다.
호텔과 같은 건물에 있는 슈퍼마켓이니만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물건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국 제품들이 상당히 많았다.
한국에서 익숙하게 보던 제품들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것들도 있어서 신기했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딸기였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동남아 사람들에게 한국 딸기가 인기가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크기가 크고, 당도가 높다'고 현지에서 상당히 고급과일로 여겨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까.
말레이시아에서도 당당하게 한글로 '한국 딸기'라고 쓰여있는 걸 보니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가격은 다른 과일에 비해서 월등하게 비싼데, 딸기 크기는 잼용 딸기보다는 조금 더 큰 수준이었다.
동남아 사람들이 왜 한국에 오면 그렇게 딸기를 많이 사먹는지 현지에 와서 직접 보니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해외 여행 > 2016 쿠알라룸푸르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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