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본 이 곳은 페낭 조지타운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쿠 콩시 Khoo Kongsi 였다.
나 눈이 해태였나?
못해도 이 앞을 5-6번은 지나갔을 텐데, 왜 매번 이 앞을 지나가면서도 여기를 못 봤던 걸까.
그런데 난 원래 이렇다.
어디를 가야한다는 목적이 있으면 별로 주변을 신경을 안 쓴다.
나름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다닌다고 해도 이상하게 필터링이 된다.
뒤에서 아는 사람이 바짝 붙어서 따라오면서 내 이름을 불러도 못 듣고 직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찾은 게 어디냐.
입구를 들어가니 좁은 골목에 회랑이 양쪽으로 쭉 뻗어있다.
건물은 2층으로, 호텔처럼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전에 청팟제 맨션 Cheng Fatt Tze Mansion 에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아마 일가 가문의 사람이 새로 오거나 행사나 명절 등으로 사람들이 모였을 때 묵을 수 있는 일종의 게스트룸으로 쓰였을 거다.
2층은 볼 수 없었지만, 1층 방 몇 개들은 관리사무실로 쓰이고 있었다.
게스트룸만 해도 40개가 넘는다고.
PLEASE, STOP!
골목의 끝에는 쫙 펼쳐진 손바닥 그림의 간판이 붙어있다.
유명한 곳이라 입장료를 내야한단다.
혹시 입장료 안 내고 몰래 들어갈까봐 영어로 STOP 이라고 써놓은 게 왠지 웃겼다.
입장료는 성인 10링깃 (약 2,800원).
티켓은 스티커로 되어있는데, 입장료를 낼 수 있는지 구분할 수 있도록 옷이나 가방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이라고 한다.
가슴팍에 스티커도 탁 붙이고 본격적으로 관람 시작.
들어가자마자 넓은 돌마당이 펼쳐지는데, 가장 입구 쪽에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안에는 유리장 안에 신위가 모셔져있다.
쿠 콩시는 19세기 말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 오랜 역사와 가문의 규모를 말해주듯이 신위도 많다.
그런데 보통 신위는 집안의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모셔져 있지 않나?
이 분들은 짬이 안 되서 문간방 신세가 아닌가 싶다.
중간 즈음에도 무슨 건물이 하나 있었으나 여기는 들어가볼 수가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쿠 콩시의 메인 건물.
쿠 콩시 Khoo Kongsi 는 중국 남부지역 호키엔 Hokkien 민족 출신인 쿠 Khoo (구 邱) 씨 가문의 사당이다.
중심 건물인 사당은 1953년부터 건축을 시작하며 1906년에서야 완성되었다고 한다.
딱 봐도 지붕이 엄청 화려한데, 이곳을 지을 때 중국의 황궁을 모방해서 지었다고 한다.
마침 태양도 머리 꼭대기에 이글거리고 있어서 바라만 봐도 눈이 부셨다.
이 사당을 중심으로 가문 사람들이 모여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2001년 마지막으로 복구를 마친 상태라고 한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번쩍번쩍하다.
천장은 진짜 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황금색으로 서까래를 잔뜩 치장해놓았고, 지붕은 구워서 만든 도자기나 청기와 비슷하게 보였는데, 크고 화려한 건물에 용이 그 주변을 감싸면서 승천하는 모양이다.
황궁을 모방해서 지은 사당이라더니 즈붕에 자신들의 바람과 희망을 장식해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돈 엄청 많았구나
동남아시아에서 화교계가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사당을 눈으로 보니 어마어마했다.
단순히 '크고 화려하게! 황궁처럼 짓고 싶어!' 라고 생각한다고 전부가 아니다
재료 수급부터 시작해서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수준급의 기술자들까지 중국 본토에서 수소문해서 데리고 와야하는 등등 생각하면 대충 생각해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것도 한두 해도 아니고 수십년동안이나.
비용 떨어지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비용 모으면 건축하고.. 그래서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건가.
중국계 절이나 사당이라면 꼭 계시는 스님 혹은 도사상.
그래도 저 분은 슬림하신 편이다.
내가 본 중 대부분은 대사증후군이 99% 의심되는 복부비만이어서 옷고름도 못 묶어서 배를 내놓고 다니는 스님들이셨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건 총을 든 남자.
얼굴을 자세히 보면 코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하니 중국인의 얼굴이 아닌데, 머리에 터번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도계로 보인다.
영국인들이 말레이시아로 진출하면서 인도에서 부리던 인도사람, 특히 남인도 사람들을 경비원, 시종, 짐꾼 등으로 많이 데리고 왔고, 이들이 현재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인도계의 시초라고 한다.
총 들고 있는 거 보면 여기에서도 경비원으로 일한 듯 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붉은색과 황금색의 조화가 어지로웠다.
한자로 '왕손대사야야 王孫大使爺爺' 로 쓰여있고, 황금관을 씌운 목각인형 한 쌍이 놓여져있다.
원래 저들이 이 공간의 주인일텐데, 주변이 너무 화려해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천장, 문.. 어느 하나 허투로 놔두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 건축물이나 장신구의 아름다움은 소박함과 단아함이라면 중국의 미의 기준은 단연코 화려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계가 없는 시절에는 다 사람 손으로 했을 텐데, 역시 사람 많은 나라라서 그런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복도 한쪽에는 창이 있고, 벽에는 벽화들이 주루룩 붙어있었다.
그림들은 신선도 비슷한 것으로, 유교적 혹은 도교적 믿음이나 가문이 부흥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아름답지 않나요?"
관리인으로 보이는 중년 아저씨 한 분이 백인 관광객 커플에게 작품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열심히 설파하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라는 점에 방점을 팍팍 주어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저씨, 미안해요. 내가 봐도 별로예요.'
중고등학교 때 미술시간이나 국사시간에 유명한 작품들을 교과서로 접했지만, 멋있다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그 가치가 보이는 거지, 나처럼 무덤덤한 문외한에게는 '그냥 그런갑다' 할 뿐이다.
책에서야 사색에 잠겨있다느니 도교적 이상향을 의미한다거나 하는 고상한 말로 포장하지만, 내 눈에는 '물가가 시원하니까 졸고 계시구만, 사색은 무슨'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다.
외국인들이야 오죽할까.
혹시 나한테도 말걸까봐 빨리 자리를 피했다.
숨 좀 쉬자
장식을 하려고 한 건 알겠는데, 가면 갈수록 투머치이다.
강박증처럼 문짝부터 창문, 천장까지 어디 하나 빈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잠깐 와서 둘러보는 거니까 망정이지, 여기에서 살라고 하면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을 거 같아.
중앙 제단 말고 양쪽에도 방이 하나씩 있는데, 여기에도 신상 같은 게 하나씩 놓여져있다.
특이하고 벽면에는 이름과 학력, 출생년월이 쓰인 목판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아마 이 가문 사람들의 이름인 거 같다.
얼핏 훑어보니 의사나 법률가 같은 전문직도 많고,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외국 유명대학에서 수학한 사람들도 많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옆쪽으로 난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이들이 중국에서 이주했던 19세기 무렵에는 대부분 무역이나 막노동 등 힘든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당시의 생활 모습이나 세간살이 등을 모형으로 전시해놓았다.
쿠 콩시는 1999년 개봉한 '애나 앤드 킹 Anna And King' 이라는 영화의 촬영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주윤발과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로, 율 브린너 주연의 영화 '왕과 나' 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규모가 그닥 넓진 않지만, 쿠 씨 가문의 역사와 쿠 콩시의 건축학적 요소에 대한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중국어 뿐만 아니라 영어 설명까지 자세히 쓰여있고, 실내가 시원해서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쿠 콩시의 야경 사진이 예뻤다.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기 입장 가능 시간이 오후 5시까지니 관광객은 보고 싶어서 볼 수가 없다.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페낭 조지타운에는 쿠 콩시 Khoo Kongsi, 체 콩시 Cheh Kongsi 등 콩시 Kongsi 가 여러 군데 있다.
유명한 곳은 입장료도 따로 받는데 어차피 다 비슷비슷해서 몇 군데씩 다 갈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쿠 콩시가 가장 화려하고, 잘 꾸며놓아서 딱 한 군데만 간다면 여기가 제일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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