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여행/2012 투르크멘&아제리

[투르크메니스탄] 10. 7/4 투르크멘바쉬

by 히티틀러 2012. 8. 8.
728x90
반응형




잠이 깨서 창밖을 보니 바다가 보였어요.


'투르크멘바쉬에 다 왔구나.'


어제 같이 기차를 탔던 사람들은 중간에 내린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어요.

투르크멘바쉬는 카스피해에 위치한 항구도시.

투르크메니스탄에 온 이후 봤던 것은 온통 사막 뿐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바다는 너무 이국적이고 낯설게 느껴졌어요.







많은 트럭과 화물컨테이너, 기중기 등의 시설들이 우리가 투르크멘바쉬 항구를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어요.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가야할 곳이예요.

얼핏 아제르바이잔 배를 본 것 같기도 했어요.

오늘은 투르크메니스탄 여행 4일째.

늦어도 내일을 배를 타고 이곳을 빠져나가야해요.

제발 우리가 본 것이 아제르바이잔 배이기를 바랬어요.






기차는 연착도 안 하고 아침 7시 반 무렵에 투르크멘바쉬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아슈하바트에서부터 타고온 기차.



투르크멘바쉬 기차역.




기차역에서 나와 얼핏 본 투르크멘바쉬의 풍경은 아름다웠어요.

바다와 높은 산을 둘 다 볼 수 있으니까요.

아마 투르크메니스탄이 관광국가로 발전했더라면 투르크멘바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휴양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기차역 바로 앞에 있던 동상.


투르크멘바쉬는 그닥 볼 게 없는 동네인데다가 아제르바이잔 가는  배가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는게 급선무였기 때문에 우리는는 바로 선착장로 가기로 했어요.

론니플래닛 지도에서 보면 기차역에서 아제르바이잔 가는 배를 타는 페리 선착장까지는 1.5km라고 나와있었어요.

그 정도면 택시비로 2-3마나트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택시 기사들은 모두 5마나트 이상을 불렀어요.


'이 사람들이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나.'


짐이 있으니 왠만하면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짜증이 나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어요.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오고 계셨어요. 


"저기요, 혹시 아제르바이잔 가는 배 타는 선착장이 어딘가요?"

"선착장? 이 길 따라서 쭉 가면 돼."

"걸어서 얼마나 걸릴까요? 많이 먼가요?"

"조금 멀어. 걸어서 가기는 좀 힘들텐데.. 아마 20-30분쯤? 택시 타고 가."

"택시비는 얼마 정도인가요?"

"두 사람이니까 5마나트 정도는 나올 거야."

 

아까 택시기사들이 불렀던 가격이 바가지가 아니라 정가였어요.

우리는 그냥 얌전히 5마나트를 주고 택시를 타고 갔어요.

선착장 자체는 그닥 멀지 않았지만 도로를 따라가면 꽤 먼거리를 돌아가야했어요.







택시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항구 입구까지만 데려다주었어요.

선착장까지는 좀 걸어야하지만, 자동차는 허가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어요,

검문소에서 나온 경찰은 우리의 여권을 가져가서 노트에 기록하고는 다시 돌려주었어요.


매표소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어요.

잠시 있으니 직원인 듯한 아주머니가 나왔어요.


"오늘 아제르바이잔 가는 배 있나요?"

"여객선 있어요."


살았다!!!!!!!!


투르크멘바쉬에서 바쿠 가는 배는 정기적으로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여객선이 아닌 화물선이라도 사정사정해서 타고 아제르바이잔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어요.

화물선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나마도 없어서 고생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우리가 투르크멘바쉬에 도착하는 날에 바로 여객선이 있다는 건 매우 운이 좋은 경우였어요.

5일짜리 경유비자 날짜를 꽉 채우겠다고 아슈하바트에서 하루 더 머물렀다가는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표는 어떻게 사나요?"

"아직 안 팔아요. 여기 종이에 일단 이름부터 적어요."


종이에 이름을 적자 직원은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는 사무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어요.

대합실에는 이미 몇몇의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한 가족은 아예 그 곳에서 밤을 지샌 것 같았어요.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다리는 것 뿐.

배가 몇 시에 가는 건지, 표는 언제부터 파는지, 승선은 언제부터 할 수 있는건지, 우리는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사실 우리만 모르는 게 아니라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다 몰랐어요.

그나마 확실한 것은 아제르바이잔 가는 배가 뜨기는 뜬다는 것 뿐이었어요.


할 것은 없고, 대합실에는 그 흔한 텔레비전조차 없었어요.

몇 시간이 지나도록 사무실에서는 감감무소식.


'이럴 줄 알았으면 투르크멘바쉬 시내에서 뭐라도 먹고 오는건데.'


전날 아슈하바트 기차역에서 라바쉬 하나 먹고, 기차에게 같은 칸 사람들에게 과자 몇 조각 얻어먹은 이후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요.

근처에는 가게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수중에 투르크메니스탄 돈이라고는 딱 5마나트 뿐이었어요.

투르크멘바쉬 시내에 있었으면 5달러만 환전해서 라바쉬나 샌드위치 같은 걸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음료랑 간식 몇 종류  사올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암담.

현지인들이 왜 그렇게 바리바리 먹을거리를 싸오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두어 시간쯤 지났을 때 드디어 매표소에서 표를 판매한다고 했어요.

친구를 불러 부리나케 달려갔어요.

직원은 종이에 이름이 적혀있는지와 여권을 확인한 뒤 조그만 종이조각에 이름과 날짜를 써서 주었어요.

그게 끝. 너무나 싱거웠어요.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물이나 음료수를 사오고 있었어요.

밥이야 좀 배고프더라도 안 먹고 버티면 된다지만, 적어도 물은 한 통 있어야할 거 같아서 옆사람에게 물어봤어요.


"여기 근처에 가게 있어요? 물 좀 사려고요."

"가게는 없고, 저기 2층에 보면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물도 팔아요."


2층에 올라가보니 식당 같아보이긴 했지만, 손님은 없고 떡대좋은 아줌마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물만 살 수 있냐고 있냐고 물어보자 무뚝뚝하게 한 통을 건네줬어요. 

가격은 1마나트.

과자라도 있으면 사고 싶었지만, 음료만 팔고 있었어요.



계단에서 졸고있는 고양이.

난 니가 제일 부럽다.


물을 사오고 나니 투르크메니스탄돈은 4마나트가 남았어요.

어차피 이제 쓸 일도 없고 여기서 다 털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카페에 갔어요.

콜라를 한 통 사려고 하니 가격이 5마나트.


"4마나트로 살 수 있는 것 있나요?"

"없어."


저는 또 물 두 통을 샀어요.

4.5리터나 되긴 하지만, 물을 놔두면 마시게 되겠죠.

배가 고플 때는 물을 마시면 되요.

남은 2마나트는 친구에게 기념으로 가지라고 주었어요.


또 한참을 멍하니 기다리다보니 경찰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여권을 걷어갔어요.

그리고 나서는 한명씩 불러서 안으로 들여보냈어요.

대합실 바로 옆은 바로 입출국관리소였어요.

우리는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비교적 빨리 들여보내줬어요.


국경심사를 까다롭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했는데, 심사는 기다림에 비해 너무 싱겁게 끝났어요.

경찰은 비자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았는지 여부만 확인한 뒤, 짐검사는 커녕 엑스레이 한 번 돌려보지 않고 출국 도장을 찍어주었어요.


이제 아제르바이잔 가는구나.

투르크메니스탄아, 안녕!!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