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있었지만, 이미 시간이 늦어서 문을 닫은 상태였어요.
어디서든 잘 보이는 칼론 미노르와 칼론 모스크의 돔.
조금 걸어가자 드디어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르크만 보면 부하라 올드타운에서 볼거리는 거의 다 본 셈이라 발걸음을 서둘렀어요.
성벽에 골대를 그려놓고 축구하는 아이들.
얼핏 보기에도 성벽 높이가 꽤 높아보였는데, 16-20m는 된다고 해요.
근처에 과거 죄인들을 가두었던 감옥인 진돈 zindon 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미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늦었어요.
아르크
"여기가 아르크구나."
아르크 Ark 는 5세기에 지어진 성채로,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예요.
4헥타르에 가까운 면적에 그 아르크를 감싸는 성벽의 길이만 789.6m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장소인데, 중세시대 아르크 안에는 부하라를 통치하는 아미르의 왕궁과 모스크, 관공서, 조폐국, 창고, 상점들, 감옥, 사람이 모이기 위한 광장까지 있었다고 해요.
아르크를 지은 사람은 '시야부쉬 Siyavush' 라는 페르시아 전설에 나오는 왕자라고 전해져요.
전설에 따르면 그는 계모에 의해 쫓겨나고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해 살았는데, 이 지역을 통치하던 왕 아프라시압 Afrasiab 의 딸과 사랑에 빠져요.
왕은 결혼을 허락했지만, 소가죽을 주면서 그 소가죽으로 감쌀 수 있는 범위까지만 땅을 주겠다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웠어요.
하지만 시야부쉬는 소가죽을 잘라서 길고 얇은 줄로 만들어서 땅에다가 뱅 돌리고 그 끝을 묶었어요.
그렇게 넓은 땅을 받아서 그 땅에 성채를 지은게 아르크라고 해요.
"헬로! 아르크 안 들어갈래요?"
시간이 늦은데다가 입구에는 '출입금지'라고 폴리스라인이 쳐져있었어요.
당연히 못 들어가겠거니 하고 사진 몇 장 찍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근처를 배회하던 아저씨가 영어로 말을 걸었어요.
"아르크 들어갈 수 있어요?"
"한 사람당 10달러만 내면 들어갈 수 있어요.
지금 들어가면 석양 지는 것도 볼 수 있고, 진짜 사진 찍기 좋아요."
못 들어간다고 막아놨는데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의아한데다가, 영어로 접근하는 게 너무 수상했어요.
10달러면 우즈벡 물가를 감안할 때 작은 돈도 아니고, 정 안 되면 내일 다시 오면 되요.
끈질기게 붙잡는 아저씨를 뿌리치고, 하고 우리는 아르크 입구로 향했어요.
가까이 다가가니 입구 안쪽, 잘 보이지 않는 곳에 경찰 두 명이 앉아있었어요.
경찰들은 우리를 보더니 손짓을 해서 불렀어요.
"10달러면 안에 10분간 들어가 볼 수 있어."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어요.
원래 아르크는 수리 중이라서 입장이 전면 금지되어 있어요.
하지만 여기를 지키는 경찰들이 몰래몰래 관광객들을 들여보내면서 부수입을 벌고 있는 것이었어요.
아까 호객행위를 했던 아저씨는 영어가 안 되는 경찰들 대신 외국인들을 데려오고 커미션을 받고요.
낮에 초르 미노르에서 만난 여학생이 '아르크에 가려면 자기에게 연락해라' 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에이, 우리 여기 사는 학생들인데 좀 깎아줘요."
아는 현지어를 다 동원해서 흥정을 했어요.
결국 1인당 2만숨 (약 8달러)로 합의.
경찰 입장에서는 따로 자본이 드는 것도 아니고, 커미션을 떼어줘야하는 것도 아니니 한푼이라도 더 받는게 이득이니까요.
경찰에게 돈을 드리니 한 명이 우리를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여기서 저쪽으로 쭉 들어가면 돼. 사진 찍고 10분 후에 다시 여기로 나와."
그 말을 마치고, 경찰은 다시 돌아갔어요.
아르크 안은 정말 폐허였어요.
1920년 소련 볼쉐비키 적군이 부하라를 점령할 때, 항공기 폭격을 해서 아르크의 상당 부분이 다 무너졌다고 해요.
일부분은 남아있어서 과거에는 관광객들에게 공개를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보수한다고 전부 다 폐쇄해서 아예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었어요.
폐허를 지나 조금씩 걷다보면 칼론 미노르가 보이고....
서서히 드러나는 부하라의 풍경.
한 발, 한 발 디딜수록 마치 내가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이 된 기분이었어요.
혹독한 날씨에서 힘든 여정을 해오던 카라반들이 칼론 미노르를 보면서
'드디어 도시에 도착했구나!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카라반 사라이에서 발 뻗고 잘 수도 있고, 하맘에서 목욕을 할 수도 있다' 라면서 막 흥분되는 기분이랄까요.
부하라가 이렇게 예쁜 도시였구나!!
아르크에서 내려다보는 부하라의 저녁 풍경은 정말 황홀했어요.
흙빛건물과 푸른 돔이 어우러진 도시가 석양의 붉은 빛이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시간을 잊고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광경이었어요.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마냥 바라보고만 싶었지만, 경찰과 약속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발길을 돌렸어요.
오래된 나무 기둥과 수리를 위한 자재들도 곳곳도 중간중간 보이는 것을 봐서 아르크가 수리 중인 사실은 맞는 거 같아요.
하지만 복원을 마치고 언제 다시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즈베키스탄의 경제적 사정도 사정이거니와 복원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부하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 때문에 복원이 더욱 까다롭고요.
내려오면서 보니 꽤 멀쩡하게 남아있는 곳도 있었어요.
아르크를 완전히 폐쇄하기 전에는 일부는 입장료를 받고 공개했다고 하던데, 아마 이쪽을 공개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경찰은 너무 오래 있었다면서 내려가라고 재촉했고, 우리는 조용히 아르크를 빠져나왔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돈이 아깝지 않은 광경이었어요.
어느새 달이 떠있었어요.
볼로하우즈 모스크
아르크에서 걸어서 채 몇 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데 볼로하우즈 모스크 Bolo-Hauz Masjidi 가 위치하고 있어요.
원래 부하라에 사는 왕과 왕족들의 전용사원이었는데, 왕이 이 사원을 방문할 때는 아르크에서부터 볼로하우즈까지 땅을 밟지 않도록 카펫을 깔았다고 해요.
볼로하우즈 모스크에는 미나렛이 하나 있어요.
모스크는 1712년에 지어진 것과 달리, 이 미나렛은 나중에 1917년에 지어진 것이라고 해요.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해도 되나?'
물어볼 사람도 없고, 입구를 기웃기웃 거렸어요.
모스크 같은 경우는 관광지로 공개된 곳이 아닌 이상에는 여자, 그것도 비무슬림 여자가 들어가는 것 자체가 큰 무례거든요.
중앙아시아 같은 경우는 모스크는 남자들이 가고, 여자들은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기도드리는 경우가 많아서 더 눈치가 보여요.
여자들의 기도당이 따로 있는 경우에는 그곳은 들어갈 수 있지만,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방 한 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크게 볼 게 없어요.
같이 묻어갈 외국인 관광객도 없는데, 마침 저녁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에 깔끔히 포기하고 숙소로 방향을 돌렸어요.
아쉽기는 하지만, 현지 문화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숙소로 돌아가니 벌써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어요.
도시만큼 야간 조명이 많지 않아 길이 좀 어둡기는 했지만, 장사하던 사람들이 다 집에 돌아간 골목들은 낮보다 훨씬 조용했어요.
"우리 저녁 어떻게 할까?"
"나 오늘 계속 속이 안 좋아. 아무래도 안 먹는 게 나을거 같아."
친구는 이유를 모르지만 하루종일 배앓이를 했다고 했어요.
혼자 식사를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저녁에 먹을 수 있는 우즈벡 음식이라곤 샤슬릭이 고작.
그 지겨운 샤슬릭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았어요.
근처 가게에 들려 간단한 주전부리와 맥주 한 캔을 사서 라비하우즈로 갔어요.
라비하우즈는 야간 조명을 잘 해놓아서 밤에도 꽤 볼만했고, 관광객이고 현지인이고 가릴거 없이 더위를 피해서 근처에 모여있었어요.
근처 아무데나 앉아서 맥주를 마셨어요.
부하라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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