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여행/2019 말레이시아[完]

여자 혼자 말레이시아 여행 - 21. 1/21 페낭 타이푸삼 축제 행렬 (1)

by 히티틀러 2019. 8. 30.
728x90
반응형



※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바랍니다 ※



드디어 D-day 다.

타이푸삼 축제를 보러 가는 날.



아침부터 힌두교 성가를 들으면서 없는 종교심을 박박 긁어모았다.



신을 볼 수 있을까?



사람은 마음이 힘들수록 종교에 의존한다고 한다.

이 여행에서 불교 사원, 도교 사원, 모스크, 힌두교 사원, 성당, 교회까지 닥치고 돌아다닌 이유도 신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힘들어서 깽판치고 도망치듯 떠나온 여행이었으니까.

하지만 보지 못해도 좋았다.

신은 나처럼 야매로 몸편히 온 사람에게 쉽게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타이푸삼 축제는 참회와 속죄를 하면서 고행을 하는 축제다.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딘 이들만이 신을 만나는 게 형평에 맞을 것이다.

하지만 먼 발치에서만이라도 봐도 만족할 거 같았다.



호텔 리셉션 직원에게 물어보니 제티 터미널 근처에는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들이 있을 거라고 했다.

막상 가보니 영업하는 곳이 없다.

일정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니, 아침은 먹어야할 거 같아서 빨리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런 데가 있었구나?



호텔에서 바로 한 블록 거리에 음식파는 노점이 있었다.

이전엔 못 본 거 봐서 아침 장사만 하나보다.

나름 맛집인지 3-4개의 테이블에 사람들이 다 앉아있어서 아주머니 한 분과 합석했다.

진짜 현지인만 오는 곳인지 음식 만드시는 할아버지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셨다.

서빙 겸 보조를 하고 계신 할머니가 영어를 좀 하셔서 간신히 주문했다.



가게에서 파는 음식은 완탄면와 볶음면, 단 2가지뿐.

완탄면 中 짜리 하나를 주문했는데, 예상했던 음식과 전혀 달랐다.

한국에서 먹어본 완탕면은 에그누들과 작은 완탕 몇 개 들어있는 국물 많은 국수였는데, 내가 받은 음식은 물을 덜 버린 짜파게티 같은 비주얼이었다.

소스는 간장 소스 베이스인 듯 했지만 그렇게 짜진 않아 신기했다.

같이 나온 칠리 소스를 섞어먹어도 된다길래 섞었는데, 넣어도 매운 맛도 안 나서 다 넣어먹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한국에서 먹어본 완탕면은 홍콩 스타일이고, 이게 페낭 스타일의 완탕면이라고 한다.



물만두도 1개가 있기에 뭔가 해서 시켜봤더니 국물에 만두 하나가 달랑 들어가있다.

처음부터 만두국처럼 만든 건 아니고, 원래 곁들여나오는 국물에 만두 하나 추가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음식을 파는 데에는 옆에 음료를 파는 곳이 딸려있기 마련이다.

아침이라 잠도 깰 겸 화이트 커피를 한 잔 주문해서 마셨다.

테이블 하나를 혼자 차지하고 있는데, 30대 후반 정도 되어보이는 중국계 남자와 합석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익숙한 일이다.



"여기 맛집이에요. 나도 오래 전부터 매일 여기 와요."



그는 에어아시아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에어아시아 항공사를 이용해서 왔다고 하니까 비용이 얼마 정도였는지, 한국에서 에어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등등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한국과 말레이시아 양국에서 많이 이용하는데 아직 한국에는 지사가 없다면서 한국에도 빨리 에어아시아가 생기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럼 오늘은 뭐 할 거예요?"

"타이푸삼 축제 보러 가려구요."

"지금요? 지금은 늦었어요."



아직 10시도 안 되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타이푸삼 축제는 오전 6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메인 행사는 이미 끝났을 거란다.

그래도 사원을 찾는 순례자들은 하루종일 있으니까 볼거리가 아예 없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버스를 타고 가려면 'Hospital Besar Pinang' 에서 내리면 될 거라고 하면서 사람이 많으니 가방과 소지품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와 헤어지고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제티 버스 터미널에 갔더니 인도 사람들이 긴 줄을 서있다.




타이푸삼 셔틀버스!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인도계가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데다가 타이푸삼 기간에는 다른 나라에서도 축제를 참여하기 위해 온다고 한다.

쿠알라룸푸르는 타이푸삼 축제를 하는 바투 동굴까지 지하철이 운영하지만 페낭은 그렇지 않으니까 아예 축제 전용 셔틀버스를 운영하는가보다.

좀 기다려야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떤 버스를 타야하나 고민없이 직통으로 갈 수 있는 게 어디야.



셔틀버스라서 무료인 줄 알았는데, 버스비를 내야했다.

요금은 2링깃 (약 570원).

버스에는 사람이 더 못 탈 정도로 꽉꽉 채워넣고, 나도 버스 한쪽에서 간신히 손잡이를 잡고 찌그러져있었다.

버스 입구에는 경찰이 서있어서 인원 통제를 하는데, 꽤 센스가 있었다.

앞 줄에 서양인 노부부가 있었는데, 조금 더 기다렸다가 다음 버스 오면 앉아서 가시라면서 살짝 열외시켜주었다.



외간 남자 정수리는 보고 싶지 않아



아시아권 여행을 다니다보면 느끼는 사실은 '한국인이 정말 체격이 좋다' 라는 거다.

나는 그냥 평균적인 키를 가지고 있는데, 여자 뿐만 아닌 외간 성인남자들의 정수리가 내려다보인다.

인도 사람들이 가득찬 버스에서는 정체모를 냄새가 차고 올라오는데, 정수리까지 보이니 옹기종기 보이니 오감이 괴로웠다.



버스 한쪽에서 손잡이 하나에 의존하여 아슬아슬하게 낑겨있다가 간신히 버스에서 내렸다.

20분 정도 걸린 거 같은데, 3개월은 늙은 거 같다.



하지만 안내판이 딱히 필요는 없었다.

사람들을 따라가면 되니까.

아침에 합석했던 남자는 늦었다고 해서 좀 한산할 줄 알았는데, 교통통제한 4차선 차도에 인도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맨발로 걷는 사람도 꽤 많았다.

발이 아픈 건 둘째치더라도 작은 돌이나 쓰레기 같은 데에 발을 다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아스팔트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그대로 흡수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등에서 사원을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을 때, 몇 개 안 되는 계단도 뜨거워서 힘들었는데...

저 사람들은 발바닥에 피부가 몇 겹 더 있는 건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삭발한 사람도 많았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머리카락을 신에게 공물로 바치는 의미로 삭발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머리에는 누런 반죽 같은 걸 발라놓았다.



삼거리가 나오고, 사람들이 양방향으로 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양방향으로 다니는데, 사람들이 좀 더 많이 가는 거 같은 왼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탑 같기도 하고, 간판 같기도 한 게 들썩거리면서 전진한다.



차량이나 하다못해 수레 같은 데 싣고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거였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양 어깨에 살이 패이지 않도록 두툼한 천을 받쳐놓았고, 허리에도 무게를 분산하기 위한 지지대를 받쳐놓았다.



크기가 크고 무게가 상당해서 그냥 짊어지고 있는 것만도 쉽지 않을텐데, 중간중간 멈춰서 이렇게 춤까지 춘다.

앰프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그 큰 걸 빙빙 돌린다.

바람잡이 같은 사람이 있어서 옆에서 북치고 춤을 추면서 흥을 돋구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같이 어울려서 춤을 추기도 했다.

무게중심 잘못 잡으면 휘청하고 넘어질 거 같은데, 어찌어찌 쓰러지지 않고 휘휙 잘도 돌린다.





길 양쪽으로는 천막이나 가건물들이 늘어서있다.

힌두교 종교재단 같은 곳은 기본이고, 이름만 들으면 아는 세계적인 기업들이나 정치인, 지역유지 같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도 후원을 해서 만들어놓은 곳이다.

신상 앞에는 꽃이나 우유, 기름 같은 공물을 바치기도 하고, 기도를 드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짜로 밥도 주는데, 한두 군데가 아니라 꽤 여러 곳이다.

식판에 음식을 담아가서 먹게 한 곳도 있고, 아에 도시락 형태로 나눠주는 곳도 있었다.

길거리에 가스시설을 설치해놓고, 큰 솥에 밥과 커리를 만드는 것도 진풍경이었다.



음료수나 물을 나눠주는 곳도 많다.

뭔지 모르고 사람들이 컵 하나씩 받아가기에 나도 따라가서 받았는데, 달고 시원한 레몬차였다.



더운 날씨와 뜨거운 태양에 사람들이 지치거나 열사병에 걸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중간중간 휴게시설도 마련해놓았다.







화려한 색채의 향연.

사방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앰프 소리, 여기저기서 춤추는 사람들.

참회와 속죄를 하면서 고행을 한다고 들어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떠들석하니 춤추고 노는 축제에 가까워서 얼떨떨했다.



챨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라고 했던가.

이 흥겨운 분위기에서 저 사람들 하나하나는 고행이다.

발목에 묶은 방울은 춤출 때 흥을 돋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차꼬를 연상시켰다.



꼬챙이를 물고 있는 게 아니다.

얼굴을 관통한 거다.

그래서 그는 사원에 도착해서 이 꼬챙이를 뺄 때까지 입을 크게 벌리지도 못하고, 물 한 모금 마실 수가 없다.



어깨에 올려진 무거운 등짐 때문에 쉬고 싶어도 편히 쉴 수가 없다.

누가 의자를 가져다줘서 잠시 엉덩이를 걸치는 게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휴식이었다.



놀라움과 신기함의 연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끝이 보였다.

원래 이 길을 따라가면 워터폴 힐 템플 Waterfall Hill Temple 이 나와야하는데?



사람따라 가다가 사원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
아침에 만난 남자가 페낭 국립병원을 가라는 이야기가 맞는 말이었다.
코스상 페낭 국립병원 쪽에서 내려서 큰길을 따라 가면 축제 행렬을 다 보고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원을 가기 위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했다.




(재미있게 보셨으면 아래의 를 눌러주세요 ^_^)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