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키 텔팍 푸숀을 지나서 죽 걸어갔어요.
부하라 구시가에서는 워낙 수백년 된 유적들이 다닥다닥 모여있어서 굳이 지도를 보며 찾아갈 필요가 없었어요.
발 닫는대로 가다보면 뭔가가 계속 나오니까요.
티미 압둘라혼
여기도 16세기에 지어진 유적이지만, 부하라에서 비슷한 걸 워낙 많이 보다보니 이젠 별 감흥도 없어졌어요.
마치 이스탄불에서 매일 블루모스크를 봤더니 그냥 동네 모스크를 보는 것마냥 아무 느낌이 안 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압둘 아지즈칸 마드라사
압둘 아지즈칸 마드라사 Abdul Azizxon Madrasasi 은1652년에 당시 부라하의 칸이던 압둘아지즈 칸에 의해서 지어진 마드라사라고 해요.
화려하게 채색한 입구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쿤달'이라는 기법이라고 하는데, 부하라의 수많은 모스크와 마스지드 중에서도 압둘 아지즈칸 마드라사는 바로 쿤달 기법으로 채색한 화려한 벽화와 천장으로 유명하다고 해요.
기대를 엄청 가지고 안에 들어갔지만, 안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어요.
일단 바깥만 복원 공사를 끝내놓고, 내부는 그냥 방치해놓은 듯 타일이 이리저리 깨져 있었어요.
울루그벡 마드라사
압둘 아지즈칸 마드라사 맞은 편에는 울루그벡 마드라사Ulugbek Madrasasi 가 위치하고 있어요.
이 마드라사는 그 이름대로 아미르 티무르의 손자이자 중앙아시아의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미르조 울루그벡 Mirzo Ulugbek 을 기념하는 마드라사예요.
울루그벡 마드라사는 1417년에 건설되었는데, 당시 최고의 건축가였던 나즈밋딘 부하리와 이스마일 이르파가니가 건설을 맡았다고 해요.
이 마드라사의 벽과 장식은 상당히 심플한 편인데, 천문학자로서 울루그벡의 세계관과 천체를 바탕으로 디자인했다고 해요.
이후 중동 지역에서 다른 마드라사를 짓는데에도 울루그벡 마드라사를 건축 견본으로 삼았다고도 하더라고요.
압둘 아지즈칸 마드라사와는 달리 울루그벡 마드라사는 사람 하나 없이 휑했어요.
타일이 좀 깨진 거야 그러려니 할텐데,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는 미흐랍이 깨져있는 건 처음 봤어요.
정말 복원이 시급해보였어요.
깨진 미흐랍만 복원하면 다른 부분은 그래도 꽤 괜찮았어요.
토키 자르가론
토키 자르가론 Toqi Zargaron 은 부하라에서 가장 큰 토키로 16세기에 지어졌는데, '귀금속 아치' 라는 뜻이예요.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른 토키들과 비슷했어요.
칼론 미노르
"칼론 미노르다!"
토키 자르가론을 지나서 조금 걸어가니, 우즈벡 뮤비 같은 데에서나 보면 부하라의 상징, 칼론 미노르가 나타났어요.
칼론 미노르 Kalon Minori 는 미노라이 칼론 Minorai kalon 이라고 하는데, '칼론 kalon' 이라는 말은 타직어로 '크다' 라는 뜻이예요.
즉, 큰 탑.
1172년에 지어졌는데, 그 이름답게 높이가 46.5m 나 되요.
칼론 미노르는 '죽음의 탑' 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과거에는 죄인을 사형시키는 방법으로 탑 꼭대기에서 던져버렸기 때문이라고 해요.
또 한 가지 전설 중 하나는 과거 부하라를 다스리던 어느 왕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는 매우 포악해서, 자신의 왕비를 탑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여버리려고 했어요.
현명한 왕비는 왕에게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을 들어달라고 간청했고, 왕은 허락했어요.
사형집행 당일날,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옷과 치마를 껴 입은채로 뛰어내렸어요.
그녀가 입은 옷은 마치 낙하산과 같은 효과를 내서 왕비는 땅에 안전히 착륙할 수 있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어요.
칼론 미노르는 몽골 군대의 정벌에서도 살아남은 탑이기도 해요.
부하라를 점령한 몽골 군대가 도시의 거의 절반을 폐허로 만들었을 때 즈음 칭기즈칸이 부하라에 입성했는데, 그는 고개를 들고 이 탑을 쳐다보다가 모자를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무심결에 허리를 굽혀 모자를 주우면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허리를 굽혀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탑은 허리를 굽힐만큼 훌륭하다." 라면서 칼론 미노르를 훼손시키지 않았다고 해요.
"저기 올라갈 수 있을 건가?"
원래는 사람이 올라가서 부하라의 무슬림들에게 기도시간을 알리는 미나렛이었기에,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다른 분들 여행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올라갈 수 있다, 없다 논란이 분분했어요.
예전에는 올라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금지했다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뇌물 좀 쥐어주면 올라가게 해준다는 말도 있었어요.
칼론 미노르를 옆에 있는 모스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단 모스크부터 보기로 했어요.
칼론 모스크
1514년 건설된 모스크로, 중동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주마 모스크 중 하나라고 해요.
입구와 내부는 푸른 도자기로 모자이크처럼 장식되어 있어요.
"티켓 사야해요."
유료모스크라서 입장료를 내야했어요.
우즈벡 학생증을 내미니 현지인으로 처리되어서 역시 무료.
뒤에 오면 단체 관광객들은 전부 다 돈을 내고 입장해야했어요.
여행 내내 우즈벡 학생증으로 입장료를 매우 많이 절약할 수 있었어요.
칼론 모스크는 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예배인 금요 예배를 드리는 모스크이기도 했다고 해요.
'크다' 라는 뜻의 칼론이라는 단어답게 규모가 엄청 거요.
면적이 1헥타르에 달해서 10,000명의 신자가 동시에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해요.
돌도 태양에 너무 달궈지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해요.
외관에 비해 내부는 단촐한 편이었어요.
오히려 밖에서 보는 풍경이 더 기가 막히더라고요.
흙빛 건물에 파란 돔이 하늘색과 잘 어울렸어요.
돌아다니면서 칼론 모스크 구경을 하고 난 후, 관리자인 듯한 사람에게 슬쩍 다가가서 우즈벡어로 말을 걸었어요.
다른 관광객들 없을 때 현지어로 슬쩍슬쩍 얘기하면 몰래 눈감아 주거나, 어떻게 하라는 팁을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다른 관광객 있을 때에는 너도나도 해달라고 할테니 안 되고요.
"혹시 칼론 미노르 올라갈 수 있어요?"
"안 되요. 지금 수리 중이예요."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그 사람은 정말 단호히 거절했어요.
"예전에는 올라갔는데, 지금은 진짜 안 되요.
얼마 전에 사람이 올라갔다가 미끄러져서 죽었어요."
친구와 저는 그 말을 듣고 진짜 포기했어요.
사람이 죽었을 정도면 정말로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좋자고 놀러온 여행에 그걸 무릅쓰고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모스크 밖으로 나오니 근처에서 기념품을 팔던 아이와 청년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외국인이 우즈벡어를 하니 신기한 모양이었어요.
청년들은 우리에게는 우즈벡어로 말을 걸면서도 자기들끼리는 타직어로 이야기를 했어요.
"타직인이예요?"
"이 사람은 타직인이고, 이 사람은 우즈벡인이예요. 하지만 다 알아들어요."
"여기 타직 사람 많이 살아요?"
"네, 타직인이 훨씬 많고 우즈벡인은 얼마 없어요."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는 원래 타직인들이 많이 살던 도시예요.
원래는 우즈벡인과 타직인의 구분이 없이 섞여서 살았는데, 소련 시대 때 민족 구성 여부 등에 대한 고려 없이 필요에 따라 국경을 그려버린 바람에 타직인들이 많이 살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가 우즈베키스탄에 편입되었어요.
소련 시기에는 국경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소련의 붕괴 이후 국경이 확정되면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워낙 타직어를 많이 쓰다보니 우즈벡 사람들도 왠만큼은 알아듣는다고 하더라고요.
"누나 누나, 이거 사요."
열 살 남짓 되어보이는 아이가 자기가 팔던 부하라 사진 엽서를 세트를 내밀었어요.
사진엽서를 한 장 한 장 훑어보면서 살 거 같은 눈치를 보이니, 처음에는 6천숨이라더니 슬쩍 7천숨으로 가격을 올렸어요.
"너 아까 6천숨이라고 했잖아!"
우즈벡 청년이 나무라니 아이는 그제서야 6천숨이라고 다시 말을 바꿨어요.
그 아이에게서 사진엽서 세트를 하나 샀어요.
한창 뛰어놀 아이들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짠했어요.
미르 아랍 마드라사
칼론 모스크 맞은 편에는 미르 아랍 마드라사 Miri Arab Madrasasi 가 위치하고 있어요.
16세기에 지어진 이 마드라사는 부하라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전체에서도 가장 명망있는 이슬람 교육 기관 중 하나예요.
당시 중앙아시아를 통치한 샤이바니드 왕조의 왕인 우바이둘라 칸이 자신의 정신적 멘토인 낙쉬반디 쉐이흐의 별칭인 '미르 아랍'을 따서 이 마드라사를 지었는데, 3000명이 넘는 페르시아 노예를 팔아서 자금을 마련했다고 해요.
1920년부터 1944년까지 소련 시기에 잠시 문을 닫기는 했지만 스탈린 시기 다시 문을 열어 현재까지도 마드라사의 기능을 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관광객은 입장할 수 없어요.
입구 쪽으로 다가가니 앉아있던 소년이 안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막았어요.
"너 여기서 공부해?"
"네."
연신 읽고 있던 노트를 보니, 아랍어와 밑에 해석이 잔뜩 적혀 있었어요.
아마 이 마드라사에서 공부하는 아이인데, 수업시간에 코란 구절을 배워서 외우는 거 같았어요.
이슬람학을 공부하는 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코란 한 권을 통째로 암기해야하거든요.
동양문화권에서는 천자문을 암기해야 학문의 가장 기본단계를 뗐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슬람 세계에서는 코란 한 권을 통째로 암기할 줄 알아야 초급과정을 마쳤다고 하거든요.
현지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확실히 그 소년의 경계심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잘만 얘기하면 살짝 안에 들여다볼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있는데, 아까 칼론 모스크에서 봤던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우루루 몰려들었어요.
가이드까지 와서 연신 설명을 해대고 있으니 안으로 들어가기는 완전 글렀어요.
마침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까지 울리자, 소년은 서둘러 마드라사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가 사진 찍는 명당이구나."
우리는 가게에 앉아 음료수 하나씩을 마시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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