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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2019 부산 [完]

[부산] 01. 10/5 첫째날 -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by 히티틀러 2019.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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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비몽사몽으로 맞이한 첫날 아침.

원래 계획은 오전 7시 반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일정 시작! 이었던 터라 미리 버스표도 예매해두었는데, 오늘이 아버지 생신이라고 한다.

아침이라도 같이 먹고 가라기에 전날 급하게 버스표를 오전 9시 반 차로 바꿨다.



나 때문에 주말 아침 댓바람부터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9시 05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모바일 앱으로 예매를 하면 따로 종이표로 바꿀 필요도 업

편의점에서 커피랑 과자 하나 사서 까먹으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시외버스는 출발 10분 전부터 탈 수 있다.

들고 간 캐리어는 짐칸에 얌전히 싣고, 버스에 올라탔다.

누가 전방지역 아니랄까봐 민간인은 2-3명 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다 휴가 나가는 군인들 뿐이다.

요새는 핸드폰 사용이 가능해져서 다들 버스 타자마자 부대에 보고하기 바쁘다.



아직 태풍의 영향이 다 가지 않는 상태라서 하늘은 아직 흐릿하다.

여간해서는 이동 수단 위에서 잘 못 자는데, 너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자버렸다.

1/3 밖에 안 찬 버스인데, 왜 내 옆에만 사람이 앉았는지 모르겠다.

다들 한 사람이 두 자리씩 쓰고 있는데 영 불편하다.

내가 창가라서 나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휴게소 들렸을 때 내려서 자리를 옮겨버렸다.



5시간 거리인데, 기사님이 화장실이 급하셨는지 중간에 휴게소를 한 번 더 들리셔서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노포에서 숙소가 있는 해운대까지 가려면 지하철 2번을 갈아타고 1시간 거리.

해운대 도착해서 숙소에 체크인하고, 다시 센텀시티로 이동해 5시 영화를 보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3시 40분.

3층에 엘리베이터도 없지만, 한 손으로는 캐리어를 들고 다른 어깨에는 토트백을 짊어지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마음이 급하니 바퀴가 바지에 닿아 얼룩이 묻던말던 힘이 치솟는다.

게스트하우스 안에는 다행히 직원인 거 같은 아주머니가 계셨고, 바로 안내를 받았다.

물 한 모금 마실 새도 없이 캐리어만 던져놓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해은대 ww.you구남로에서도 무슨 행사를 하는 거 같긴 하지만, 이미 아웃오브 안중.



해운대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3정거장을 가서 센텀시티역에 도착했다.

작년에는 유난히 장산역 메가박스에서 상영하는 작품이 많아서 센텀은 거의 올 일이 없었는데, 올해는 예매하고 보니  마지막날 제외하고는 다 센텀이다.



오늘 예매한 영화는 둘 다 롯데시네마 6관.

도착해서 부산국제영화제 브로슈어 하나 챙기고, 예매한 오늘치 영화를 전부 종이 티켓으로 바꿨다.

모바일 티켓으로 바로 입장이 가능하지만, 종이 티켓의 감촉이 더 좋다.

일반 영화관처럼 영수증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 빳빳하고 두꺼운 티켓으로 주기 때문에 보관할 맛이 난다.



영화 상영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

터미널 내리는 순간부터 쉬지도 못하고 서두르다가 일처리가 끝나니 그제서야 허기가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저녁 5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침에 뜨는 둥 마는 둥한 몇 숟갈과 커피 한 잔이 오늘 먹은 것의 전부였다.

밤 10시 넘게까지 2편의 영화를 연속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바로 근처에 있는 엔젤리너스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급히 씹어넘겼다.

가격은 거의 4천원 가까이 되는데, 그냥 편의점 샌드위치 수준이었다.



첫 영화는 티벳을 배경으로 한 '풍선 Balloon' 이라는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오리종티를 받은 작품이다.

원래 같은 시간대에 상용하는 이란 영화를 볼까 싶었지만, 상 받은 작품이라기에 이걸 골랐다.

이 영화에서 풍선은 2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가지고 노는 풍선, 다른 하나는 콘돔이다.

1980년대, 티벳 초원에서 양을 치며 사는 한 가족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다.

작년부터인가 그 정책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중국은 산아제한을 하는 국가라서 아이를 하나 밖에 낳을 수가 없다.

소수민족은 예외적으로 둘까지는 낳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많은 숫자라 보건소에서는 무료로 콘돔을 나눠준다.

아이들은 콘돔이 무엇인지를 몰라 그냥 풍선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아이의 호루라기와 바꿔가지고 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렀는데, 라마가 할아버지의 영혼이 가까운 시일에 가족으로 환생할 것이라 예언한다.

곧 아내는 네번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벌금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낙태를 해야할지, 아니면 종교적 신념에 따라 낳아야할지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티베트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이 강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중국에 속해있다.

새끼를 낳기 위해 숫양과 암양을 교배시키는 모습과 할아버지의 죽음, 새로운 잉태라는 과정이 삶과 죽음, 환생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묘하게 얽혀서 빙글빙글 순환되는 묘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중국에 예속되어 중국의 정책을 따라야한다는 점과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현실적인 문제와 종교적 신념 사이의 고뇌를 보여준다.

티베트는 신장위구르 지역과 함께 중국 내에서도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한 지역 중 하나이다.

종교를 기반으로 한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 그러나 중국에 예속되어 있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정치적, 경제적 압박,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족의 모습이 티베트의 현재 모습이 아닐까 하는 조금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마치고 난 후, 페마 체덴 Pema Tseden 감독님과 제작자, 프로듀서님과 GV 시간이 있었고, GV는 중국어로 진행되었다.

감독인은 티베트 사람들의 종교인 라마 불교, 영혼과 윤회에 대한 종교적인 내용을 영화게 담고자 했다고 설명하셨다.

풍선은 말그대로 장난감으로서의 풍선과 콘돔, 두 가지 의미이며, 이 개념을 바탕으로 영화의 시놉시스를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종교적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 점과 국가 정책을 지켜야한다는 두 가지 압박에 처해있는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마지막 장면에 붉은색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는 열린 결말을 통해 그들 가족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관객 스스로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고 하셨다.





영화가 끝나고 친구를 만났다.

인도영화 동호회를 통해서 알게 된 사이인데, 비슷한 나이에 관심사가 같아서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사는 곳이 멀어서 이렇게 부산에 와서야 가끔씩 보는 사이지만, 오랜만에 봐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친구.

다음 타임에 보는 영화가 같아서 롯데시네마 앞에서 만났다.

멀리서 오느라 식사를 못했겠다며 고맙게도 집에서 싸온 귤과 반숙계란을 챙겨주었다.

친구가 준 간식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같이 영화를 보러갔다.



두번째 본 영화는 '내 이름은 키티 Dolly Kitty and Those Twinkling Stars' 라는 인도영화이다.

부산에 오면 매년 인도영화를 본다.

올해는 그닥 끌리는 작품이 없어서 아예 안 볼 생각이었는데, 티켓 예매 전에 친구와 영화제 때 무슨 작품을 볼까 이야기하다가 이걸 볼 생각이라고 해서 나도 예매했다.

딱히 이 시간에 보고 싶은 다른 작품도 없었고, GV도 있고, 인도 영화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친구가 시간 쪼개 보겠다고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믿을만하다.

이 영화는 돌리 Dolly 와 까잘 Kazal 이라고 하는 두 사촌 자매가 주인공인 영화다.

돌리는 결혼해서 아들 둘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인도 중산층 여성이고, 까잘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와 사촌 언니의 집에서 같이 지낸다.

하지만 행복해보이는 돌리는 사실 남편과 섹스리스로 지내고 있다.

까잘은 자신을 노리는 형부를 피해 집을 나오고 싶어하고, 돈을 벌기 위해 '키티'라는 가명으로 사이버 데이트 상담원으로 일하게 된다.

돌리는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다른 남자와 불륜을 하고, 까잘은 일하다가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성적인 관계까지 가지게 되니까 알고보니 그는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다.

불륜, 혼전성관계, 성적 정체성의 혼란 등 보수적인 인도에 이야기하기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라서 조금 많이 놀랐다.

이게 인도에서 상영이 될 수 있을건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더군다나 무명 배우들로 만든 독립영화가 아니라 부미 Bhumi Pednekar 라는 최근 몸값이 Top 5 안에 든다는 여배우와 콘코나 Konkona Sen Sharma 라는 유명배우까지 기용한 영화라서 더 놀랐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GV 에는 알란크리타 쉬리바스타바 Alankrita Shrivastava 감독과 주연 여배우 중 돌리 역을 맡은 콘코나 센 샤르마 Konkona Sen Sharma 씨가 참여했다.

감독이 오는 경우는 많지만, 꽤 유명한 여배우가 우리나라에 직접 온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감독님은 돌리와 키티 라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성적인 억압과 현실적 어려움을 묘사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이야기했다.

영화에서 돌리는 결국 죽은 자신의 연인의 장례식을 치뤄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면서 가정을 떠나고, 까잘은 당당히 자신을 뉴스에 공개하면서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이 서비스가 필요하다' 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인도 사회에서 여성들의 이야기, 특히 성적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역사는 정말 별로였다.

기본적으로 통역 능력 자체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인도 영화나 참여한 게스트들에 대한 사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인도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줄줄 꿰고있을 정도의 골수팬 층이 있고, 이런 덕후들이 한국어로 편하게 영화도 보고 게스트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 온다.

질문한 사람 중 한 분도 콘코나 씨의 과거 작품들과 관련해서 질문을 했는데, 통역사는 배경 지식이 전혀 없으니 제대로 통역을 할 수가 없었다.

보면서도 답답하다 못해 짜증이 확 치밀었다.

GV가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몰려들었는데, 콘코나 샤르마 씨는 배우 출신이라서 그런지 일일히 사인도 다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는 등 제대로 된 팬서비스를 보여주었다.



영화와 GV가 전부 끝나니 어느덧 11시 무렵이 되었다.
친구는 집이 있는 창원으로 버스를 타고 가야했고, 나는 며칠간 제대로 못 자서 비몽사몽.
어차피 내일 또 만날 사이라 센텀시티에서 헤어지고, 바로 해운대로 돌아왔다.
여행에는 술이 빠질 수 없다.
원래는 칵테일바를 가거나 맥주 한 캔 정도는 마실 생각이었으나, 그걸 마시면 훅 갈테니 그냥 얌전히 가야지.
개별 객실이라면 또 모르지만, 도미토리에서는 깽판치면 안 되니까.
숙소에 돌아와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낯선 잠자리라 영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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