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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2019 부산 [完]

[부산] 03. 10/7 초량 이바구길, 168계단 모노레일

by 히티틀러 2020.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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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술기운에 제대로 잠을 자겠다 싶었다.

12시가 좀 넘어서 잠든 거 같은데, 눈을 떠보니 새벽 3시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한 번 깨버린 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았다.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를 보다가 새벽녘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보려고 하니 이번에는 귓가에서 모기가 웽웽.

언제 세탁했는지 모르는 이불은 먼지가 풀풀 날렸다.

먼지 알레르기 반응으로 맑은 콧물이 차올랐지만, 모두가 잠자는 시간이라 코 한 번 시원하게 풀지 못하고 계속 훌찌럭거렸다.



이제 늙었구나



예전에는 도미토리건 뭐건 피곤하면 정신없이 쓰러져 잘만 잤는데, 갈수록 예민해진다.

이래서 나이가 들면 돈을 더 주고서라도 좀 더 나은 숙소를 찾나보다.

결국 7시 조금 안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보면 관광객이 아니라 영화제 자원봉사자인 줄 알거다.



해운대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1003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 볼 영화는 오후 1시부터라서 오전은 그쪽에서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부산 여행을 와도 영화 시간에 쫓기다보면 맨날 센텀시티 - 해운대 - 장산, 여기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서면도 다녀오려면 빠듯한 데, 편도가 1시간이나 걸리는 부산역, 초량은 정말 큰 맘 먹어야 갈 수 있다.



굳이 부산역에 온 목적은 바로 삼진어묵에 오기 위해서였다.

누가 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산에는 3대 어묵이 있는데, 그 중 한 군데가 삼진어묵이다.

부산갈 때마다 가족들은 으레 어묵 선물을 사오기를 기대하는데, 늘 고래사어묵만 사갔다.

해운대역 바로 앞에 매장이 있어서 가깝기 때문이다.

다른 어묵들도 맛보고 싶은데, 백화점 입점 매장을 제외하고는 제일 가까운 지점이 부산역에 있는 매장이다.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월세 2억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말이다.



삼진어묵 부산역광장점은 부산역 바로 앞 광장관광호텔 2층이다.

부산역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편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가방과 캐리어를 놓고 들어갈 수 있도록 마련해놓았다.



오픈시간이 8시라고 해서 30분 정도 지난 뒤에 들어갔는데, 뭐 하나 진열된 게 없었다.

문 열자마자 바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최소한 절반은 채워져있어야하는 거 아닐까?

뭐 하나 먹고갈만한 것도 없고, 간신히 선물세트만 팔고 있길래 그냥 나와버렸다.



참고 : 부산역 부산 삼진어묵 부산역광장점 후기




근처 맥도날드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카페인을 섭취하니 잠이 좀 깼다.



이제 뭐하지..?



원래는 삼진어묵에서 판매하는 어묵 몇 개를 맛보고 이른 점심을 한 뒤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붕 떠버렸다.



초량에는 차이나타운도 있고 하니 그냥 돌아다녀보자는 생각으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을 휘적거리고 있다가 '초량 이바구길 168계단 모노레일' 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였다.

부산에서는 산마을이나 계단이 많은 곳에 모노레일을 설치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얼핏 들은 기억이 나서 화살표를 따라갔다.






이바구는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 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1900년 최초의 물류창고인 남선창고부터 6.25 피난 시기, 이후 1960-70년대 근대화 시기와 현재까지 100여 년의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그 세월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이바구길' 이라고 한다.

지금은 관광지화되면서 옛날 느낌으로 잘 정돈해서 포토스팟을 만들어놓았다.




근처에 초량초등학교가 있어서인지 문구점도 있었다.

사실 문구점이라기보다는 점빵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저런 곳 보기 힘들었는데, 아직까지 현역인 곳이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초량교회도 지났다.

1892년 11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 William M. Baird 가 세운 교회로,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라고 한다.



드디어 계단이 나왔다.

168개치고는 빈약하다? 싶었는데,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맛배기 계단을 올라가고 나서야 눈앞에 168개 계단이 펼쳐졌다.

내가 1년간 다녔던 초등학교는 언덕길을 300m 가량 올라가야 학교 정문이 나왔다.

지금 보면 약간 경사있는 언덕 정도지만, 8살내기였던 그 때에는 매우 높고 험준해보였다.

아래에서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느낌이 언덕 아래에서 언덕 꼭대기의 학교 정문을 바라보던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나게 했다.




"저짝으로 들어가!"



계단 옆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보면서 외쳤다.

부산에서는 누가 말을 걸면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다.

암만 봐도 싸우는 거 같은데, 좀만 있으면 머리끄댕이도 잡을 거 같은데, 그냥 대화하는 거란다.



다행스럽계도 초량168계단에는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했으나 관광용으로도 많이 알려져있다.

이용시간은 하절기에는 오전 7시 ~ 오후 9시, 동절기 오전 7시 ~오후 8시까지며, 요금은 무료다.

아까 그 할아버지가 이걸 타고 가라고 알려준 거였다.



곧 모노레일이 도착했다.

8인승의 작은 모노레일이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과 외국인 관광객 3명과 함께 모노레일에 탑승했다.

꼭대기까지 1분 30초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막상 올라왔더니 크게 뭐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음식점이랑 공방 같은 거 몇 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주변 산비탈이 온통 건물로 가득차있다.

처음 부산에 왔을 때, 부산역을 딱 나서는 순간 산꼭대기까지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집들을 보고 꽤나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내가 사는 강원도는 원래 산이 많은 지역이지만, 다른 지방, 특히나 아랫동네는 산 보기도 힘들 줄 알았다.

한국전쟁 시절 모든 피난민이 과다하게 밀집된 영향인지 험한 산비탈길까지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한편으로는 놀라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역사의 한 조각을 보는 기분이라 슬프기도 했다.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 있다고 하기에 안내판을 따라 올라갔다.



당산은 한 마을이 수호신을 모신 장소로, 매년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당산제를 지내는 장소이기도 한다.

시골 같은 곳에서 서낭나무 비슷한 걸 보긴 봤지만, 당산이라는 장소를 보는 건 이번에 처음이었다.

동구 당산제에서는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이 장소는 1993년도에 새로 지어진 곳이라고 한다.

매년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 연 2회 당산제를 올린다고.



올라올 때는 편하게 모노레일을 탔으니, 내려갈 때는 한 번 걸어내려가기로 했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볼 때도 경사가 제법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 아찔하다.

어릴 때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발목을 제대로 삐어먹고 매년 고생하는 나는 계단 공포증이 약간 있는데,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몇번째 계단인지 써놓은 센스가 귀여웠다.

108계단이니 몇 개 계단이니 하는 장소를 가면 걸어올라가면서 계단 갯수를 세게 되는데, 중간 즈음 가다보면 늘 헷갈린다.




이런 길 겨울에 어떻게 다녔지?



계단은 정말 내려갈수록 다리가 후들거렸다.

단순히 계단이 많아서, 경사로가 높아서 때문이 아니었다.

계단 폭 자체가 좁은 데다가 사람들이 얼마나 다녔는지 끝부분 자체가 반질반질하게 닳아서 깎여있었다.

구 도심에서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산다는데, 이 계단을 정말 어떻게 다녔을지 싶었다.

부산은 날이 따뜻해서 눈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겨울에 길이 얼어있는 상태에서 아차해서 미끄러지면 정말 염라대왕 하이패스다.

모노레일이 생긴 게 지역주민들에게는 진심으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름 관광지라고 벽화도 그려놓고 예쁘게 꾸며놓았다.

중간 즈음에는 김만복 전망대 라고 해서 전망을 볼 수 있게도 만들어놓았다.



지금은 쓰지 않는 거 같지만, 우물도 있었다.

요즘에야 여기에도 다 수도가 들어오겠지만, 예전에는 이 근처 사는 사람들이 다 여기서 물을 길어먹었으려나.



168계단을 다 내려와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집배원 아저씨가 집집마다 고지서를 넣고 계셨다.

요즘엔 집배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미세먼지를 저감할 목적으로 배달용 오토바이를 초소형 전기차로 많이 변경해서 이런 오토바이를 꽤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레트로한 골목과 집배원 아저씨를 보고 있으니 어릴 때로 타임러프한 기분이다.



지하철 역으로 거의 내려왔을 무렵 시선을 끄는 건물이 하나 서있다.

구한말에나 있었을 법한 이 건물은 1922년 한국인이 설립한 서양식 5층 건물로,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인 '백제병원' 이라고 한다.

1932년 병원이 문을 닫고 난 이후로 중국 음식점, 일본 장교 숙소, 치안대 사무소, 중화민국(대만) 영사관, 예식장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서 안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카페로 쓰이고 있는 거 같았다.




일본식 가옥인 적산가옥의 흔적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예전에도 왔던 곳인데, 그 때는 왜 몰랐을까.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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