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 도착하자 표를 사러 올라갔어요.
1-2층은 쇼핑센터인지 상점들이 가득했고, 매표소는 3층에 있었어요.
"바쿠 행 기차 있나요?"
"없어요."
잉?
분명히 트빌리시-바쿠행 기차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가이드북에도 그렇게 적혀있었어요.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영어는 통하지 않았어요.
"왓 타임 포에즈드 바쿠? (몇 시에 기차 바쿠)?"
엉터리 영어와 러시아어 단어를 섞어서 물어보았어요.
매표소 아주머니가 뭐라뭐라 말을 한무더기 했으나,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어요.
"악! 악! 악!"
아주머니는 복장이 터지는지 소리를 질러댔어요.
할 수 없이 종이와 펜을 내밀자 큰소리로 뭐라뭐라 하시며 종이에 쓰셨어요.
07.07.2011 16:00
즉, 트빌리시에서 바쿠가는 기차는 오후 4시 한 대 뿐이라는 이야기.
그루지아는 터키와 시차 1시간.
비행시간 2시간에 1시간 가량 연착까지 되는 통에 기차역에 도착한 시간은 다섯시를 넘어 여섯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어요.
여행 일정이 첫날부터 제대로 꼬여버렸어요.
마음 같아서는 트빌리시에서 숙소를 찾아 하루 자고 다음날 떠나고 싶었지만, 아제르바이잔 초청장을 받기 위해 다음날부터 호텔에 숙박비까지 다 지불해서 예약을 해놓은 상황.
트빌리시에는 버스 터미널이 3개가 있는데 그 중 오르타찰라 버스 터미널에서 국제선 버스가 다녀요.
육로로 이동하면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까다롭게 잡고 버스를 잘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기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오는데, 같은 층에 작은 서점이 보였어요.
젊은 여직원은 외국인이 들어오니 긴장한 눈치였으나,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알았어요.
그 서점에서 영어-그루지아어,그루지아어-영어 소사전을 구입했어요.
발칸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사실은 영어-현지어, 현지어-영어 사전을 구입하면 참 유용하다는 거였어요.
저와 M씨가 어학 전공이라 다양한 언어에 관심이 많기도 하지만, 영어가 지지리도 안 통하는 지역에서 사전을 구입하면 단어를 찾아가면서라도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할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방문한 국가마다 반드시 서점에 들려서 사전을 구입해 들고 다녔어요.
1층에 내려가서 문 앞에 지키고 있던 경비에게 오르타찰라 버스터미널을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나 대답은 역시 "야 니 즈나유 앙글리스끼 이직. 즈나이쉬 빠 루스끼? (영어 몰라요. 러시아어 알아요?)"
영어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영어는 세계어다. 영어만 잘해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살 수 있다."
이거 개구라예요.
영어가 지지리도 안 통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깔리고 깔렸어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하지만, 말하는 연습이 안 되서 두려워할 뿐이지 읽고 듣는 건 대부분 문제 없어요.
아마 학점으로 쳐도 B+는 충분히 받을 거예요.
그러나 제가 여행다닌 발칸, 카프카스 지역은 "How much is it?" 은 고사하고 "Hello!" "Thank you!" 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
다행히 지나가던 동글동글하게 생긴 그루지아 언니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기차역 앞에서 먀슈르뜨카(미니버스) 를 타고 가면 된다고 알려주고, 종이에 그루지아어로 '오르타찰라 버스터미널' 이라고 적어서 마슈르뜨카 기사에게 보여주라고 했어요.
누가 봐도 외국인인 사람들이 종이를 들고 다니며 '오르타찰라'를 외쳐대자 마슈르트까 기사들이 서로 앞다퉈가며 도와주었어요.
간신히 물어물어 오르타찰라행 마슈르뜨까를 찾아서 타려는데.. 문이 안 열리네?
알고 보니 그루지아 마슈르뜨카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는데 아니라 열쇠구멍을 눌러야 문이 열렸어요.
가면서 이런 것도 보고..
이런 것도 보았어요.
트빌리시는 정말 볼 것이 많은 도시라고 생각했어요.
오르타찰라에 도착하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람들은 터미널이 맞다고 하는데, 보이는 건 마치 입주 안 된 상가 같이 텅 빈 건물 하나.
택시기사들만 앞에서 바글바글거렸어요.
"어디 가요? 택시 타요!"
한 택시 기사가 달라붙었어요. 못 들은 척 무시했으나 바퀴벌레 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계속 달라붙었어요.
"바쿠에 가요."
"지금 버스 없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버스가 오전 11시에 있어머 그 때는 이미 끊긴 상황.
정보도 없고, 맞는지 아닌지 물어볼 사람도 없고, 시간은 7시가 다 되어가는데 버스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막막했어요.
택시기사는 예레반이 아름다우니 바쿠 대신 예레반에 가라면서 자기가 60라리에 예레반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 그 날 아제르바이잔으로 넘어가야했어요.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아제르바이잔에 못 넘어간다면 차라리 하루 호텔비를 날리는 셈 치고 트빌리시에 1박을 하는게 낫지, 아르메니아에 가는 건 최악의 선택.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한일 관계를 넘어선 철천지 원수 사이예요.
몇 십년동안 영토 분쟁으로 피터지게 전쟁해서 엄청난 사람이 죽고 다치고 몇 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어요.
현재는 국제 사회의 개입으로 간신히 휴전 중이지만, 여차하면 바로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어요.
특히 아제르바이잔 국경은 아르메니아 입출국 기록이 있으면 엄청 까칠하게 굴고, 운 안 좋으면 입국 거부당할 수도 있다고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럼 여기서 아제르바이잔 국경까지 택시로 간 다음에 국경 넘어서 바쿠 가는 버스를 잡아서 타요. "
해도 슬슬 져가는 마당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두 사람 합쳐 50라리 (약 3만 5천원)에 아제르바이잔 국경까지 가기로 했어요.
택시를 타고 가면서 본 풍경.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지평선이란 게 있었어요.
택시 기사 아저씨가 다행히 터키어를 조금 할 줄 알았어요.
간간히 터키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그루지아 음악을 들으며 걱정을 잊고 낭만에 젖기도 했어요.
1시간 남짓을 달려 아제르바이잔 국경에 도착했어요.
택시 기사 아저씨는 여행 잘하라는 안부 인사와 함께 다음에 트빌리시에 오면 예레반까지 자기 택시를 타라면서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주고 돌아갔어요.
이런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그루지아 국경 초소가 있었어요.
출국 심사대의 직원들은 낯선 나라에서 온 동양인들이 신기한 듯 했어요.
"Where are you from?"
영어를 할 줄 알았어요.
"남한이요."
"김정일 알아요?"
갑자기 직원이 김정일을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사실 외국 사람들에게 남한보다는 북한을 더 잘 알려져 있고,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한국인은 김정일예요.
최근에는 박지성이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하면서 좀 알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김정일의 위치는 막강해요.
그건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오사마 빈 라덴' 밖에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
"김정일 이즈 크레이지 가이."
직원들은 박지성이나 반기문 등 을 이야기하다가 즐거운 여행 하라며 보내주었어요.
국경을 넘자 작은 면세점이 있었는데, 술과 음료, 몇가지 간식 거리를 파는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었어요.
물 몇 통을 사자 여권에서 그루지아 입출국 도장을 확인한 후 계산해주었어요.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아의 국경 지대에는 꽤 큰 들개들이 많았어요.
몇 마리는 차에 치였는지 다리를 절룩거렸어요.
그루지아 국경에서 멀리 보이는 불빛을 따라 아제르바이잔 국경으로 걸어갔어요.
발칸 여행을 하면서 버스나 기차로 국경을 통과해 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 걸어서 넘어보기는 처음.
버스로 가는건 하도 익숙해져서 이제 그런가보다 하는데 걸어서 가자니 괜히 긴장이 되었어요.
아제르바이잔 국경은 그루지아처럼 작은 간이 초소가 아니라 제대로 된 건물이었어요.
그리고 걸어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많은지 "piyada keçen~~" 어쩌구 쓰여있는 걸어서 국경 넘는 사람들을 위한 입구가 따로 있었어요.
아제르바이잔 입국은 생각보다 별 거 없었어요.
그루지아처럼 사진을 찍은 후에 직원이 여권과 비자 날짜를 확인하고는 도장을 찍었어요.
"웰컴 투 아제르바이잔!"
그러나 국경 사무소를 나오자마자 그야말로 지옥이었어요.
가로등조차 제대로 없는 컴컴한 도로에, 택시 기사와 불법 환전상들이 우리에게 좀비떼처럼 달겨들었어요.
"어이, 브라트 (이봐, 형씨)!"
마구 러시아어로 말을 걸어오는데, 국경 경찰은 뇌물을 받는 건지 자기일이 아니라든 듯 묵인하고 있었어요.
아제르바이잔어는 터키어랑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거의 유사해요.
자기네 말을 안다는 사실을 들키면 더 미친 듯이 들러붙을까봐 아무 것도 못 알아듣는 척 했어요.
택시 기사들은 버스가 없으니 택시를 타야한다고 바쿠까지 한 사람당 50마나트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들은 척도 안 하자 가격은 마구 내려가서 두 사람에 50마나트까지 떨어졌어요.
일단 우리는 택시 기사와 불법 환전상들을 피해 국경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도로변에 버스가 한 대 서 있었어요.
일단 버스 쪽으로 가보니 행선지도 바쿠.
아제르바이잔은 그나마 언어를 좀 알아서 운전기사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어요.
알아낸 사실은 오늘 밤에 바쿠에 들어가는 버스는 없다는 것.
그 버스가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출발하는 첫 차인데, 자신들도 어차피 버스에서 자고 아침에 출발하니 버스비를 내면 같이 버스에서 잘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버스비는 한 사람당 10마나트 (약 15,000원).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어차피 바쿠에 가기는 글렀고, 밖에서 노숙하는 것보다는 버스에서 자는 게 훨씬 나았어요.
돈을 달러로 낼 수 있냐고 묻자 운전기사가 아까 그 불법 환전상을 불러왔어요.
50달러를 환전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국경이 시내 환전소보다 훨씬 환전율이 좋았어요.
바로 눈 앞에서 불법 환전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경찰은 신경도 안 썼어요.
가방을 짐 칸에 집어 넣고 버스에 탔는데, 이건 완전히 습식 사우나.
차라리 열대야에 세 평짜리 제 방에서 문 꼭 닫고 자는 게 훨씬 나을 지경이었어요.
너무 더워서 숨쉬기조차 힘든데, 창문은 통유리라서 열리지도 않았어요.
그렇다고 더위를 피해서 밖에 나오면 벌레가 버글버글했어요.
바지 속에 벌레가 들어간 건지 오른쪽 허벅지가 따끔거리면서 간지러운데, 하필 입은 것은 몸에 딱붙는 스판 바지.
생각 같아서는 바지를 벗고 확인하고 싶었지만, 남자들만 가득한 허허벌판에서 바지를 벗을 수도 없었어요.
더위와 벌레를 피해서 버스를 들락날락 거리다가 결국 버스에 누워서 안 오는 잠을 청했어요.
자정이 가까워오자 버스기사도 들어와서 그나마 바람이 들어왔던 버스 앞문을 닫고 의자에 누웠어요.
'내가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까'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이제까지 살아온 날들을 회고하면서 내일 아침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 여부를 걱정하다가 피곤에 지쳐서 기절하듯 잠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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