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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작품은 누가 뭐래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일 거예요.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다가 관객수가 700만을 앞두고 곧 1천만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얼마 전 헌혈을 하고 받은 영화관람권이 있어서 메가박스로 영화를 보러 다녀왔어요.
무료로 받은 영화관람권이나 요일이나 시간, 좌석의 제약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없었어요.
주말인데도 영화관람권을 제시하면 원하는 좌석을 선택할 수 있었고, 추가 금액도 없어서 덕분에 공짜로 영화릅 볼 수 있었네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작품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배급사가 CJ엔터테인멘트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2시간이 넘는 긴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상영 횟수가 많았어요.
영화는 재미있었어요.
초반부는 코미디 영화처럼 유쾌하게 볼 수 있었고, 비 오는 날 밤 벨이 울리던 순간부터는 범죄 스릴러물로 돌변해서 2개의 영화를 한꺼번에 보는 느낌이었어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작품들을 여럿 접해봤는데, 보고 나니까 '왜 이 영화가 상을 받았구나'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어요.
전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작금이 상황에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깔끔하게 그렸어요.
단순히 '부자는 악인이고, 가난한 자는 선인이다' 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요.
서양인들이 좋아할만한 스타일의 영화였어요.
영화 내에 여러 가지 상징이 있어서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거리가 많아요.
상영이 끝나고 나서 다들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대중성도 어느 정도 성공한 거 같고요.
실험적인 영화나 기법적으로 독특한 영화들은 다 보고 나서 '내가 지금 뭔 본 걸까' 하면서 머리가 멍해지고, 나오는 사람들이 말이 없거든요.
사기는 치는 거보다 빠지는 게 중요하다
제 생각에 이 영화의 핵심은 '선을 넘는다' 예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누구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살아가요.
이 영화에서 모두다 파국을 맞이하게 된 데에는 기택 가족이 너무 선을 넘었다는 데 있어요.
여기에서은 선은 단순히 고용주와 고용인, 경제력으로 구별되는 계급적인 의미가 아닌, 인정과 체면치레로 눈감아줄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해요.
중고나라에서 몇 만원 사기친 사람은 잡아서 고소하자면 번거롭고 시끄러우니 그냥 넘어가줄 수 있지만, 수 천 수 억 원대의 부동산 사기나 보험사기는 모든 인맥과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아요.
기생충은 숙주와 공생 관계예요.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생존할 수 없어요.
중앙아프리카에서 치사율 100%에 육박하던 에볼라 바이러스도 최근에는 치사율이 많이 낮아졌다고 해요.
의학의 발전과 약물의 개발도 한 요인이지만, 치사율이 너무 높아 숙주인 사람들이 다 죽어버리니 바이러스가 독성이 낮아지도록 진화했다고 해요.
사기는 치는 거 보다 빠지는 게 중요해요.
화려한 언변으로 박사장과 연교, 그 가족들을 속였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적당히 빼먹고 나왔어야죠.
기우와 기정이 가정교사로 일하면 넉넉한 과외비 받아서 반지하 탈출하고, 더 나은 삶을 계획해볼 수 있었어요.
나중에 문서 위조라는 걸 들켰더라도 조용히 쫓겨나는 데에서 끝났을 거예요.
아버지 기택과 어머니 충숙까지 박사장 가족의 운전기사와 입주가정부로 일하게 되면서 가족 전체가 박사장의 기생충을 자처해버렸어요.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 사장 가족이 캠핑으로 집은 비운 날 온 가족이 마치 집주인인 것처럼 마시고 즐긴 건 정말 최후의 선을 넘어버린 거에요.
'무계획이 계획' 이라면서 마구 선을 넘어버리다가 빠져나올 순간을 놓쳐버렸고, 결국에는 숙주를 죽여버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거구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다
영화 속에서는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을 넘나들어요.
일단 현실에서 박사장의 가족과 기택의 가족이 만날 확률은 0에 수렴해요.
아무리 아는 사람의 소개라고 해도 꼼꼼한 확인 없이 수험생 자녀의 과외를 맡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오히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현실에 가깝죠.
영화의 결말도 마찬가지예요.
수석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기우는 3개월 뒤에 병원에서 깨어나요.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후, 다시 예전에 살았던 반지하로 돌아가요.
박사장을 죽인 기택은 저택의 지하실에 숨어살고요.
영화의 끝부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럼 병원비는?' 이었어요.
몇 개월동안 병원에 중환자로 입원해있으면 그간 병원비가 못해도 억 대는 나올 거예요.
유일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반지하의 보증금을 탈탈 털어도 어림도 없어요.
기택 또한 지하실에서 진작에 죽든가 아니면 살기 위해 나와서 자수했어야 하는거구요.
단순히 식량이 없는 걸 넘어 주인 없는 집에는 전기, 가스, 수도 등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이 하나도 공급되지 않으니까요.
이쯤 되면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고통이에요.
제발 감옥 가게 해달라고 판사님에게 비는 게 훨씬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어요.
최소한 교도소에서는 기본적으로 의식주는 해결해주니까요.
결론은 반지하보다는 옥탑이 낫다?
우습게도 이 영화를 다 보고 제가 내린 단 한 마디 결론은 '반지하보다는 옥탑이 낫구나' 였어요.
열악한 주거환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 옥, 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해요.
고시원은 온 가족이 살 수 없으니 제외하고, 이들이 반지하가 아닌 차라리 옥탑방을 얻어 살았으면, 그래서 비에 집이 침수되지 않았더라면 결말이 달라졌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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