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부산2018.10.18 07:30
 


부산으로 떠나는 날 아침.

새벽 2시 넘어까지 블로그에 미리 글을 예악발행 해두느라 4시간 남짓 밖에 못 잤지만,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창 밖을 보았다.

벌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출근시간이라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 차를 얻어타고 간당간당하게 도착했다.



출발시간 5분 전, 버스가 도착했다.

짐칸에 캐리어를 싣고, 버스를 타려는데 뭔가 느낌이 쎄하다.



우산이 어디 갔지?



몇 분도 안 되는 잠깐 사이인데, 아침에 챙겨나왔던 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내 손은 2개 뿐인데, 짐은 기내용 캐리어와 숄더백, 그리고 우산까지 3개.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면서 잠시 번잡스러워 짐을 정리했는데, 우산이 젖어있어 가방에 넣지 못하고 잠시 바닥에 내려놨던 거 같다.

그러고는 짧은 거리니 후드를 뒤집어쓰고 달려오느라 우산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던 것.

버스는 곧 출발할 예정이고, 우산을 다시 가지러가기에는 빠듯했다.

부산은 큰 도시니 터미널에 우산 파는 곳 하나쯤은 있겠지, 하면서 버스에 올라탔다.

처음 시작부터 불안불안했다.

춘천에서 부산, 우리나라 거의 동북쪽 끝에서 동남쪽 끝까지 가는 버스라 누가 탈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탔다.

총 28석 중 70%는 채웠는데, 그 중 3명을 빼고는 전부 군인이다.

앞도 군복, 옆도 군복, 뒤도 군복이라 내가 시외버스를 타고 있는 건지, 군용버스를 타고 있는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중간에 안동휴게소에 한 번 정차하는데, 비가 별로 안 오길래 후딱 뛰어가서 3단 우산을 하나 사왔다.

그닥 튼튼해보이지는 않았지만, 일단 우산이 있다는 거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버스 안은 눅눅하고 싸늘했다.

몸이 으슬거려 기사님께 히터 좀 틀어주시면 안되냐고 부탁드렸더니 주변 군인들에게 춥냐면서 계속 물어본다.

10월초, 게다가 강원도에서 군생활하는 군인들 입는 군복에야 방한 기능이 다 있어야 정상 아닌가?

너무 무안할 정도로 면박을 줘서 괜찮다고 했지만, 도착할 때까지 잔뜩 웅크리고 오들오들 떨다가 왔다.



오후 1시 25분, 예정시간보다 5분 빨리 부산 동부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경주 즈음 지날 때에는 시야확보가 안 될 정도로 폭우가 내렸는데, 부산에 도착하니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았다.

기분 탓인지 남쪽이라서 그런건지 출발할 때보다 날씨도 조금 푹한 느낌이었다.


부산 동부버스터미널은 부산 지하철 1호선 노포역과 바로 이어진다.

숙소가 있는 해운대역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니 부산역에서 가는 것과 시간 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2번이나 환승하게 되어야해서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캐리어를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누가 봐서 '나 관광객이에요~' 하는 거 같아서 조금 민망스러웠다.



오후 2시 반쯤 숙소에 도착했다.

원래 정해진 체크인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감사하게도 바로 체크인할 수 있었다.

영화제 기간인데다 단체까지 몰려서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밥을 먹어야하나



예약해둔 영화 시작은 4시.

아침부터 먹은 거라곤 아몬드 브리즈(아몬드 밀크) 하나와 휴게소에서 산 과자 하나가 전부였지만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다음에 식사를 해도 괜찮지만, 저녁에 칵테일바를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간단하게라도 뭔가 먹어할 거 같았다.

배가 부른 채로 술을 마시면 제 맛이 안 나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체크인 전부터 카카오톡 단체톡방을 만들어서 찾아오는 방법이며 지도, 연락처, 근처 맛집정보까지 톡으로 보내주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2-3분 정도, 해운대구청 쪽에 '할매집'이라는 오래된 돼지국밥집이 있다기에 거기에서 먹기로 했다.

평소 나의 식습관으로 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음식이지만, 오늘의 유일한 끼니이기도 하고 음식이 빨리 나올 거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산까지 왔는데, 돼지국밥이든 밀면이든 그 지역 음식 하나는 먹어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돼지국밥


오후 3시의 애매한 시간이라 가게에 손님은 나 하나 뿐이었고, 주문하자마자 몇 분만에 바로 나왔다.

펄펄 끓는 국물을 후후 불어먹고 있으니 버스에서 오들거렸던 몸이 조금 녹는 기분은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머리 속에는 '빨리 먹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주문시 양을 조금만 달라고는 했지만 그것조차 내게는 많은 양인데, 먹을 수 있는 시간도 최대로 잡아도 15분 남짓이었다.

다 먹기는 애초부터 힘들고, 그 시간 안에 먹을만큼만 먹고 나왔다.



지하철 해운대역에서 장산역까지는 5분 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장산역 쪽은 이번이 초행이다.

장산에 대해 아는 거라곤 작년 여름을 달구었던 장산범 뿐.

NC백화점 해운대 장산 8층에 위치해있다는 사실만 알고, 안내대로 6번 출구로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라 몇 분간 두리번거렸다.

다른 사람이라도 따라가고 싶은데, 그 사람도 나 보면서 마찬가지로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방향을 찾고 최대한으로 내달려서 메가박스에 도착하니 3시 58분.

부산국제영화제는 일반 영화 상영과는 달리 광고가 붙지 않아 바로 영화가 시작한다.

입장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조명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본 영화는 단편 쇼케이스 2이다.

상영시간이 짧아 단독으로 상영하기 어려운 단편 영화들을 2-5편씩 묶어서 한 번에 상영하는 케이스다.

단편 영화는 한 편당 짧으면 10분대, 길어도 30분 내외이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굉장히 훅훅 지나간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전후나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다짜고짜 본편으로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영화 끝까지 이해 못하는 경우도 많고, 구성상 원하지 않는 영화를 관람해야는 건 단점이다. 

단편 쇼케이스2는 네팔 영화인 '슈퍼 동자승 Supermonk', 중국 영화 '연변소년 On the Border', 인도네시아 영화 '선물 A Gift',호주 영화 '이 모든 것들 All These Creature', 타지키스탄 영화 '비밀편지The Crying of Tanbur', 이렇게 다섯 편이 상영되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biff.kr/kor/html/program/prog_view.asp?idx=36993&c_idx=313&sp_idx=472&QueryStep=2


원래 관심작이기도 했고, 역시나 재미있게 본 영화는 네팔 영화인 '슈퍼 동자승' 이에요.

11살 동자승인 타쉬는 군인이 지키는 삼엄한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웅이 되기를 꿈꾸며 몰래 액션영화를 보러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날 군복을 입고 총을 든 또래 꼬마를 발견하게 되는데, 공산당 마오이스트 소년병이었다.

처음에는 몰래 숨겨줬지만, 정부군과 반란군들이 차례로 절에 들어닥치며 수사망이 좁혀오자, 결국 자기와 같은 동자승으로 위장시켜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야 네팔이 왕정을 지지하는 세력과 공산당 마오이스트 세력이 대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 영화들이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묘사하는 것처럼 이 영화도 실질적으로는 위험하고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두 소년의 이야기는 하나의 동화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마오이스트 소년이 동자승에게 주었던 총을 돌려주는데, 소년은 그걸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는 모습이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준장면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마치고 다시 해운대로 돌아왔다.

금요일 밤인에도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태풍 예고 때문인지 비교적 한적한 모습이다.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원래 해운대에서는 인터뷰 같은 행사를 하기도 하고, 후원기업들이 홍보 부스 등을 만들어놓기도 한다.

그런데 내일 태풍이 바로 지나간다는 예보가 있어서인지, 모든 행사는 취소되어 영화의 전당으로 옮겨졌으며 시설을 꽁꽁 묶어놓았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 개막 바로 전날의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시설들이 아작 나있었는데, 그 때의 일을 계기로 대비를 하는 모양이다.



태풍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리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를 맞고 돌아다닐 정도까지는 아닌데, 바닷바람 때문인지 바람이 강해서 우산을 쓰고 다니기 힘들었다.

새로 산 우산인데도 맞바람 맞고 두어 번 정도 홰까닥 뒤집어졌다.




궂은 날씨라고 부산 해운대까지 왔는데, 그래도 해운대 해수욕장을 좀 걷고 싶었다.

화려한 조명은 여전했지만, 물안개와 구름이 잔뜩 껴있어서 뭔가 불길했다.

왠지 저 꼭대기에는 최종보스가 살고 있을 거 같았다.



영어로 '해운대 HAEUNDAE' 라고 쓰여진 조형물도 서있었지만, 물빠짐용인지 근처에 해자를 잔뜩 파놓았다.

사진에는 안 나와도 근처에 포크레인도 한 대 세워놓았다.

내일 태풍 때문에 피해가 생긴다면 바로 복구를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태풍이 온다는데 바다 바로 가까이까지 사람들이 서있었다.

안전불감증인가 싶기도 했지만, 정 위험하면 안전선을 설치하든가 했겠지... 싶어 나도 근처까지 가봤다.

기분 탓인지 이전보다 파도 높이도 더 높고, 소리도 큰 거 같다.

신발이 신고 간 운동화 한 켤레 뿐이라 혹시라도 파도에 젖을까봐 근처에서 기분만 내고 돌아나왔다.



다시 해운대로 돌아왔다.

바람이 세서 우산은 자꾸 뒤집어졌다.

자세히 보니 해수욕장에서 우산이 뒤집어지면서 살 하나가 휘어있었다.

우산을 쓰나 안 쓰니, 어차피 옷 젖는 건 비슷한 상황이라 그냥 후드를 뒤집어쓰고 돌아다녔다.



해운대 광장에서는 멋진 음악과 함께 이런 분수쇼도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멋있다~~' 하면서 여행의 감성에 젖었겠지만, 하루종일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고생한 날.

안 그래도 하늘에서 물 뿌리는데, 굳이! 또! 물을 뿌리는 모습을 봐야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회의에 젖어 대충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적당히 돌아다녔겠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자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던 칵테일바로 향했다.

낯선 곳에서 칵테일바를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의 스펙트럼이 넓다보니 정통 클래식바부터 아가씨바까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맛있는 술을 조용히 마시고 싶어서 가는건데, 언니들이 말 걸어주는 그런 바를 갈 필요는 없으니까.

나름 단골(?) 칵테일바의 바텐더님이 예전에 주셨던 Korea Best Bar 2017을 찾아 해운대 쪽의 칵테일바 몇 군데를 추린 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추천받은 곳이 파파스 Papa's 라는 칵테일바였다.



스푸모니 


파파스는 메뉴판이 따로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칵테일이나 스타일 등을 얘기하면 취향에 맞춰 추천을 해주거나 만들어주는 시스템이었다.

첫 잔은 가볍게 스푸모니 Spumoni 로 주문했다.

자몽의 쌉싸름하면서 상큼한 맛과 토닉워터의 탄산감의 조합이 술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알코올이 가미된 에이드를 마시는 상큼한 기분이었다.

자몽쥬스나 자몽에이드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맛의 칵테일이다.



올드패션드


첫째잔은 가볍게 마셨으니 두번째 잔은 좀 독하고 무거운 칵테일을 마시기로 했다.

평소에 네그로니나 러스티네일, 프렌치커넥션처럼 독하지만, 약간은 단맛이 있는 올드패션드 스타일의 칵테일을 선호하는 편이다.

바텐더님께 이런 스타일의 칵테일을 좋아하니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파파스 특제 올드패션스 Old-Fashioned 스타일의 칵테일을 만들어주신다고 하셨다.

조그만 상자를 앞에 놓아주시더니 뚜껑을 여니 연기가 폴폴 나고, 안에는 무슨 드래곤볼처럼 칵테일이 들어있었다.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남성적인 칵테일이라 그런지 맛은 쓰고 독했다.

하지만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목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좋았고, 마시는 순간 독한 술냄새가 아닌 상큼한 시트러스향이 나는 게 좋았다.

더 마시고 싶었지만, 여행와서 술을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 마셔야지 취하면 안 되기 때문에 딱 2잔만 마시고 나왔다.




술을 마시면 왜 이렇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걸까?



아이스크림은 그냥 먹어도 맛있긴 하지만, 술기운이 살짝 있을 때 먹으면 유난히 더 맛있다.

그 차갑고 달달한 맛이 응축되어 입 안에서 팡팡 터지는 느낌이랄까.

칵테일을 마시고 나니 아이스크림이 미친 듯이 먹고 싶어져서 버거킹에서 컵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참고 : 버거킹 디저트 '컵아이스크림' 후기




숙소에 돌아오니 누군가 자고 있는지 불이 꺼졌다.
씻고 난 뒤 유튜브로 음악이나 들으면서 일정을 정리할 생각으로 2층 라운지로 왔다.


와이파이가 왜 이렇게 안 돼?


와이파이가 아예 안 잡히는 건 아니었지만, 뭘 검색하거나 유튜브로 음악을 듣거나 하기에는 너무 신호가 약하고 그나마도 자주 끊겼다.
그냥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하다가 짜증이 나서 다 관두고, 일찍 잠을 청했다. 


(재미있게 보셨으면 아래의 를 눌러주세요 ^_^)


Posted by 히티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