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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2011 카프카즈&터키[完]

[아르메니아] 22. 7/15 귬리 (1)

by 히티틀러 201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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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니사즈 시장을 보고 나서 아침에 친구와 이야기했던 대로 귬리에 가기로 했어요.

호스텔 직원과 론니플래닛에 따르면 예레반에서 귬리 가는 미니버스는 '조라바르 안드로닉' 지하철역 근처에서 출발한다고 했어요.


"귬리 가는 버스? 기차역으로 바뀌었어!"


아무리 봐도 버스 타는 곳이 보이지 않아 주변 상인들에게 손질발짓으로 물어보니, 3일 전에 기차역으로 옮겼다고 했어요.

베르니사즈 시장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라서 비용도 아낄 겸 걸어왔는데, 결국 다시 지하철을 타야했어요. 

덥기도 하고 짜증도 나서, 근처 가게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기로 했어요.



"페트병 안에 레몬 조각이 들어있어!"


이 음료수의 이름은 '레몬젤라'.

레몬맛 음료수나 레모네이드는 전세계 어디든 있을 수가 있지만, 진짜 레몬조각이 든 음료수를 처음 보았어요

페트병 입구보다 레몬조각이 훨씬 큰 데 어떻게 안에 넣었는지 너무 신기했어요.

맛도 괜찮았어요.

보통 음료수를 마시면, 마실 당시에는 시원하지만 안에 들어있는 당분 때문에 나중에는 오히려 더 목이 마르고 물을 마시고 싶어지곤해요.

하지만 이 음료수는 그렇게 달지도 않고 뒷맛이 깔끔해서 나중에 목이 마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르메니아 여행하는 내내 종종 눈에 띄면 사마시곤 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도착한 예레반 지하철 역.

역에 도착해서 시장 방면으로 길게 난 출구를 통해 나가면 귬리행 미니버스를 탈 수 있어요.

요금은 1500디람에 두 시간 정도예요.


아르메니아 여행은 정말 체력이 필수예요.

길도 안 좋고, 차 상태 또한 최악이거든요.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카프카스 3개국 중에서 아르메니아가 가장 상태가 안 좋았어요.

한여름날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차에는 십 여명이 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데다가, 온몸에 힘을 주고 각잡고 앉아 있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차는 덜컹거렸어요.

잠깐 긴장을 풀었더니 갑자기 차가 덜컹거려서 앞자리에 바로 머리를 박을 정도였어요.

눈 한 번 못 붙이고 2시간 내내 긴장하면서 차가 흔들리는 리듬에 몸을 맞춰야하다보니 금방 피곤해졌어요.

더군다나 차는 언덕만 나오면 발발거리면서 속도를 못 내서 아예 퍼져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한참을 가다가 한 휴게소 겸 주유소에 정차를 했어요.

기사 아저씨는 차를 세우자마자 보닛을 열고 엔진을 식혔어요.



원래 보닛 속이 이렇게 텅텅 비었나?


친구도, 저도 놀랐어요.

정말 이제까지 온 게 용하다 싶었어요.

휴게소에는 간단한 매점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가에서 간단히 손과 얼굴만 씻고 곧 다시 출발했어요.













슬슬 귬리가 가까워오니 날씨가 심상치가 않았어요.

날이 화창하지 않고 구름이 끼더라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도착했을 때는 그냥 맞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이슬비가 내려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여기 뭐 볼 게 있다는 거지..?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그저 휑하고 황량한 느낌 뿐이었어요.

안그래도 비가 한 차례 와서 날씨도 추적추적한데다 보이는 건물들은 흙빛이라도 더 그렇게 느껴졌어요.



Surp Amenaprkich 교회.

19세기 말에 지어진 교회예요.



Surp Amenaprkich 교회.

19세기 말에 지어진 교회예요.


황량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단지 날씨 때문이 아니었구나!


1988년 귬리에는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어요.

그 당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을 뿐만 아니라 건물들도 상당히 많이 부서졌는데, 이 교회 또한 그 당시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해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지진 복구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어요.

교회 지붕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건물은 아직도 복원 중인 상태였어요.

즉, 귬리는 20년이 넘도록 지진의 피해 속에서 살고 있는 도시이니 당연히 황량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어요



교회 앞에 있는 이 동상은 지진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예요.



귬리의 중심가인 Amenaprikich Hraparak 에 나오니 그나마 조금 생기가 돌고,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광장에 위치하고 있던 Vardan Mamikonyani 의 동상.

5세기 초에 살았던 아르메니아 장군이나 성자라고 해요.



Surp Nishan 교회.

안에 들어가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문이 잠겨 있었어요.












도착한지 1시간도 안 되어서 귬리 관광을 대강 끝마쳤어요.

대체 호스텔 직원이 왜 여기를 추천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금 잠잠해졌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어요.

빗발은 갈수록 거세어졌고 금방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는 고작 하루 지낼 생각이었던 데다가 예레반에서는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우산도 챙기지 않은 상태였어요.


빨리 숙소를 찾아야겟다는 생각에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론니플래닛 지도를 보았어요.

지도를 보면서 B&B를 찾아가려는데, 예레반처럼 길마다 표지판이 붙어있는 것도 아닌 데다 중심가를 벗어나자마자 마치 시골마을에 온 듯 도저히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가질 않았어요.

마침 지나가던 어떤 아이 두 명이 우리를 보고 외국인이면서 키득거리길래 친구가 불러서 길을 물어봤어요.

너무 힐끗거리면서 키득거리는 것이 기분이 좀 나쁘긴 했지만 우리에게 악감정이 있다거나 나쁜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아이들도 길을 알려줬어요.

하지만 결국 가려던 B&B는 찾을 수가 없었고, 한참을 헤매다가 Vanatur 라는 호텔을 발견했어요.

5성짜리 호텔이라 숙박비가 상당히 비쌌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비는 계속 내리고, 다른 숙소는 보이지도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하루 묵기로 했어요.

방에 들어오니 별 다섯개 짜리답게 시설은 꽤 고급스러운 편이었어요.



제일 좋았던 건 샤워부스가 있었던 것이었어요.

배수구를 막을 수 있는 마개가 있어서 아쉽게마나 욕조 대용으로도 쓸 수 있었어요.

호텔에 체크인 하기가 무섭게 비는 더 거세졌고, 강풍까지 몰아쳐서 도저히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비에 젖은 옷을 말리고, 뜨거운 물을 받아 반신욕이나 하면서 귬리에서의 시간을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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