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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2019 말레이시아[完]

여자 혼자 말레이시아 여행 - 24. 1/21 페낭 워터폴 힐 템플 (2)

by 히티틀러 2019.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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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스러운 사진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드디어 그 고행자들이 도착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지나 무거운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는 바로 그 시간.



먼저 두 팔을 나무기둥에 묶은 마른 사람부터 의식을 진행했다.

제일 먼저 나무기둥에 묶은 두 팔을 풀어주고, 목에 걸린 사슬을 풀어주었다.



이마에 자잘자잘한 장신구과 입을 가리고 있던 태양 모앙의 장식을 제거했다.



멀리서 볼 때는 삼지창 같은 긴 꼬챙이가 입을 가로로만 뚫고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양 입술과 혀까지 얇은 쇠막대로 끼워놓았다.

입술이랑 혀, 둘 다 피가 많이 나는 부분인데, 피가 안 나는 게 신기했다.

저러면 침이나 제대로 삼킬 수 있었을까.

더운 날씨에 침 한 방울마저도 마르지 않았을까.

그가 느꼈을 고통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입을 최대한으로 벌린 후, 드디어 꼬챙이를 빼내었다.



아니, 그래도 돼요??!!!



집도를 한 사제는 그의 얼굴과 입 안, 상처가 생겼을 장소에 잿가루를 듬뿍 발라주었다.

아니아니, 잿가루가 아니라 빨간약을 발라줘야하는 거 아냐?

상처가 감염이 될 수도 있고, 파상풍이나 패혈증의 위험도 있는데!



발목에 묶은 방울까지도 다 떼고, 모든 것이 끝났다.

그는 두 손을 모아 머리 위로 올려서 신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제서야 뺨의 뚫린 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두번째 고행자가 자리에 섰다.

그는 양팔과 등, 가슴팍에 전부 다 장신구가 달려있어서 여러 사람이 붙어서 하나하나 떼주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니, 눈을 감은건지 뜬 건지도 모르겠다.

피부 겉에만 얇게 끼웠다고는 하지만 빼는 거 자체도 따끔따끔할 텐데,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냥 담담하다.

깊은 명상에 잠긴 거 같은 표정이었다.



먼저 끝난 고행자가 그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지만, 같은 고통과 시간을 공유한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나.. 하나.. 그의 몸에서 고통스러운 삶의 덩어리들이 떨어져나갔다.

그 위에는 잿가루를 발라서 몸이 온통 잿투성이가 되었지만,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몸에 워낙 달아둔 게 많아서 다 떼는 데만 해도 5분 이상은 걸린 거 같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었다.



이제 두 뺨과 혀를 관통한 꼬챙이만 남았다.

그는 그제서야 두 눈을 떴다.

눈은 멍한 듯 초점이 나가있었고,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간이 걸리다보니 입 안의 꼬챙이를 빼기 전에 음료수를 한 잔 마셨다.

아까까지는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저 사람도 사람이구나' 싶었다.

입 안팎에 잿가루를 듬뿍 바른 후, 입을 크게 벌리고 꼬챙이를 빼냈다.



사롱을 갈아입고, 발목에 달린 방울까지 떼고 나서야 모든 의식이 끝났다.

그는 신에게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서 많은 사람 속에 섞여들었다.

방금까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도, 사진만 봐서는 누가 그 힘든 고행을 했던가, 그런 일이 있던 건가 헷갈릴 정도로.

영화 브루스 올 마이티를 보면 신인 모건 프리먼은 사람들 속에서 나타난다. 

성스러운 후광을 얹은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모습으로.

딱 그런 느낌이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신, 아니면 신이었던 인간을 저들을 통해서 본 거 같다.



다음 분 대기 중이십니다.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고 밖으로 나왔다.

파란 하늘에 7층짜리 고푸람이 위풍당당했다.

원래는 아래 쪽에 있는 사원이 규모가 크고, 여기는 작은 초막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 사원의 이름이 워터폴 힐 템플인 것도 근처에 물이 흐르는 작은 폭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신도들의 후원으로 건물을 짓고 고푸람을 세웠는데, 재료나 장인들은 전부 남인도 쪽에서 데리고 왔다고 한다.



조지타운의 풍경과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이거 보겠다고 페낭힐을 갈 때는 돈을 내고 올라가서 (푸니쿨라를 타긴 하지만) 내려올 때 정말 개고생을 했는데, 여기는 공짜다.

힘들게 512개의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밟고 올라온 보람이 있다.



사원 옆 천막에서는 시원한 아이스 레몬티를 나눠주고 있었다.

양은 적지만 시원하고 달콤하니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든다.




신을 위한 워터파크?






아래 쪽에는 스와미 다르샤남 Swami Darshanam 의 신전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사제들이 의식을 하고 있었다.

나도 기웃거리다가 사제님이 손짓해서 가보니 붉은 점을 찍어줬다.

아까는 이마에 잿가루를 발랐는데, 얼굴이 알록달록해졌다.



이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는 건 힘들었지만, 뭔가 뿌듯함이 느껴졌다.




사람에 치이고, 계단도 많고, 성인도 쉽지 않은 길인데, 어린애들은 찡찡대지도 않고 잘 걸어다닌다

타이푸삼 축제가 힌두교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 아이들은 이 축제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냥 부모님이랑 가족들이랑 놀러나온 거 정도로 기억할까, 아니면 기억조차도 못하려나.



올라가는 건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건 금방이었다.

오후 3-4시가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사원으로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시바 신상도 있다.

발음할 때마다 뭔가 된소리로 자꾸 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여기는 무슨 신을 모셔놓은 곳인지 모르겠는데, 앞에 우유만 잔뜩 쌓여있다.

유당불내증 없으신가 보다.

유당불내증으로 카페 갈 때마다 메뉴 선택에 고민을 하게 되는 나는 그냥 부러울 뿐.




드디어 끝났구나



원래 목표로 했던 타이푸삼 축제와 사원을 다 봤다.

이거 하나 보자고 왔는데..

사원을 나오니,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과 함께 허무함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이제 여행이 다 끝나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시원섭섭했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다보니 아까 지나왔던 힌두교 사원이 다시 나타났다.

원래 돌아오는 길에 보려고 했으나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유는 단 하나, 신발 벗고 들어가야해서다.

저렇게 널부러져 있는 가운데에서  신발 잃어버리면 찾기란 불가능하다.

낡은 운동화라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 거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신발 넣을 비닐봉다리라도 하나 들고 올 걸 그랬다.



인도에는 채식주의자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하는 인도 음식은 북인도 쪽 음식으로, 무굴 제국 등 무슬림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밀가루 음식이나 탄두리 치킨, 치킨 커리 등 고기 요리를 많이 먹는다.

반면 남인도 쪽은 쌀로 만든 음식을 많이 먹고, 채식주의자들도 많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사는 인도계는 영국이 말레이시아를 통치할 때 데리고 온 남인도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채식 메뉴를 많이 판매한다.

동물성 식품을 아예 섭취하지 않는 비건은 아니고, 우유나 치즈 등 유제품은 섭취한다고 한다.

암소 자체가 신성한 동물로 생각하는데, 소에서 나오는 우유를 안 먹을 리가 없다.

소 오줌까지도 신성하다면서 먹거나 씻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채식 = 다이어트는 아니지만 채식을 하면 그래도 건강한 체형일 줄 알았는데, 70% 정도는 과체중 아니면 비만이었다.

인도에서 지냈던 지인에게 카톡으로 이 얘기를 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인도 채식을 얕보지 마세요. 기름에 튀긴 채소를 5끼씩 먹으면 살쪄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인도에서 말하는 채식은 생채소가 아니란다.

샐러드 같은 것도 거의 안 먹고, 맛살라를 친 다음 튀기거나 설탕에 조리는 게 대부분이고 아니면 빵에 찍어먹는 소스나 커리 형태로 먹는다고 한다.

중간중간 입이 심심하다고 설탕 듬뿍 친 짜이에 설탕 시럽에 듬뿍 조린 전통 디저트나 비스킷을 곁들여먹으니 살이 안 찔래야 살이 안 찔수가 없다고.

자기가 인도에서 지냈을 때도 친구 어머니가 코리아 가난해서 못 먹고 사는 줄 알고 계속 동정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줘서 빵 터졌다.




돌아가는 것도 일이다



조지타운으로 돌아가려 버스정류장에 왔는데, 이미 기다리는 사람이 한가득이다.

타려는 사람은 많고, 버스는 제한되어 있고...

줄이고 뭐고 없고, 먼저 타는 놈이 임자라서 버스가 오자마자 너도나도 달려들었다.

경찰들은 주변에 있으면 줄이라도 세우던가 정리를 해야하는데, 그늘에서 노가리나 까고 있다.

버스에 사람이 좀 탔다 싶으면 줄을 끊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거의 끝물에 간신히 버스에 탑승했다.

콤타 komtar 까지 간다고 하니 2.8링깃을 내라는데, 잔돈이 없어서 3링깃을 내고 영수증을 받은 뒤 버스 뒤로 밀고 들어왔다.

가방에 넣으려고 손에 쥔 영수증을 확인해보니 요금은 1.4링깃 (약 400원).

2명분 요금을 받고, 거스름돈도 못 받은 셈이다.



기진맥진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재미있게 보셨으면 아래의 를 눌러주세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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