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타지키스탄 [完]2013. 8. 12. 08:30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났어요.

전날 한 일이라고는 하루종일 차만 타고 다닌 거 밖에 없는데도 매우 피곤했어요.


"이스타라브샨 보러 갈래요?"


A씨가 물었어요.

원래 우리는 두샨베에서 출발할 때, 후잔드가 아니라 이스타라브샨이라는 곳에 가기로 했어요.

그러나 워낙 밤에 도착하는 통에 숙소를 찾을 수도, 뭐가 있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어서 후잔드로 넘어온 거였어요.

A씨는 저와 B씨가 싫다면 혼자라도 다녀오겠다고 했어요.


"같이 가요."


피곤하긴 했지만,  타지키스탄에 다시 올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르고 힘들게 왔는데 숙소에만 있으면 아쉬울 거 같았거든요.

방 상태도 오래 있고 싶게 생기지 않았고요.

B씨는 전날 여행으로 체력이 방전되었는지 숙소에 남겠다고 했어요.


일단은 떠나기 전에 숙소에 변기가 고장났다는 것을 말하고, 방을 바꿔달라고 하기로 했어요.

진짜 방을 바꿔준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령 바꿔주지 않더라도 나중에 '너희가 고장냈으니 수리비를 물어내라' 라는 말이 나오면 곤란해질 수 있었거든요.

일단 저는 러시아어를 아는 B씨를 앞장 세워서 리셉션 아주머니께 방을 바꿔달라고 했어요.

A씨는 먼저 밖에 나와서 이스탄라브샨 가는 차를 타는 곳을 알아보겠다고 했어요.  

아주머니는 종이쪽지에 뭔가 끄적거리더니 수리해주겠다, 만약 오늘 방을 빼는 사람이 있으면 바꿔주겠다고 했어요.

어차피 하루 더 머무는 건데 그 사이에 수리해줄 거 같지도 않고, 지금 태도로 봐서는 방을 바꿔줄 거 같지 않았어요.

일단 B씨에게 오후 3시쯤 돌아오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A씨는 호텔 앞에서 어떤 아저씨와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이 사람 우즈벡어 해요."


그 아저씨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르혼다리오 출신이라고 했어요.

아저씨 말에 의하면 후잔드에는 우즈벡 사람들이 매우 많이 살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씩이나마 우즈벡어를 알아 듣는다고 했어요.

또 위구르 사람들이 그 지역의 상권을 많이 장악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자신들의 언어와 유사한 우즈벡어를 잘 구사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타직인들도 살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는 타직어를 구사하고, 우즈벡 사람들끼리 있을 때나 집에서는 우즈벡어로 이야기를 한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후잔드는 차로 1시간 남짓이면 국경에 닿을 정도로 타슈켄트와 매우 가깝고, 원래 우즈벡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예요.

소련 시절 스탈린이 민족 분포를 고려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국경을 그어버렸기 때문에, 우즈벡인들이 많이 사는 후잔드는 타지키스탄으로, 타직인들이 많이 사는 부하라나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으로 편입되어 버리는 우스운 상황이 발생되어 버렸어요.

아저씨에게 이스타라브샨 가는 차를 어디서 타냐고 물어보니, 아저씨는 isfara avtovokzal(이스파라 버스터미널) 에서 탄다고 했어요.

그 분은 직접 도로로 나가서 마슈르트카를 잡아주셨고, 우리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마슈르트카에서 내리자마자 택시기사들이 엄청 달려들었어요.

그 중 한 사람이 타고 있는 쉐어드 택시에 탔어요.

우리가 타자마자 다른 한 명이 더 탔고, 택시는 바로 출발했어요.

택시비는 한 사람당 10소모니였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톨게이트가 나타났어요.

후잔드에서 이스타라브샨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그 사이에 이런 톨게이트가 두번 나와요.

요금도 두 번 내는데 거의 1사람 요금은 되는 거 같았어요.





이스타라브샨 가는 길.

사람들은 보통 '이스타라브샨'이라는 지명보다 옛지명인 '우로테파'라는 말을 훨씬 많이 쓰고 있었어요.

참고로 후잔드의 옛 지명은 '레니나바드', 레닌의 도시라는 뜻이예요.


누가 봐도 외국 관광객인 우리가 신기했는지, 기사가 우리에게 러시아어로 말을 걸었어요.

우리는 러시아어는 거의 몰랐기 때문에 우즈벡어를 안다고 하자, 너도나도 우리에게 우즈벡어로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그 택시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 전부 우즈벡어를 할 줄 알았어요.









1시간 반 정도 달리자 도시인 듯 사람들과 건물이 많아졌어요.

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바자르 근처에서 내려주셨어요.

돌아올 때도 그 근처에서 택시를 잡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일단 도착은 했지만 어디로 가야하는지 막막했어요.

론니플래닛에 이스타라브샨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는 하지만, 한 페이지 정도인데다가 가장 중요한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A씨는 오다가 언덕 위에 지은 성을 보았다면서 일단 그 쪽으로 가자고 했어요.



식당도 나오고...

간판의 음식은 우즈벡 음식들과 거의 비슷한 거 같았어요.



그닥 큰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스타라브샨의 중심가인데 소가 풀을 뜯어먹고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 지역에서는 사료값 오를 걱정이 없을 거 같아요.



위험하게 인도 한복판에 맨홀이 그대로 열려 있었어요.

그닥 깊어보이지는 않았지만, 못 보고 빠지면 크게 다칠 건 사실이예요.

이런 함정이 곳곳에 꽤나 많아서 주의를 하고 다녀야했어요.








얼마 간 가다보니 모스크 비슷한 건물의 미나렛이 보였어요.

우리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모스크를 찾아 들어갔어요.



모스크의 간판을 보니 론니플래닛에 나오는 '하즈라티 샤 모스크'였어요.

론니플래닛에도 나오는 곳인데, 금요 기도를 하는 곳이라고 해요.



건물의 천장이 우리나라의 단청처럼 알록달록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안에는 샤 푸잘리 이븐 압바스의 묘가 위치하고 있어요.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푸른색의 돔이 시선을 확 끌었어요.



공간이 좁거나 잘 꾸며진 것은 아니지만, 묘도 있고, 탑도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래도 이 지역에서는 중요한 모스크인 거 같아요.

탑에 올라갈 수 있나 봤지만 아쉽게도 잠겨져 있어서 올라갈 수는 없었어요.



우리는 모스크 미나렛을 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가며 골목골목을 찾아들어갔어요.

하지만 대로변에서 바로 들어오는 입구가 있었어요.

대로변으로 나와서 다시 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레닌 동상!


중앙아시아나 카프카스 지역은 과거 구소련 국가였으니 레닌 동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레닌 동상은 정말 보기 힘들어요.

구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소련의 잔재를 청산해가는 과정에서 대부분 철거해버리고,  그 자리에 자국의 민족과 관련된 동상들을 세웠거든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는 아미르 테무르의 동상을, 키르기즈스탄 비쉬켁에는 마나스의 동상을, 타지키스탄 두샨베에는 소모니 1세의 동상을 세웠어요.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 레닌 동상을 본 건 이스타라브샨과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단 두 군데 뿐이예요.

사실 우리가 바자르에서부터 계속 걷고 있던 거리의 이름도 '레닌 거리'였어요.


신기해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동상 뒤에 있던 할머니가 우리를 불렀어요.

외국인 관광객인 우리가 신기해서 말을 걸고 싶으신 거였어요.

옆에는 아들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과 손자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하나 있었어요.

할머니는 우즈벡어를 할 줄 아셨어요.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자신의 아버지가 우즈벡인이라고, 어머니가 타직인이기 때문에 우즈벡어를 할 줄 안다고 하셨어요.

옆에 있던 청년은 18살의 고등학생이었는데, 터키계 학교를 다녀서 우즈벡어, 타직어, 영어, 러시아어, 터키어를 할 줄 안다고 했어요.

저도 터키어와 우즈벡어를 조금 안다고 했더니 터키어로 말을 걸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본인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른 언어로 각각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데자꾸 헷갈리는지, 자기가 알고 있는 언어를 마구 섞어쓰기 시작했어요.

타직어나 러시아어만 아니면 저도 아는 언어이기 때문에 섞어써도 그럭저럭 알아들을 수는 있었어요.

그러다마 본인도 쑥스러운지 웃었어요.


"우리 집에 와서 놀다 가. 팔로브 해줄게."


할머니는 우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어하셨어요.

가고는 싶었지만, B씨와 세 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따로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었어요.

우리를 계속 잡는 할머니께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 안 된다고 하니 많이 아쉬워하셨어요.




가자, 성으로!


A씨가 오면서 봤다던 성이 바로 저 성이라고 했어요.

일단 내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꽤 괜찮아 보였어요.




Posted by 히티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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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는 여행지로 충분히 개발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직은 별로 손 대지 않은 거 같네요 ㅋㅋ 하긴...아직까지 타지키스탄 여행 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파미르를 떠올려서 그런 걸까요? ^^;

    2013.08.12 10: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두샨베-후잔드 도로가 완전히 뚫리면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2013.08.12 23:42 신고 [ ADDR : EDIT/ DEL ]
  2. 멋진 여행기네요. ^^ 정독했습니다.

    2013.08.12 11: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중심가에 풀을 뜯어먹는 소, 레닌 동상, 뚤린 맨홀..오늘 이야기도 이문화를 정말 느끼는 내용이었습니다.
    외국인이 정말 드문가봐요? 도쿄는 외국인이 워낙 많아 아무도 외국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답니다.
    이렇게 외국인이라고 말을 걸어주는 곳엘 가면 어떤 느낌일지 정말 궁금하네요..ㅎㅎ

    2013.08.12 22: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정말 저런 지역은 20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게 없을 거예요ㅎㅎ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60-70년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누가 봐도 외국인인데가 신기하기도 하고 하니까, 자꾸 말도 걸어보고 괜히 따라오기도 하고 해요.
      어떻게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가끔은 귀찮기도 해요.

      2013.08.12 23:57 신고 [ ADDR : EDIT/ DEL ]
  4. 와...신기해요.
    제일 놀란 것은 아무래도 맨홀...어떻게 저렇게 구멍이 숭 뚤려 있을까요?
    정말 걸을 때 조심해야겠어요ㅠㅠ

    특이한 장소를 많이 여행하시는 히티틀러님의 오늘 이야기도 신기하게 잘 읽고 가요~
    좋은 밤 되세요!

    2013.08.12 22: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기 뿐만 아니라, 타슈켄트에도 저렇게 구멍 뚫린데 엄청 많아서 조심해서 보고 다녀야해요.
      그래도 낮이나 날씨가 좋을 때는 괜찮은데, 날이 어둡거나 눈이 와서 길이 덮이면 저런 함정도 다 덮어져서 진짜 위험해요.
      저 예전에 눈 온 날에 타슈켄트 돌아다니다가 도로에서 넘어져서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어요ㅠㅠ

      2013.08.13 00:1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