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조브 패스를 넘고, 이스칸다르 호수도 다녀왔어요.
이제 마지막 남은 관문은 샤흐리스탄 패스.
샤흐리스탄 산은 고도가 3600m 정도로 안조브보다도 훨씬 높다고 했지만, 이미 안조브 패스를 잘 통과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니 시.
자라프숀 강.
샤흐리스탄 패스 입구 초입은 괜찮았어요.
안조브 패스처럼 길도 좋았고, 도로도 잘 포장되어 있었어요.
우리는 여유롭게 설산을 구경하면서 마음을 푹 놓고 있었어요.
하지만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여기는 터널이 아직 개통이 안 되었어."
기사 아저씨께서는 샤흐리스탄 패스는 지금 중국 기업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 달 뒤에나 터널이 개통을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25km 정도 비포장 도로로 돌아가야한다고 했어요.
비포장 도로로 들어서자마자 차가 엄청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자갈 섞인 흙길에 산에서 눈 녹은 물이 계속 내려와서 길이 온통 구덩이에 진흙탕 천지였어요.
바로 옆은 천길 낭떠러지인데, 길은 겨우 차 한대 정도 지나갈 정도로 아슬아슬했어요.
론니플래닛에 왜 그렇게 비행기로 가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더군다나 차들도 엄청 많이 다녔어요.
주로 중국에서 넘어오는 화물 운송차량들이 타지키스탄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이 오고 있었어요.
그 중에서는 진흙탕에 바퀴가 빠지거나 엔진이 퍼져서 서버린 차들도 부지기수였어요.
상태가 최악인 1차선 도로에서 운행하는 차들은 많으니 속도는 고사하고 안전조차 장담할 수가 없었어요.
실제 사고 차량도 보았어요.
워낙 산세가 험해서 저렇게 사고가 나면 구조하지도 못한다고 해요.
도로에 생긴 작은 웅덩이.
도로에는 이런 물구덩이가 천지였어요.
그렇게 높게만 보였던 설산 꼭대기가 바로 옆에 있었어요.
드디어 산꼭대기.
산꼭대기에서는 하얀 물안개인지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어요.
차 밖은 너무 추워서 창문을 여는 건 고사하고, 히터를 켜야할 정도였어요.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고, 등에 총을 멘 한 군인이 나타나서 우리 차를 세웠어요.
기사 아저씨는 차에서 내려서 군인과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 눈 때문에 길이 막혀서 차 한 대 밖에 못 지나간대."
저 옆에 쌓인게 전부 눈.
기사 아저씨는 반대편 밀린 차들이 전부 넘어와야 우리가 갈 수 있다고 했어요.
이 때가 이미 저녁 6시가 넘었어요.
슬슬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눈이다!
바깥에서는 싸리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5월 중순에 눈이라니!
대형 트럭들은 연이어 꼬리를 물고 오고 있었어요.
밀려있는 차 대수 자체도 많은데,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길목에 구덩이가 패인 건지 차 두세대 건너 한대 꼴로 헛바퀴를 돌리며 허우적댔어요.
바로 옆은 절벽인데다가 길목 근처에서 대형 트럭 한 대가 퍼져버린 통에 어떻게 비집고 나갈 수도 없었어요.
해는 벌써 져서 어두컴컴하고, 차는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이스칸다르 호수에서 출발자체를 늦게 했기 때문에 서둘러 산을 넘어도 모자랄 판에 정상에서 계속 발목이 잡혀있었어요.
우리 뒤에도 수도 없이 많은 차들이 밀려있었어요.
마음이 조급해진 사람들은 맨 앞에 서있는 우리 차에 와서 왜 가지 않냐고 마구 항의했어요.
답답하고 초조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기사 아저씨도 방법이 없었어요.
끼어들 틈도 없이 차가 계속 오고 있었어요.
원래 정상에서 지키고 있던 군인은 30분 정도 기다리면 될 거 같다고 했지만, 차들이 구덩이에 빠져서 낑낑거리고 그 사이에 뒤에는 차가 더 밀려들어오면서 두 시간이 훨씬 넘게 정상에 잡혀있었어요.
"빨리 타!"
8시 반이 넘어서야 드디어 정상을 통과했어요.
원래는 위험해서 야간 운전을 안 한다던 기사아저씨도 마음이 급해져서 미친 듯이 속도를 내셨어요.
천길 낭떠러지 진흙탕 도로를 올라올 때만 해도 5km/h 로 달렸는데, 30km/h로 달렸어요.
이제 믿을 건 기사아저씨의 운전 실력 밖에 없었어요.
뒷자리에 앉은 저는 밤이 되니 오히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덜 무섭게 느껴졌어요.
나중에 기사아저씨 옆에 앉은 A씨의 말로는 커브길을 돌다가 표지판에 커브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어서 죽을 뻔 했다고 했어요.
오후 9시, 드디어 산을 다 넘었어요.
살았다!!!!
안도감이 몰려오면서 피로감도 같이 몰려왔어요.
기사 아저씨는 저녁을 먹자는 눈치였지만, 의사소통도 잘 안 되었고 셋 다 샤흐리스탄 패스를 넘으면서 완전히 지쳐 있었어요.
그 늦은 시간에 먹을 수 있는 건 샤슬릭 밖에 없었고, 피로에 쩔어서 입맛도 없었어요.
밤 11시, 드디어 후잔드 도착!
아침 9시에 출발해 14시간만의 도착이었어요.
아저씨는 우리를 '에흐손 호텔 Ehson Hotel'에 내려주었어요.
론니플래닛에는 있지만, 지도에 나오지 않아서 멀리 있는 거 같아 갈 생각이 없었던 숙소였어요.
그닥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피곤해서 쉬고 싶은 마음에 방을 적당히 보고 괜찮다고 했어요.
원래는 도미토리 비슷하게 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이고 침대 하나당 40소모니를 받는 쉐어드룸이라고 했지만, 아저씨가 호텔 리셉션인듯 아주머니와 흥정을 하시더니 세 사람 합쳐서 100소모니에 해준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2박을 하기로 하고 숙박비를 냈어요.
아저씨에게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운전비를 드리고, 헤어졌어요.
아저씨는 원래 후잔드에 살고 계신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셨어요.
막상 방에 돌아와서 씻으려고 하니 정말 방은 거지꼴이었어요.
창문은 깨져있고, 침대에는 먼지가 풀풀 났어요.
샤워기는 물이 안 나오고, 세면대는 덜렁덜렁거렸어요.
하지만 제일 문제는 바로 변기.
물 내리는 손잡이가 없어서 물을 떠다가 부어야했어요.
왜 옆에 5리터짜리 페트병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제대로 오물이 내려가지 않아 냄새가 진동했어요.
일단은 씻고 자고 싶은 생각에 욕실에 들어가니 건물 전체에 온수가 나오는 시스템이 아니라 온수기가 달려있어서 따로 틀어야되는 시스템이었어요.
온수기를 켜고 물을 틀고 온도를 맞추기 위해 손을 가져다 되니 손 끝이 찌릿거리며 따끔했어요.
혹시 온수기 때문에 물에 전기가 통해서 그런가 하고 바로 온수기를 끄고 대강 씻은 채로 침대에 누웠어요.
깨진 창문 때문에 화물차 지나가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등등이 그대로 들려왔어요.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1시가 넘어거야 잠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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