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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2012 투르크멘&아제리

[투르크메니스탄] 11. 7/4 카스피해

by 히티틀러 201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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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는 아제르바이잔 배가 두 대나 들어와 있었어요.

하나는 여객선이고, 하나는 화물선이었어요.

어디에 타야하는지를 몰라 두리번거리자 군인이 배입구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어요.


선원인 듯한 아저씨는 우리에게 여권과 배삯을 달라고 했어요.

배삯은 무려1사람당 90달러.

1인실을 주는 것도 아닌데 아슈하바트 5성급 그랜드 투르크멘호텔보다 비쌌어요.

선원 아저씨는 옆에서 20-30달러를 더 내면 좋은 방에서 잘 수 있다고 옆에서 열심히 부추겼지만, 이미 배삯만으로도 예상했던 금액을 훨씬 초과한 상태였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어요.

비상계단 같은 계단을 꼬불꼬불 몇 층을 기어올라가서 직원은 우리를 어느 선실로 안내했어요.

방은 4인실이었어요.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고요. 세면대는 방에 있어요. 이 방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여기서 지낼게요."


직원은 곧 시트를 가져다주었어요.



방은 3등 선실인 것 같았어요.

침대가 좀 지저분하기는 했지만 그나마 깨끗한 침대로 골랐어요.





시간은 이제 12시 반.

할 것도 없고 배가 금방 출발할리는 없으니 친구와 배구경이나 하기로 했어요.









날씨는 화창했고, 공기는 소금기를 머금고 있는지 찐득거리고 습했어요.

바닷가에 가면 흔히 나는 짠내는 별로 나지가 않았어요.

저는 이런 큰 배를 탄 적이 처음이라서 마냥 신기했어요.




투르크멘 바쉬 항구가 멀리서 보였어요.




배 옆으로 바로 보이는 철도.



우리가 탄 배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만든 배네요.





한참 사진을 찍고 돌아와도 시간은 고작 30분 남짓 지나있었어요.

샤워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샤워실과 화장실을 확인해봤는데, 낡고 오래된 배의 3등칸 공용이라서 그런지 시설은 어쩔 수 없이 써야하는 수준이었어요.

화장실은 변기 뚜껑을 모조리 떼어버린 뒤 아래 부분을 시멘트로 메꿔버리고 발판을 만들어놔서 '여자는 이거 어떻게 써야지? 발판 밟으면 안 무너지려나?' 를 한참 고민했고, 샤워실은 시커먼 기름 찌꺼끼 같은 게 바닥에 잔뜩 끼어있는 데다가 가장 중요한 건 문이 안 잠겼어요.

옆 선실은 배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선원들이 쓰고 있어서 샤워 중에 문이라도 열면 큰일이라서 사람들이 별로 안 쓸 시간에 빨리 샤워를 하고 나왔어요.

그 사이에도 혹시라도 누군가 문을 열까봐 가슴을 졸이며 씻는 둥 마는 둥하고 후닥 나왔어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노트에 여행기록을 했다가, 침대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렸어요.

친구는 피곤하다며 낮잠을 잤어요.

배는 한참을 정박해 있다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출발했어요.







카스피해는 내해라서 그런지 파도가 없이 잔잔했어요.
처음 배를 타는 저도 별로 흔들림을 느끼지 않을 정도였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나는 길은 뭔가 허무하고 아쉬웠어요.
비자 받기가 극악으로 힘들어서 그렇지 나라 자체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웠어요.
사람들도 친절하고, 물가도 저렴하고, 의사소통에 큰 지장도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터키어를 조금 아는데, 투르크멘 사람들은 터키어를 잘 알아듣고, 구사했어요.
설령 투르크멘어로 이야기하더라도 대강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도는 알아들을 수가 있었어요.
아슈하바트도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지옥의 불구덩이'라든지 '메르브'라든지 유명한 곳들도 가보고 싶었지만, 비자 때문에 
도망치듯 투르크메니스탄을 빠져나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다음에 또 투르크메니스탄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래야겠죠.




배 안에는 매점이 하나 있었어요.
계속 문이 잠겨있었는데, 배가 출발하니 열려있는 것을 보고는 혹시 뭐라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보았어요.
안에 있는 것은 온통 음료수.
접시와 포크가 있는 것을 보니 요리도 있는 것 같기는 했으나 그 외의 조리도구가 아무 것도 없고 요리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어요.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그나마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홍차를 한 주전자 시켰어요.


열량이라도 높이자는 생각에 홍차 한 잔에 각설탕을 3개씩 넣어가면서 마셨어요.

확실히 당분이 들어가니 허기가 많이 사라졌어요.

차값은 1마나트. 

마나트가 없어 달러로 낼 수 있냐고 묻자 2달러라고 했어요.

5달러를 주니 1달러와 1마나트로 거슬러 주었어요.


매점 아저씨는 외국인인 우리가 신기했는지 우리에 대해서 이것저것 자꾸 물어보았어요.

우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내는데 2주 정도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할 계획이고, 어디를 여행할지는 아직 못 정했다고 하자  옆방의 선원들을 불렀어요.

선원들이 다들 자기 고향이 좋다며 오라고 난리였어요.

아제르바이잔에서 출발한 배라서 선원들이 다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었거든요.

안 그래도 서로 심심하던 차에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밤 9시가 되자 매점문을 닫아야한다고 해서 선실로 돌아갔어요.




밤 9시인데도 바라다서 그런지 그닥 어두워지지가 않았어요.
습기 많은 바닷바람 때문에 몸은 계속 눅눅하고 끈적거렸어요.
손과 얼굴을 열심히 닦아도 별 소용이 없어서 포기하고 창밖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다가 일찍 잠을 청했어요.
할일이 없으니 잠만 잘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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