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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무렵, 트빌리시에 도착했어요.

카프카스 여행을 시작했을 때 처음 온 곳이 트빌리시였기 때문에 도시 모습이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어요.

트빌리시 시내에 들어서자 버스 안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어요.


저와 M씨의 계획은 트빌리시에서 바로 아르메니아 예레반으로 넘어가는 것.

트빌리시에는 버스 터미널이 3개 있는데, 아제르바이잔 바쿠나 아르메니아 예레반, 터키 등으로 넘억는 국제선버스는 그 중 '오르타찰라' 라는 터미널에 있어요.

오르타찰라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달라고 하자, 기사 아저씨는 추가로 요금을 더 내라고 했어요.

우리는 바로 알았다고 했어요.

오르타찰라 버스 터미널은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가기가 고약하기 때문에, 돈을 얼마를 주고서라도 바로 가는 게 훨씬 좋았거든요.

버스에는 우리 말고 다른 그루지아인 한 명도 있엇는데, 그 사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예레반으로 간다고 했어요.

기사 아저씨는 그루지아어로 그 사람에게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분위기를 보아할 때 "쟤들은 외국인이니까, 니가 좀 잘 챙겨줘." 하는 듯 했어요.














오르타찰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이곳에 왔던 그 때처럼 택시기사들이 바글바글 달라붙기 시작했어요.


"예레반? 예레반까지 바로 데려다줄게, 타!"


택시기사들이 소리치고 달려들었지만, 우리는 재빨리 도망을 쳤어요.

어떻게 의사소통이라도 어느 정도 통해야 택시 기사와 합의를 보든 말든 할텐데, 그들은 영어를 모르고 우리는 그루지아어도, 러시아어도 모르니 어차피 대화가 안 통했어요.

바쿠 넘어갈 때처럼 우리가 시간이 쫓겨서 서둘러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비자 문제가 걸려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비싼 택시를 탈 이유도 없었고요.

우리와 같이 버스를 타고 온 그루지아인 청년은 이미 택시기사의 꼬임에 넘어간 듯 했어요.


오르타찰라 버스 터미널은 겉보기에는 정말 휑해요.

그래도 국제선 버스 터미널이니 버스 회사 사무실이나 환전소, 가게 쯤은 하나 정도 보여야하는데, 빈 건물처럼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 간 여행자들은 당황을 하거나 택시 기사 꼬임에 넘어가기 쉬워요.

하지만 실제 건물 안에 들어가니 버스 회사 사무실과 버스 혹은 승합차들이 전부 아래층에 들어가 있어요.



우리가 타고 갈 예레반행 버스(라고 말하고 15인승 승합차라고 쓴다).

아르메니아에서 출발해서 온 차인 것 같은데, 다행히 행선지가 아르메니아 문자가 아니라 키릴 문자로 쓰여있어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어요.

터키로 가는 버스들은 버스 회사 사무실에서 표를 구입하는 듯 했지만, 예레반 행은 따로 매표소가 있는 게 아니어서 기사아저씨에게 바로 두 자리를 샀어요.

가격은 한 사람당 30라리.

참고로 택시 기사들은 트빌리시에서 예레반까지 차 한 대에 200달러를 불렀는데, 그 정도면 그루지아로 돈으로 300라리가 넘어요.


"예레반 몇 시에 출발해요?"

"아침 8시."

"몇 시간 걸려요?"

"6시간."


아침 이른 시간이라서 사람이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 갔을 때도 자리가 몇 개 안 남아서 조금만 늦게 갔으면 다음 차를 타고 갈 뻔했어요.

승합차는 남는 좌석 하나 없이 꽉 찼고, 시간이 되자 출발했어요.

차 자체도 오래된 데다가 자리가 너무 비좁아서 온몸에 힘을 딱 주고 각 잡고 앉아서 가야했어요.

 











트빌리시에서 국경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국경에 도착하자 같이 승객들은 전부 내리고, 운전기사는 차를 끌고 따로 출국 수속을 받으러 갔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먼저 국경 심사를 받으라고 했어요.

출국 심사대에는 이쁜 금발 미녀 언니가 있었는데, 얼마나 까칠한지 계속 트집을 잡아댔어요.

저는 새로 발급받은 전자 여권이었고, M씨는 옛날 구여권이었는데, 왜 같은 나라에서 왔는데 여권이 다르냐고 따졌어요.

설명을 했더니 전자여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건지, 전자여권과 구 여권의 차이는 뭐냐고 물어보지를 않냐, 왜 여권 번호가 다르냐고 또 트집을 잡아서 안 되는 영어로 한참을 설명해야했어요.

한참을 꼬치꼬치 취조를 하고 나서도 믿음이 안 가는건지 다른 경찰에게 전화로 계속 연락을 하고 불러오고 하다가 아예 우리 여권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버렸어요.

거의 15-20분이 지나서야 다시 와서 우리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고 돌려줬어요.

입국도 아니고, 출국인데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에 비해 아르메니아 입국 심사는 빨리 통과되었어요.

입국 심사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버스 기사는 아르메니아 국경 비자를 받는 사무실을 가리키며 저리로 가라고 알려줬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미리 e-visa 를 신청해서 받아갔기 때문에 곧장 입국 수속을 받으러 갔어요.

국경 경찰은 얼굴 한 번 보더니 종이에 우리의 비자 번호와 종류를 손으로 적은 다음 바로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어요.

그루지아나 아제르바이잔은 국경 심사대에서 다 카메라로 얼굴을 찍는데, 아르메니아는 그런 것도 없었어요.


"웰컴 투 아르메니아"


입국 심사를 마치자 마자 재빨리 버스에 올라탔어요.

그루지아 국경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한 바람에 다른 승객들이 전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점심 시간 무렵이 되자 차가 휴게소에 멈췄어요.

사람들은 화장실도 가고, 음료수나 간식 거리를 사먹었어요.

우리는 아르메니아 디람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침만 삼켰어요.



배는 고픈데, 휴게소 앞 경치는 정말 끝내주게 아름다웠어요.

비가 왔는지 흙탕물이긴 했지만, 여름에 물놀이를 하면서 시간 보내도 좋을 거 같았어요.

남들 먹고 있는데 할 일도 없고, 경치 구경을 하고 있으니 아르메니아 청년 하나가 와서 여기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많다면서, 예레반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라고 남의 속도 모르고 염장을 질렀어요.


누가 예레반을 6시간이면 간다고 했나.

그루지아도 도로 상태가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아르메니아는 도로 상태가 더욱 심각했어요.

게다가 차는 얼마나 낡았는지 도로 상태가 온몸으로 전해주는 건 기본이고, 차 바퀴가 하나 정도 빠진다고 해도 아무 이상이 없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어요.

야간 이동 때문에 피곤해서 버스 안에서 눈 좀 붙이고 싶었는데, 얼마나 차가 덜컹거리는지 도저히 잘 수가 없었어요.

잠깐 정신줄을 놓았다가 차가 갑자기 덜컹거리는 바람에 앞자리에 머리를 제대로 박고 나니 비몽사몽간에도 온몸에 각잡고 있어야했어요.

같은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익숙한 건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중심을 유지하며 졸고 있는데, 그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어요.


예레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거의 오후 5시에 가까웠어요.

여행 전에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놓은 숙소인 엔보이 호스텔 Envoy Hostel 을 찾아가기 위해서 일단은 터미널 밖으로 나왔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환전소를 찾아서 돈을 조금 환전을 하고, 호스텔 근처에 있다던 지하철 역을 찾아가기 위해 버스정거장에서 미슈르트카를 기다렸어요.

하지만 막상 마슈르트카가 와도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영어를 할 줄 아는 여자분이 우리를 도와주셨어요.

자기가 갈 길도 제쳐놓고 우리와 같이 마슈르트카를 타셔서 숙소 주소와 론니플래닛 지도를 보시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숙소를 찾아주셨어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린 후에, 한국에서 사온 한복 입은 토끼 인형 하나를 선물로 드렸어요.


호스텔 직원들은 영어를 잘해서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어요.

며칠간 묵기로 하고 돈을 지불하고 짐을 정리하려는데, 무언가를 수리하는 듯 공구를 가지고 계신 할아버지가 보였어요.

제 캐리어가 바투미에서 바퀴가 빠져버린 이후로 계속 말썽이었어요,.

여행이 절반 이상 남았는데, 계속 바퀴가 빠진 상태로 캐리어를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M씨가 할아버지께 공구를 좀 빌릴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는 영어를 못하셔서 리셉션에 있던 직원이 통역을 해주었어요.

캐리어를 보던 할아버지는 바퀴를 고정시키는 부품이 깨져서 없어진 거 같다면서 공구통을 뒤져서 임시방편으로 고쳐주셨어요.

아르메니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너무 친절한 사람들이어서, 아르메니아에 대한 이미지가 정말 좋아졌어요.












피곤했지만, 일단 짐을 놓고 구경을 하러 나왔어요.

숙소는 예레반의 중심가인 메스로프 마쉬토트 Mesrep Mashtots 거리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요.

마쉬토트 거리에는 환전소가 한 집 건너 한 집 있었어요.

환율도 거의 비슷해서 아무 곳이나 맘에 드는 곳에 들어가서 환전했어요.


거리를 따라 걷다가 서점이 하나 보이기에 들어갔어요.

여행하는 나라마다 의례처럼 서점에 들리는데, 카프카스 3국 중에서 아르메니아가 책이 제일 없는 것 같았어요.

2층으로 된 꽤나 큰 규모의 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로 된 책들이 대부분이고 자국어로 된 책은 얼마 없었어요.

M씨는 그곳에서 아르메니아어-영어로 된 작은 여행 회화책 한 권을 샀어요.



왠 모스크지?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 정교'라는 종교적 정체성이 매우 강한 나라인데다가 터키나 아제르바이잔 같은 주변 이슬람 국가와의 정말 악연으로 얽혀있는 나라예요.

그런데 예레반 시내 한복판에 모스크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슈카 Shuka 시장.

'슈캬 Shuka' 라는 단어가 food market 이라는 의미라고 해요.



슈카 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말린 과일과 견과류를 파는 곳이예요.

말린 살구나 무화과, 건포도 같은 건 많이 봤기 때문에 그닥 신기할 건 없었는데, 저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게 무엇일지 너무 궁금했어요.

상인들은 우리에게 시식을 권했어요.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막대기는 견과류를 실에 꿴 후에 그 위에 과즙을 계속 발라주면서 말린 거였어요.

안에 든 견과류 때문에 고소하면서도 그 위에 겹겹히 쌓여 잘 마른 과즙은 젤리처럼 쫀득하면서도 새콤했어요.

안 사기 미안할 정도 아저씨가 이것저것 시식을 많이 권해서,  저 주렁주렁 막대기 하나를 샀어요.

말이 통하면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 물어봤을 텐데, 아직까지도 저것의 이름은 모르겠네요.


시장을 나오는 그 앞에 지하도가 있어서 내려갔더니, 흰머리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케밥집이 하나 있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 것도 안 먹어서 그 곳에서 끼니를 때우기로 했어요.




샤와르마(또띠아에 고기와 양파, 야채 등을 넣어서 돌돌 말아만든 음식)를 하나씩 시키고, 음료수를 하나 시켰어요.

할아버지는 냉장고에서 아르메니아어로 쓰여진 환타 비슷한 탄산음료와 함께 컵 두 개를 주셨어요.

샤와르마는 옆에서 바로 만들어서 따끈한 데다가 핫소스 비슷한 소스를 넣어주셔서 더 맛있었어요.

하지만 더 만족스러운 것은 바로 가격!

샤와르마 하나가 300디람에 음료 100디람, 둘이 먹어도 700디람, 한국돈으로 2천원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우리 같이 여행비용이 넉넉하지 않은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예레반의 공화국 광장이예요.

이곳에 지하철 역도 있는데, 처음 찾아오려고 했던 지하철 역이 바로 이 곳이었어요.

숙소와는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생각보다는 숙소와 좀 멀었어요.

도움 없이 여기로 왔다면 정말 고생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우리를 도와준 그 분이 다시금 감사했어요.


"여기 이름이 흐락파락이래."


론니플래닛을 보니 공화국 광장이 현지어로 '한라페투탼 흐라파락 Hanrapetutyan Hraparak' 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앞의 단어는 잘 외워지지 않았지만, '흐락파락'이라는 말이 왠지 라임도 맞는 거 같고 입에 정말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었어요. 

친구도, 저도 서로 큭큭 거리면서 웃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공화국 광장을 계속 '흐라파락'이라고 불렀어요.


공화국 광장까지 돌아온 뒤 숙소로 돌아왔어요.

만 이틀만에 샤워를 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어요.

M씨는 해도 슬슬 지도 날도 많이 시원해졌으니 다시 나가보자고 했으나, 저는 너무 피곤해서 쉬겠다고 했어요.

결국 M씨는 알았다며 혼자 구경을 하러 나갔고, 저는 죽은 듯이 잤어요.

한참 뒤에 밤이 되어서 돌아온 M씨가 '공화국 광장에서 분수쇼가 있다'라면서 깨웠지만, 그냥 다시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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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티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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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주렁주렁 매달린 견과류에 가장먼저 눈이 갈 것 같아요..색깔도 다양하네요.
    새콤달콤하다고 하니 언제 기회가 되면 종류별로 다 사고 싶은 맘이..ㅎㅎ;;
    광장의 거리를 보니 신호등도 잘 보이지 않네요. 차선도 눈에 띄지 않고..어찌 달리는지..ㅎㅎ;;

    2013.10.19 23: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맛도 있지만, 아이들 영양 간식으로도 좋을 거 같아요.
      사실 카프카스나 중앙아시아 지역은 거의 전체적으로 도로 표지도 잘 안 되어 있고, 차선도 거의 없어요.
      신호등도 지키는 사람을 거의 못 봐서 왠만하면 그냥 슉슉 건너요.
      예전에 터키에 지낼 때 왜 도로에 차선이 없냐고 물어보니 "너는 말이 차선 지켜서 달리는 거 봤냐?" 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거의 자동차 = 현대식 말 같은 개념이고, 아직까지 도심을 제외하고는 차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렇다네요.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익숙해지면 별로 신경 안 쓰게 되더라구요.

      2013.10.20 02:05 신고 [ ADDR : EDIT/ DEL ]
  2. 자칫하면 택시 바가지요금 둘러쓰겠군요....^^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긴 것 같습니다.

    2013.10.23 14: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래서 미리미리 현지인이나 숙소 같은 데 정가가 얼마인지, 어떻게 가는지 물어보는 게 최선인 거 같아요.

      2013.10.27 00:09 신고 [ ADDR : EDIT/ DEL ]
  3. 안녕하세요! 블로그 글들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저도 우즈베키스탄과 코카서스 지역 여행했던 적이 있어서 히티틀러님 글들 읽으면서 제 추억도 되짚어보게 되네요. 자세히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에요.
    저 슈카 시장의 '주렁주렁 막대기'는 "추르치헬라"라는 조지아 전통 과자입니다. 조지아 여행할때 저도 먹어봤는데 새콤하고 맛있죠.ㅎㅎ https://ko.wikipedia.org/wiki/%EC%B6%94%EB%A5%B4%EC%B9%98%ED%97%AC%EB%9D%BC
    현지에서는 '추추겔라' 이런식으로 얘기하더라구요! 혹시 아직 못 알아내셨다면 궁금증 해소에 도움이 되셨길...

    2021.05.06 01: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